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따라 이어지는 옛 마을
길 따라 이어지는 옛 마을
  • 나무신문
  • 승인 2015.08.0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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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경남 하동 지리산둘레길 하동읍내~서당마을 구간
▲ 상우마을 앞 들판.

하동읍내에 있는 지리산둘레길 하동센터에서 출발해서 바람재를 지나 율동마을, 관동마을, 상우마을, 서당마을에 이르는 약 7.3km 코스의 지리산둘레길을 걷는다. 둘레길이 다 그렇지만 이 코스도 길을 따라 걷다보면 옛 마을이 여행자를 반긴다. 해발고도 260m 정도 되는 산을 넘는 게 오르막길의 전부이니 힘들이지 않고 산책하듯 걷는다. 

 

▲ 지리산둘레길 하동센터

하동읍내에서 바람재까지
하동버스터미널에서 약 400m 거리에 지리산둘레길 하동센터가 있다. 하동센터에 들러 오늘 걸을 길의 정보도 얻고 물도 보충하고 화장실도 들른다. 

하동센터에서 나오면서 우회전하면 지리산둘레길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계단을 올라간다. 갈림길 마다 이정표가 있으니 어렵지 않게 길을 찾을 수 있다. 

▲ 지리산둘레길 하동센터에서 나와 우회전해서 이정표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그렇게 걷다가 만난 첫 풍경은 커다란 소나무 몇 그루가 모여 있는 장면이었다. 그곳에 도착하니 앞서 걷던 사람이 쉬고 있다. 

소나무가지 사이로 하동읍내 들판 풍경이 살짝 보였다. 커다란 소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 직진 하다보면 지리산둘레길 이정표는 여행자를 산으로 인도하는데 그냥 무시하고 포장도로로 조금 더 걷는다. 그곳에서 하동읍내와 들판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풍경을 감상하고 둘레길 이정표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서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산길로 접어든다. 

▲ 지리산둘레길을 걷다가 본 하동읍 들판.

완만한 오르막길은 동네 뒷산 같다. 천천히 걸으며 숲의 향기를 즐긴다. 산책하듯 오솔길을 걷는다. 출입금지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린 곳이 보인다. 지리산둘레길을 걷다보면 사유지를 알리면서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볼 수 있다. 또한 농민들이 농사짓는 터를 지나가기 때문에 열매 하나 가지 하나도 만지지 말아야 한다. 가지고 간 휴지나 음식물 또한 다 가지고 와야 한다. 

숲길이 끝나는 곳에서 포장도로를 만난다. 이곳이 바람재다. 바람이 넘나든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선선한 바람에 땀을 식힌다. 

 

▲ 율동마을에서 관동마을 가는 길.

바람재에서 관동마을까지
바람재부터 포장길을 걷는다. 내리막이거나 평지를 걷기 때문에 힘들지 않다. 바람재를 지나서 처음 만나는 마을이 윗밤골마을이다. 

▲ 윗밤골마을.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길에서 보이는 집은 한 채 뿐이다. 푸른 숲에 둘러싸인 자연을 닮은 집 한 채가 여유롭다. 윗밤골마을 아래가 율동마을이다. 율동마을로 내려가면서 길은 넓어진다. 멀리 들판도 보이고 희미한 산줄기도 한 눈에 들어온다. 

윗밤골마을이나 율동마을이나 모두 밤이 많아서 붙은 이름이다. 길이 넓어지는데 그늘은 없다. 길가에 서 있는 큰 나무 아래 그늘이 좋다. 

▲ 해바라기가 핀 관동마을.

율동마을 다음에 나오는 마을이 관동마을이다. 땡볕을 고스란히 밭으며 걷는데 습도가 높아 옷이 몸에 척척 감긴다. 쉴 곳을 찾는데 길 가에 큰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그 아래 의자도 있다. 그늘도 좋다. 나무 그늘 아래서 쉬면서 마시는 물 한 모금이 달다. 

마을 길 옆에 해바라기가 피었다. 해 따라 고개 돌리며 피어나는 해바라기라지만 땡볕 아래 해바라기꽃도 고개를 숙였다. 길 옆에 낡은 집 한 채가 보인다. 붉은 슬레이트지붕에 녹이 슬었다. 아궁이 위 흙벽이 시커멓게 그을렸다. 집이 들판과 먼 산을 보고 있는 듯하다. 이런 집은 그 자체로 무슨 이야기를 품은 것 같다. 

 

▲ 관동마을 오래된 집.

관동마을에서 서당마을까지
관동마을 아줌마들이 담벼락 그늘 아래 평상에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이렇게 더운 날 혼자 걷느냐고 걱정스런 말투로 인사를 건넨다. 말 한 마디가 따듯하다. 

상우마을로 가는 길에 커다란 정자나무가 사람을 먼저 반긴다. 이곳도 어김없이 나무 그늘 아래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 있다. 나무 뒤에는 정자가 있었다. 정자에도 아줌마들이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 관동마을 커다란 나무 아래 의자가 있다.

마을 앞 푸른 논이 시원해 보인다. 둘레길 이정표를 따라 마을 골목길로 들어서는데 낡은 담벼락 아래 피어난 봉숭아꽃을 보았다. 봉숭아꽃물 들이던 추억이 떠올라 봉숭아꽃 앞에 앉았다. 담장 안에서 자란 감나무 가지가 담장 밖 골목길까지 나왔다. 

▲ 상우마을 오래된 담 아래 봉숭아꽃이 피었다

꾸미지 않은 시골마을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숨을 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언제나 자각하지 못하지만 사람은 끊임없이 숨을 쉰다. 상우마을 골목길 봉숭아꽃과 감나무가 있는 풍경은 마음의 숨통을 틔워준다. 그렇게 또 한 번 위안을 받는다. 

길은 도착지점인 서당마을로 이어진다. 저 멀리 저수지 둑이 보이고 길이 그 옆으로 구불거리며 올라간다. 그 어디쯤 커다란 나무 한 그루 서 있다. 서당마을 이팝나무다. 

▲ 상우마을 길 옆에 피어난 꽃

나무 아래로 농기구를 든 아줌마가 지나간다. 나무와 사람이 만들어 내는 아련한 풍경이다. 그 나무를 지나 서당마을회관 앞에 도착했다. 지리산둘레길 하동읍내~서당마을 구간을 다 걸었다. 

하동읍내로 나가는 버스는 두 시간 정도 뒤에 온단다. 마을회관 정자에 모인 할아버지 할머니가 더운데 평상에 앉아 쉬라신다. 몇 마디 인사 끝에 한 아저씨가 핸드폰 사진을 보여주신다. 하얀 꽃으로 덮인 이팝나무였다. 이 마을을 다시 와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