거북선이 쉬던 자리
거북선이 쉬던 자리
  • 나무신문
  • 승인 2015.09.2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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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전남 여수 선소
▲ 선소유적지 굴강. 굴강은 거북선을 건조 정박 수리 했던 곳이다.

[나무신문] 1591년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수사로 여수 전라좌수영본영에 부임한다. 여수는 1593년(선조26)부터 1601년(선조34)까지 삼도수군통제영본영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수는 거북선을 처음 출정시킨 곳이다. 거북선을 만들고 정박하고 수리하던 선소를 찾아갔다.

 

▲ 선소유적지.

바다의 요새, 선소
‘만약에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도 없었을 것이다’ 경상남도 남해와 바다를 나누고 있는 곳이 전라남도 여수다. 

남해 앞바다를 지나 서쪽으로 진행하면 여수의 돌산도와 금오도가 남북으로 버티며 바다길을 막는다. 

▲ 선소.

육지와 돌산도 사이는 폭이 좁고 물살이 거센 울돌목으로 자연적인 방어막을 형성했다. 돌산도와 금오도 사이에는 소횡간도 소두라도 대두라도 나발도 화태도 월호도 송도 자봉도 개도 제도 백야도 등이 그물망처럼 바다를 지킨다. 

그곳을 통과해서 육지 쪽으로 북진하면 장도와 가덕도가 마지막 수문장처럼 단호하게 버티고 있다. 그곳을 지나 육지로 향한다고 해도 선소는 보이지 않는다. 

▲ 선소는 바다를 등지고 있는 요새다.

선소는 망마산 산줄기를 뒤에 두고 육지를 바라보고 있으니 장도를 지난 배가 육지에 닿을 무렵 뱃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려 진행해야 비로소 선소를 눈에 넣을 수 있다.    

거북선을 만들고 정박하고 수리하던 선소는 요새 같은 여수에서도 가장 요새 같은 곳에 자리잡았던 것이다. 

 

▲ 선소유적지 굴강 옆에 있는 벅수.

굴강, 벅수, 계선주 
사실 선소는 고려시대부터 배를 만들었던 곳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배 만드는 기술이 뛰어났던 군관 나대용 등과 함께 천연의 요새인 이곳 선소에서 거북선을 만들었던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끈 23번의 해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23전 23승의 신화 같은 역사를 그 바다에 남겼다. 왜적들에게 이순신 장군은 바다의 신이었을 것이다. 

▲ 선소유적지 계선주.

23전 23패의 역사적 사실을 숨기고 싶어서였을까? 일본은 일제강점기에 선소의 대부분을 훼손했다고 전한다. 훼손된 선소의 유적을 발굴 조사해서 현재 굴강, 대장간터, 세검정, 군기고, 계선주 등을 복원했다. 

굴강은 조선시대 해안에 만든 작은 항만시설이다. 배를 정박해서 고치거나 물자를 싣고 내리던 곳이다.

선소유적지 굴강은 직경 42m 안팎의 타원형으로 거북선 두 척이 동시에 정박할 수 있는 규모다. 북쪽을 향해 너비 9m 정도의 입구를 냈다. 

▲ 선소 대장간.

굴강 한쪽 옆에 벅수 2기가 있다. 벅수는 돌로 만든 장승인데 선소유적지 맞은편 잔디밭에 2기, 망마산 기장골에도 2기가 남아 있다. 

▲ 선소유적지에 있는 세검정과 수군기.

굴강 부근에 대장간이 있고 더 안으로 들어가면 선소 집무실 및 지휘소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세검정과 창고였던 수군기를 복원했다. 

세검정과 수군기 건물 앞 갯벌로 나가면 작은 돌기둥이 서있다. 계선주라고 부르는 돌기둥은 높이 1.4m로 임진왜란 때 거북선과 판옥선을 매어 두었다고 전해지지만 바다로 돌출된 지형이라 선소의 초소가 있던 터 또는 초소에 세워놓은 벅수로 추정하기도 한다. 

▲ 선소유적지에서 예울마루로 넘어가는 길에서 본 풍경.
▲ 예울마루 옆 웅천해변에서 본 바다.

예울마루 전망대
선소유적지를 다 돌아보고 굴강이 보이는 바닷가에 앉았다. 삶과 죽음이 공존했던 전장의 바다를 상상해보지만 햇볕과 바람만 가득한 바닷가가 평온하다. 

갯물에 발 담근 새 한 마리 물끄러미 물을 바라보다가 쏜살 같이 머리를 물속으로 처박는다. 주둥이에 물고기 한 마리 물고 고개를 든다. 파닥거리는 생선의 몸부림을 제압하고 한입에 삼킨다. 치열한 삶과 죽음의 현장이다.       

▲ 예울마루 정원과 바다.

선소유적지 옆 오르막길로 올라가다보면 ‘예울마루 500m’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넓은 도로를 따라 걷는다. 오르막길을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바다가 펼쳐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울마루로 가는 길을 만나는데 바다 쪽으로 내려가지 말고 좌회전해서 조금 올라간다. 그 길 끝 무렵에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서면 웅천 앞바다가 눈 아래 보인다. 육지와 가까운 거리에 떠 있는 장도까지 방파제가 놓였다. 그 위로 자동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난다. 

▲ 예울마루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자동차가 지나고 나서 한 동안 아무도 지나지 않는 방파제는 그 자체가 서정이다. 그 서정 위로 남녀가 느리게 걸어간다. 각자 가지고 있는 서사의 낯선 거리만큼 떨어져 걷는 그들은 서정의 풍경 속에서 서로의 서사를 나눌 것이다. 

바다와 바닷가 마을과 섬과 사람들, 눈 앞에 펼쳐진 풍경만 남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가끔은 소리 없는 풍경이 마음에서 더 반짝인다. 

▲ 선소유적지 앞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먹는 새.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