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무렵부터 밤이 될 때까지
해 질 무렵부터 밤이 될 때까지
  • 나무신문
  • 승인 2015.08.2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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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부산 영도구 절영해안산책로
▲ 중리해변에서 본 석양.

남항대교 앞 바다 풍경, 바닷가 마을, 해안절벽 위 전망대, 기암괴석 갯바위, 몽돌 사이로 드나드는 바닷물 소리, 바다에 퍼지는 석양과 파도소리로 가늠하는 밤바다의 여운... 

부산 바다를 흠뻑 느낄 수 있는 절영해안산책로를 걷는다. 출발지점은 영도구 부산보건고등학교 아래에 있는 절영해안산책로관리소 건물이다. 도착지점은 태종대 정문이다. 태종대 정문에 도착한 뒤에 태종대 일주도로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정문에 도착하는 거리까지 다 해서 약 10km 정도 된다. 

 

▲ 해안산책로. 절벽 위에 난 길을 걷는다.

해지기 1~2시간 전에 출발
절영해안산책로는 언제 걸어도 좋다. 하지만 늦은 오후의 햇살과 바다에 피어나는 노을, 해진 뒤 파란 공기, 그리고 그 속으로 스미는 어둠까지 느끼려면 해지기 1~2시간 정도 전에 출발하는 게 좋다. 

▲ 절영해안산책로 출발지점.

절영해안산책로관리소 건물에서 출발한다.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잘 단장된 길을 걷는다. 길 왼쪽은 가파른 경사면인데 그 위에 마을이 있다. 

한국전쟁 이후에 살 곳을 찾아 몰려든 사람들이 바닷가 가파른 절벽 위에 집을 짓고 살면서 마을이 생겼다. 영화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 등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 피아노계단.

출발지점부터 약 800~900m 정도 걷다보면 가파른 계단을 만난다. 계단에 예쁘게 색을 칠했다. 이 계단을 피아노계단이라고 부른다. 

계단을 올라서서 이정표가 이끄는 대로 걷는다. 방금 전에 바닷가 길에서 올려보았던 마을을 지나 365계단을 내려서서 갯바위가 있는 바닷가에 도착한다. 

거대한 갯바위에 파도가 부딪혀 부서진다. 갯바위 위에서 낚시를 하는 아빠 옆에 예닐곱 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가 있다. 아빠는 휘어진 낚싯대를 움켜쥐고 줄을 풀었다 감았다 한다. 아이는 그 옆에서 갯바위에 내려앉은 저녁햇살과 놀고 있다. 

둥근 자갈이 깔려있는 곳으로 바닷물이 들고 날 때 공명하는 소리가 난다. 해녀의 숨소리 같다. 

길 이름에 ‘산책로’라는 단어가 붙었는데 슬리퍼 신고 여유를 즐길만한 ‘산책’의 분위기를 기대하면 안 된다. 바닷가 절벽에 놓인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해야 하고, 멋진 갯바위를 만나면 그 위에 올라가보기도 해야 한다.

작은 해변에 매점 있다. 땀에 젖은 옷을 말리고 목도 축일 겸 잠깐 쉬었다 가기로 한다. 아이스크림으로 더운 속을 달래며 바닷바람에 젖은 옷을 말린다. 

 

▲ 바닷가 계단길 난간. 돌로 만든 난간이 용 같다.

노을이 빛나는 시간
매점 주인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길을 묻는다. 태종대 정문까지 1시간이나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는 말을 듣고 일어섰다. 멋진 풍경을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진을 찍는 습관 때문에 다른 사람들 보다 좀 서둘러야 한다.  

사람마다 걷는 취향이 다르다. 웬만한 거리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주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경치 좋은 곳은 물론이고 간식이나 물을 먹기 위해 앉을 자리만 생기면 쉬었다 가는 사람이 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는 사람이 있고 아무런 말없이 걷는 사람도 있다. 이런 차이를 서로 존중해주면서 어느 정도 의견을 맞추고 양보하며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걸음이 빠르고 느린 것은 타고난 천성이니 쉽게 바꿀 수 없다. 이 경우에는 느리게 걷는 사람에게 맞춰 걷는 게 좋다. 

▲ 중리산을 넘어가다가 본 노을.

기우는 해가 바닷가 절벽을 주황빛으로 물들인다. 지금부터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햇볕의 향연을 즐긴다. 

빛이 만들어 내는 색의 온도차, 빛이 살갗에 닿는 질감, 자연을 물들이는 색감, 공기에 들어차는 빛의 농도, 바람에 실려 온 햇볕의 냄새까지 그렇게 햇볕은 이 길을 걷는 사람의 오감을 자극하여 여섯 번째 감각인 영감으로 가는 길을 열게 한다. 

 

▲ 태종대 일주도로 산책.

밤길
중리해변은 술판이다. 천막 아래 평상 마다 음식과 술병이 놓였다. 낮부터 술을 먹었는지 더러는 바닷가 모래밭에 누워 잔다. 

그런 풍경을 지나 중리산으로 접어든다. 산이라고는 하지만 높이가 150m 정도 되는 산의 허리를 둘러가는 길이고 길도 잘 나 있어 어렵지 않게 걷는다. 얼마간 산길을 올라가면 감지해변, 태종대 방향으로 가는 넓은 길을 만난다. 

중리산길을 걷다가 뒤돌아 본 하늘에 노을빛이 짙다. 하늘에서 빛나는 노을이 띠를 두른 구름 때문에 바다에 번지지 않고 부서진 몇 점 빛만 파도에 너울거린다. 

▲ 감지해변.

감지해변 불빛이 내려다보이는 정자에 도착했다. 폭죽을 터뜨리고 불꽃놀이는 즐기는 사람들 덕분에 밤하늘 불꽃도 카메라에 담는다. 가로등에서 퍼지는 빛을 빨아들인 카메라렌즈는 맨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빛줄기를 만든다. 

난장판이 된 감지해변을 지나 태종대 정문에 도착했다. 인공의 불빛이 곰팡이처럼 번지며 어둠을 사른다.     

▲ 블루문. 블루문은 파란색 달이 아니고 양력을 기준으로 보름달이 두 번 뜨는 현상이 생기는데 두번째 뜨는 보름달을 말한다. 사진은 지난 7월에 뜬 블루문.

태종대 정문 앞 식당에서 얼음 띄운 밀면을 먹으며 햇볕을 받아 달아오른 몸을 식힌 뒤 태종대 정문을 지나 태종대 일주도로를 따라 걷는다. 

띄엄띄엄 서 있는 가로등 불빛을 징검다리 삼아 걷는다. 시야가 트이는 곳에 전망대가 있다. 

어둠이 주둔한 바다는 소리만 허락한다. 멀리 남항의 불빛이 보이기도 하고 바다에 떠 있는 배의 불빛은 밤처럼 꿈뻑거린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