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다
꽃을 보다
  • 나무신문
  • 승인 2015.09.07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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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강원도 정선 만항재 야생화
▲ 둥근이질풀이 숲길에 피었다.
▲ 만항재 들길

[나무신문] 야생화가 아름답다. 들판에, 산길에 아무렇게나 피어난 꽃이 아름답다. 바지자락이 일으키는 바람에 흔들리는 무언가가 느껴져 무릎을 꿇으면 그곳에는 이름 모를 작은 꽃이 피어있었다. 키 작은 꽃을 보려 때로는 엎드린다. 엎드려 얼굴을 들고 꽃을 마주본다.

  

▲ 만항재 숲길.
▲ 만항재 고갯마루에 있는 표지석.

1330m 고원에 핀 꽃
강원도 정선군 고한, 영월군 상동, 태백시가 만나는 해발 1330m 고갯마루 이름이 만항재이다. 

‘천상의 화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항재는 그 별칭처럼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가 피어난다. 꽃이 피지 않는 겨울에는 상고대가 피어 꽃 대신 여행자를 반긴다.

곰배령, 두문동재~금대봉~검룡소, 선자령, 만항재 등 야생화로 유명한 곳 중 먼저 만항재를 들렀다. 계절과 계절이 만나는 하늘 아래 꽃은 어김없이 피었다. 

 

▲ 만항재 숲에 길이 여러 갈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꽃을 본다.

부처꽃의 꽃말은 슬픈사랑이다. 곰취는 보물, 용머리는 님을 기다리며, 배초향은 향수, 마타리는 순진, 말나리는 존엄, 오이풀은 존경, 둥근이질풀은 새색시, 개미취는 너를 잊지 않으리, 큰까치수염은 매력, 어수리는 구세주, 투구꽃은 밤의 열림, 꿀풀은 추억, 모싯대는 모성애, 송이풀은 욕심, 두메고들빼기는 영원한 사랑, 잔대는 감사…

꽃말이 있어 꽃이 더 아름답다. 꽃이 있어 꽃말이 더 깊다. 꽃을 보며 꽃말을 새긴다. 꽃은 꽃말에 숨을 불어 넣어 살아 숨쉬며 다가오는 생명을 느끼게 한다. 꽃말은 꽃에 기품을 심는다. 

▲ 만항재 야생화들판.

꽃이 피어난 1330m 고원에 꽃을 보러 온 사람들이 숲속 꽃길을 거닌다. 사람에게도 꽃말 같은 이름 하나씩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휘발하는 하늘’ ‘비 냄새를 품은 바람’ ‘공기를 찢는 북소리’ ‘번뜩이는 밤의 눈’ 이런 식의 이름들 말이다. 

아니면 역동적인 이름도 괜찮겠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디언 이름처럼 ‘주먹 쥐고 일어서’와 같은 사람의 움직임을 옮긴 말로 사람의 기질을 상징하는 이름을 짓는 것이다. 

 

▲ 만항재 하늘숲공원.

숲으로 난 꽃길
만항재 고갯마루에 서면 사방이 다 꽃밭이다. 그곳에는 ‘하늘숲정원’ ‘천상의화원’ ‘바람길정원’ ‘야생화공원’ 등의 이름을 붙여 구역을 나누었는데 별 의미는 없어 보이지만 그 또한 무슨 소용이 있을 것도 같다. 

‘하늘숲정원’으로 들어간다. 무릎 높이에 둥근이질풀이 무리지어 피었다. 공중으로 삐죽 올라온 오이풀에는 잠자리가 앉았다. 잠자리는 오이풀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오이풀을 비비면 오이향이 난다고 한다. 

숲길을 따라 걷는다. 길은 더 깊은 숲으로 이어진다. 숲에 나무기둥을 세우고 줄을 매어 오솔길을 냈다. 갔던 길을 되짚어 돌아 나온다. 

▲ 자주꽃방망이.

‘하늘숲정원’에서 나와서 ‘천상의 화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숲이 하늘을 가려 빛이 걸러든다. 그 아래 꽃들이 피었고 그 사이로 오솔길을 냈다. 

숲속 오솔길은 여러 갈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봐야한다는 안내는 없다. 가고 싶은 데로 걷고 머물고 싶은 곳에서 쉬면 된다. 

둥근이질풀이 무리지어 피어난 풍경을 배경으로 말나리가 도드라지게 피었다. 여우오줌과 흰송이풀은 잘 살피지 않았으면 못 보고 그냥 지나칠 뻔 했다. 

잔대와 모싯대는 색과 모양이 비슷한데 확실히 다른 것은 잔대는 꽃술 같은 게 꽃 안에서 밖으로 삐죽 나와 있다. 그것으로 잔대와 모싯대를 구분한다. 

▲ 층층이꽃.

산솜방방이, 자주꽃방망이, 층층이꽃은 꽃 이름을 알려주는 작은 안내판이 없었다면 그냥 이름 모를 꽃으로 남았을 것이다. 

꽃을 알고, 그 이름과 생육을 알고, 그 내력과 꽃에 담긴 꽃말을 아는 것만으로도 꽃이 마음에서 깊어진다. 

 

능선의 노을과 마타리
‘천상의화원’에서 약 1.5km 정도 숲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만항재야생화공원’이 나온다. 그곳에도 야생화가 있는데 ‘천상의화원’에서 보고 느낀 야생화로도 충분하니 꽃을 보러 굳이 갈 필요는 없겠다. 왕복 3km 정도 되는 숲길을 걷고 싶은 사람들은 걸어도 괜찮을 것 같다. 

‘천상의화원’에서 다시 만항재 고갯마루로 올라온다. 꽃 하나하나에 얼굴을 맞대고 이름을 알고 꽃말까지 새기는 동안 해질녘이 되었다. 

▲ 잔대

고갯마루 삼거리에서 영월 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조금만 걸으면 시야가 트인다. 먼 곳부터 내가 서 있는 곳까지 농담을 달리하며 산줄기 능선이 겹겹이 쌓여 밀려온다. 그 위로 노을이 피어난다. 

내 앞에 피어난 노란색 마타리가 산줄기 위로 피어나는 노을을 나와 함께 바라본다. 그의 꽃말인 ‘순진’처럼 참 순진한 저녁 풍경이다.   

▲ 마타리가 산줄기 위로 피어나는 노을을 본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 둥근이질풀이 피어난 숲길.
▲ 들판
▲ 만항재 숲에 길이 여러 갈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꽃을 본다.
▲ 만항재공원 입구에 장승이 여러 개 있는데 그 중 하나에 안전모를 씌웠다. 광산지역이었던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 모싯대.
▲ 산비장이.
▲ 산솜방망이
▲ 오이풀에 앉은 잠자리.
▲ 패랭이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