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인연을 담은 집
가족의 인연을 담은 집
  • 홍예지 기자
  • 승인 2015.09.0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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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재(餘因齋)
▲ 외관.

[나무신문] 인연을 담은 집이라는 뜻의 ‘여인재(餘因齋)’.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자리한 듀플렉스(Duplex) 주택 여인재는 이름처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30대 초중반인 4명의 건축주는 오빠네 부부와 여동생 부부로, 내부 공간을 아낌없이 공유하며 그들만의 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편집자 주>

 

391호부터 3번에 걸쳐 (주)노바건축사사무소의 듀플렉스 주택 프로젝트가 차례로 소개됩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

 

▲ 외관.
▲ 외관.

4명의 건축주, 단독주택을 꿈꾸다 
‘가족’이라는 존재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로써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나’이다. 하지만 형제라는 관계는 추억을 공유하는 근접한 사이인 반면, 때로는 결혼 후 그 관계가 흐려지기도 한다. 자신의 배우자와 내 형제의 관계가 100% 좋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 <남측 입면도>
▲ <동측 입면도>

여인재의 건축주는 앞선 얘기와 정반대의 경우다. 연면적 207.22㎡(62.68평) 듀플렉스 주택에 거주하는 건축주는 오빠와 여동생네 부부다. 깊은 우애를 자랑하는 이들은 꿈만 꾸던 일을 현실로 이뤘다. 설계를 진행한 ㈜노바건축사사무소의 강승희 소장은 그들의 끈끈한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인재 건축주의 가족 구성은 특별한 경우였습니다. 여동생이 오빠 부인의 남동생과 결혼을 하며 겹사돈이 되는 행운을 얻었죠. 겹사돈으로 이뤄진 4명의 건축주 가족은 두 집 모두 아들 둘을 키우며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었고, 같이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훗날 살면서 생길 수 있는 다툼에 대비하고자 건축 기간 동안 8명의 가족이 아파트에 함께 살면서 같이 사는 연습을 미리 할 정도였죠.”

 

전형적인 틀을 벗어난 듀플렉스 주택 
해당 주택은 처음부터 두 식구가 살 수 있는 ‘듀플렉스’로 계획했다. 설계를 통해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으면서도 건축비를 반반씩 부담할 수 있어 경제적 부담이 덜 했기 때문이다. 강 소장이 설계 시 염두에 둔 부분은 ‘듀플렉스 같지 않은’ 주택을 만드는 것이었다. 

“듀플렉스 주택의 정형화된 틀을 깨고 싶었습니다. 흥미로운 구성을 통해 단독주택과 듀플렉스 주택의 이점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죠. 철근콘크리트를 닮은 덤덤한 외관과 달리 내부는 목구조의 아기자기함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건축가의 길을 걸어온 강 소장이 가족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4명의 어린 자녀와 4명의 건축주가 아파트와는 달리 ‘땅’이 선사하는 기쁨을 맛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주택 한가운데 중정이 위치하게 된 이유죠. 찻길로 나 있는 현관문을 통하지 않아도 중정을 통해 아이들이 마음껏 드나들 수 있어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습니다. 또한 중정을 아지트 겸 파티 장소로 활용할 수 있기에 실용적이라고 생각했죠.”

단열과 환기를 위해 창의 개수 및 배치도 고려했다. 북쪽으로는 최소한의 창을 내 에너지 손실에 대비하고 남쪽으로는 비교적 큰 창을 배치해 채광을 확보했다. 특히 강 소장은 메인창과 작은 창을 세트로 설치했는데, 평소에는 2개의 창문을 열어 환기가 잘되도록 유도하고, 여건이 안 될 시 작은 창을 통해 최소한의 바람길을 만들고자 배려했다.

 

▲ 여동생네 가족실.
▲ 여동생네 다락.
▲ 여동생네 아이들방.
▲ 여동생네 주방/식당.
▲ 여동생네 다락 계단실.

크로스 형태로 얽힌 내부 
여인재의 핵심은 ‘내부’에 있다. 오빠네 가족은 좌측 1층 거실과 주방/식당을, 2층 우측에 있는 침실 및 가족실을 사용한다. 반대로 여동생네 가족은 우측 1층 거실과 주방/식당을, 2층 좌측에 있는 침실 및 가족실을 사용한다. 각자 계단을 통해 상대방 거실의 2층으로 올라가는 형태다. 얼핏 보면 쌍둥이 집처럼 보이지만, 내부의 독립된 공간을 사용해 프라이버시를 유지했다. 

