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밥_BGM:일종의 자랑
법과 밥_BGM:일종의 자랑
  • 서범석 기자
  • 승인 2015.08.0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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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서범석의 칼럼 혹은 잡념

[나무신문] ‘법과 밥.’ 나는 지난 주 신문에 이 제목으로 칼럼을 쓰려다가 말았다. 그러니까 ‘법과 밥’이라는 제목만 태어나 그대로 세상을 하직할 뻔한 이 칼럼이 지금 되살아나고 있는 셈이다. 

나는 보통 신문을 마감하는 날 점심을 먹으며 주제를 고르고, 밥알을 곱씹으며 대충의 얼개를 구상한 다음 사무실에 돌아와 칼럼을 완성한다. 그런데 지난 주 점심시간은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얼개를 구상할 수 없었고, 잔반통처럼 뒤섞인 생각을 칼럼으로 풀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법과 밥’으로 법은 누군가의 밥그릇을 빼앗아도 안 되고 반대로 밥통 취급을 받아서도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물론 목재법에 관한 얘기다. 지금 업계에서는 목재법을 두고 딱 이 두 가지 반응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칼럼은 완성되지 않았고, 나는 곧 칼럼이 실리지 않은 신문을 들고 목재법을 주제로 한 어떤 간담회를 찾았다. 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간담회에서는 때마침 목재업계의 한 원로께서 내가 ‘법과 밥’으로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목재법은 일부 큰 업체들을 제외한 대부분 목재업체들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도록 하는 법이라는 성토였다. 산업현장을 너무 모르는 밥통 같은 법이 선량한 사업주와 그 종업원들의 밥그릇을 빼앗으려 한다는 울분이었다.

잠깐의 휴식시간에 나는 그 원로를 찾아 인사를 드렸다. 원로는 그렇잖아도 잘 만났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거 칼럼 쓰는 양반 있지? 그 사람이 누구야? 내가 요즘 너무 잘 읽고 있어. 아주 내 생각과 딱 들어맞는 얘기가 많아.”
나는 그 분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름은 모르겠어.” 원로는 내게서 건내받은 나무신문을 급하게 넘기면서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어허, 여기에는 없네. 거 있잖아,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반으로 가르는 시늉을 하며) 얼굴이 이렇게 반만 나오는 양반 말이야?”

그 원로께서는 내가 이 칼럼을 쓰는 장본인이라는 것에 적잖이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런데 사실을 알고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내가 쓰고 있는 이 칼럼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들리는 이야기와 그 행간(나는 말에도 행간이 있다고 믿는다)에 흐르는 맥을 글로 옮겨 적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밥알이나 씹으면서 뚝딱 쓸 수 있는 비결이며, ‘그 울분에 찬’ 간담회에서 관을 대표해 참석한 한국임업진흥원 박병수 팀장이 박수갈채를 받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박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오늘 초대받지 못했지만 업계 분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저는 후배들에게 늘 ‘제발 업체에 나가보라’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업계와 함께 호흡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