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 下, 정조는 장인을 아꼈다
수원화성 下, 정조는 장인을 아꼈다
  • 김오윤 기자
  • 승인 2015.08.13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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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木匠의 세계 16
▲ 정조어찰첩正祖御札帖, A letter of King Jeongjo, 1796년, 38.2×53.3, 수원화성박물관

[나무신문 | 수원화성박물관] 장인을 아꼈던 정조

화성축성 공사가 진행되는 2년 반 동안 정조는 공사의 원만한 진척을 위해 여러 가지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공사기간 동안 반사頒賜라고 해서 감독관과 여러 장인들에게 여름과 겨울 더위와 추위를 막을 물품을 때맞춰 하사下賜했다. 척서단滌署丹은 더위 먹은 사람이나 더위에 몸이 쇠약해진 사람을 치료하는 환약으로 정조는 공사 첫해인 1794년 6월 25일에 척서단 4천정을 당시 장인들의 등급을 매겨 감독과 패장에게는 2정씩, 목수 등 일반 장인에게는 1정씩을 내렸다.


한의학에 조예가 깊었던 정조는 노동에 힘들어하는 장인들에게 제중단濟衆丹이라는 영양제도 하사한다. 제중단은 여러 가지 음식으로 인한 배앓이에 효과가 좋은 약이다. 1795년 10월28일 기록을 보면 제중단 3천정을 패장과 편수에게는 각 7정, 일반 장인들에게는 2정씩 나누어 주었다.


1795년 11월에는 장차 닥쳐올 추위에 대비해 각 장인들에게 털모자 하나와 무명 1필을 나누어 준다. 조선시대 정3품 당상관 이상만이 토끼털로 만든 귀마개를 할 수 있었던 사정을 고려해보면 정조가 화성축성에 쏟은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화성유수 조심태는 정조의 털모자 하사에 대해 “공장工匠 조역배助役輩들 모두가 말하기를, 추위를 당해 힘들게 일을 하고도 질병을 면한 것은 임금님의 따뜻한 마음 덕분이다. 의복 1벌, 모자 하나가 추위를 걱정 없게 한다” 라는 장계를 올렸다.

 

축성의 노고를 치하하다
정조는 화성축성 기간 동안 공사를 총괄하는 책임자로 있었던 화성유수 조심태와 비밀편지를 주고받았다. 조심태는 1789년(정조 13) 수원부사로 임명돼 현륭원을 조성하고 수원부 읍치 이전을 담당했던 인물이었으며 1794년(정조 18) 화성유수로 부임해 화성성역에 관한 전반적인 일을 총괄했다. 정조는 조심태와 수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현지의 사정을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처리했던 것이다. 화성축성이 마무리 될 무렵인 1796년 9월경에 정조가 조심태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장인들의 노고를 치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朝於壯勇營有書, 而今又詳接役所事情
大且鉅之工役 今是順成
甚幸甚幸
當初七萬丁云云, 可謂迂矣
無論爲此爲彼 今則順完, 何等多幸
此後酌勞之方, 何以順好耶
後便示之也

아침에 장용영壯勇營 편으로 편지를 받았는데,
지금 다시 화성華城 성역소城役所의 자세한 사정을 전해 들었다.
거대한 공사를 이제 순조롭게 마쳤다 하니 너무도 다행이다.
당초에 7만 명의 일꾼이 필요하다고 한 말은 사리에 어두운 말이라고 하겠다.
이렇든 저렇든 간에 지금은 순조롭게 마쳤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차후 일꾼들에게 보답할 방법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다음 편지에 알려 달라.

 

▲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Hwaseong seongyeok-uigwe, 1801년(순조 1), 36.8×22.8, 영인본, 수원화성박물관

대호궤의(大호饋儀) 

장인과 일꾼에게 음식을 크게 내려주는 행사를 호궤牛高饋라고 한다. 정조는 화성축성 기간 동안 모두 열한차례의 호궤를 베풀었는데 해가 바뀌어 공사를 새로 시작할 때, 여름 무더울 때, 공사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에 시행하였다. 『화성성역의궤』 권2 의주儀註에는 대호궤의 절차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호궤의는 동장대에서 거행하였다. 먼저 임금이 술을 내리는 탁자 하나를 동장대의 북쪽 편에 놓는다. 성역 감독 당상과 도청都廳, 낭청郎廳, 장관將官의 자리를 계단 위에 등급마다 자리를 달리하여 여러 줄로 놓고, 원역員役과 기술자 등은 문 밖의 넓게 트인 곳에 각각 명색에 따라 가로 여러 줄로 설치한다. 그날 마땅히 음식을 받을 당상 이하는 각각 융복戎服을 갖추되 기술자들은 일할 때의 복장으로 참여한다.’


이 내용은 대호궤의大牛高饋儀에 삽입된 그림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1796년 8월19일(정조 20) 화성성역이 마무리된 것을 기념하여 동장대에서 크게 음식을 베풀며 잔치가 열렸다. 호궤가 끝난 후에도 공장工匠들을 따로 불러 노고를 위로하는 자리를 가졌다. 땀 흘려 일하는 장인과 일꾼의 노고를 알고 치하하는 것은 위정자爲政者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기술자들이 사회적으로 대우받지 못했던 조선시대에도 나라의 큰 공사에 종사한 장인들에게는 각별한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자료제공 _ 수원화성박물관(담당 학예팀 오선화 031.228.4209)
에디터 _ 박광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