“내부를 반으로 균등하게 나눠 지낼 경우에는 향의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한 집이 좋은 향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경우가 생기죠. 그래서 크로스 배치를 통해 모든 향을 누릴 수 있게 했습니다. 중정을 공유하며 크로스 형태로 집을 지어 면적뿐 아니라 360도의 전망도 평등하게 나눌 수 있었죠. 아이들이 거주하는 4개의 방은 모두 남쪽을 바라보게 했는데, 이는 아이들을 위한 부모의 배려를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2층에서 아이들이 뛰어도 서로 가족이기에 이해할 수 있다는 마음이 녹아있는 부분이자, 크로스형의 내부가 가능했던 전제조건이기도 하죠.”

같은 면적으로 구성돼 있지만 주방/식당, 세면실, 화장실, 드레스룸의 형태는 오빠네와 여동생네 부부의 취향을 반영해 서로 다른 모습을 갖게 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 오빠네 가족실.
▲ 오빠네 가족실.
▲ 오빠네 거실.
▲ 오빠네 다락.
▲ 오빠네 세면실.
▲ 오빠네 안방.

미닫이문으로 다양한 공간 연출 
각 집은 거실의 미닫이문을 사용해 가변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으며 필요 시 게스트룸이나 부모님이 머무르는 공간으로 활용 가능하다. 

“외부 손님이나 부모님이 방문할 경우를 대비해 미닫이문을 통해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고려했습니다. 평소에는 미닫이문을 오픈해 확 트인 넓은 거실로 사용할 수 있고, 손님이 거실에 묵을 경우 미닫이문을 닫아 별도의 방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문 하나로 공간을 분리할 수 있어 알짜배기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두 가족 모두 운중천이나 녹지를 조망할 수 있는 북쪽에 안방을 배치하고, 2층의 가족실과 트여 있어 소통할 수 있는 다락은 아이들이 모여 뛰노는 놀이터로 만들었다. 각 집의 거실에서 외부 마당으로 나갈 수 있는 부분에 툇마루와 캐노피를 설치해 반 외부공간을 만든 점도 눈길을 끈다. 마당과 시각적인 소통뿐만 아니라 비 또는 눈의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 된다. 

 

늘 웃음이 가득한 여인재는 어린 자녀를 포함해 총 8명의 행복한 보금자리가 됐다. 누구 하나 부족함 없이, 혹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알찬 인생을 사는 이들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사진 = 노바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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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주)노바건축사사무소 강승희 소장 

 

“단독주택=여유로움”

 

현재 강승희 소장이 진행해온 프로젝트명은 ‘여유헌’, ‘여풍재’, ‘여여헌’, ‘여연재’ 등 이름부터 독특하다. 강 소장이 이러한 이름을 짓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앞선 프로젝트들이 비슷한 이름을 갖게 된 까닭은 여유, 여가, 남기다라는 뜻의 ‘여’를 넣어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단독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직접 ‘땅’에 접해있죠. 한옥의 경우에는 집을 꽉 채우는 것이 아닌, 채 나눔을 통해 공간을 배치하고 나뉜 공간 사이에 생긴 마당을 무언가 행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주택 설계 시 내부와 외부가 관계를 맺는 장소를 비워 그곳을 무언가로 채울 수 있는 가능성으로 남겨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건축가라는 직업은 무엇일까.

 

“건축물에 대한 스토리는 건축가가 만드는 것이 아닌, 건축주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여깁니다. 다만 건축가는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고 건축화시키는 것이죠. 각자의 사연과 요구 사항을 건축이라는 언어로 변환하는 것, 그것이 바로 건축가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가 소개

경희대학교 건축공학과와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원을 졸업한 강승희 소장은 현재 (주)노바건축사사무소 대표이자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강 소장은 목조건축대전 대상, 제주건축문화대상 본상, 경기도건축문화상 본상 등을 받았으며, 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다는 시간의 흐름 속에 함께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따뜻함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구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