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 上, 22직종의 화성축성 장인
수원화성 上, 22직종의 화성축성 장인
  • 김오윤 기자
  • 승인 2015.08.10 15: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大木匠의 세계 15

[나무신문 | 수원화성박물관] 수원화성은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2004년에는 미국토목학회로부터 ‘역사적 토목 구조물(Historical Civil Engineering Landmark)’로 지정받음으로써 문화적 기술적 우수성과 함께 공학적인 가치를 인정받았다. 미국토목학회는 선정사유로 화성축성에 참여한 장인들에 대한 임금제도, 설계에서부터 축성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의 우수성을 꼽았다. 미국토목학회가 꼽은 과학적인 임금제도는 정조시대의 산물이다.


일당을 기준으로 직종별 차등지급하는 임금제도는 1789년 문희묘공사에서 시작해 화성성역에서 더욱 체계화 됐다. 정조는 땀 흘려 일하는 장인들과 일꾼이 화성축성의 주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적정한 임금지급과 함께 장인의 노고를 치하하는 각종 행사를 개최했다. 전통 건축의 맥이 장인을 통해 이어짐을 정조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Hwaseong seongyeok-uigwe, 1801년(순조 1), 36.8×22.8, 영인본, 수원화성박물관
▲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Hwaseong seongyeok-uigwe, 1801년(순조 1), 36.8×22.8, 영인본, 수원화성박물관

화성華城은 1794년(정조 18) 1월부터 1796년(정조 20) 9월까지 총 2년 9개월에 걸쳐 축성築城된 수원의 읍성邑城이다. 화성은 축성 이후 모두 세 차례의 대규모 수리공사가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1846년(헌종 12) 폭우로 인해 화홍문, 남수문, 매향교가 무너지고 방화수류정, 팔달문 등의 건물이 피해를 당해 1848년(헌종 14) 시행된 수리 복원공사이다. 두 번째는 일본총독부에 의해서 장안문長安門을 비롯한 화성의 주요 건축물 수리가 진행됐던 1930년대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한국전쟁 이후 파괴된 화성에 대한 수리 복원 공사가 있었던 1975년에서 1978년이다.

 

▲ 화성 축성에 함께한 22직종의 장인

22직종의 화성축성 장인

화성의 축성 공사에는 모두 22종 1840명에 이르는 당대當代 최고의 전문 기술자들이 동원됐다. 축성공사에 참여한 장인 가운데 약 60% 정도는 한양漢陽에 거주했던 인물들이었으며 나머지 40%는 수원부水原府와 개성부開城府 등 기호지방畿湖地方에 살았던 장인들이었다. 한양에 거주했던 장인들의 약 1/3은 관청에 소속된 관장官匠으로 선공감繕工監 및 내수사內需司 등 공조工曹에 속한 인력과 훈련도감訓練都監, 금위영禁衛營, 어영청御營廳 등 군영軍營에 소속된 인력이 각각 반半을 차지했다. 그러나 화성성역 이후 공조나 군영 등 관청에 소속된 장인들이 성역城役에 동원되는 사례는 거의 찾아 볼 수 없게 된다.

자료제공 _ 수원화성박물관(담당 학예팀 오선화 031.228.4209) 
에디터 _ 박광윤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