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돌 말아 완성한 꿈결 같은 집
돌돌 말아 완성한 꿈결 같은 집
  • 홍예지 기자
  • 승인 2015.07.2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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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롤 하우스

[나무신문] 독특한 생김새의 부지에 더 독특한 주택 한 채가 경남 밀양에 들어섰다. 이름하여 ‘롤 하우스’. 롤 케이크처럼 돌돌 말린 외관이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작품처럼 보이는 주택은 외관만큼이나 재미있는 설계로 ‘역시 문훈 소장’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단독주택 같지 않은, 목조주택 같지 않은 등 다양한 수식이 붙는 롤 하우스는 개성 있는 건축주와 문훈 소장이 만나 ‘세상에 하나뿐인’ 가족의 보금자리로 완성한 공간이다. <편집자 주>

 

문훈 소장, 다시 한 번 한 획을 긋다 
단독주택의 가장 큰 장점은 획일화된 공간인 아파트와는 달리 나만의 개성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기계 속 부품처럼 공장에서 같은 방식으로 찍어낸 것이 아닌, 오랜 시간 공들여 완성한 공간. 잘 짜인 설계는 진열대에 널린 기성복이 아닌, 편안한 맞춤복과 같다. 
단독주택이 인기를 얻음에 따라 설계에 대한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많은 이가 설계비에 대해 두려워하지만, 건축과 설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일정 비용 이상의 금액을 투자한 설계는 건축주의 마음에 쏙 드는 결과물로 탄생한다. 

문훈발전소의 문훈 소장은 업계에서 ‘괴짜’, ‘이단아’ 등으로 불릴 정도로 개성 있는 설계를 선보이기로 유명하다. 그림,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분야의 경계를 오가며 건축 지평을 확장하고 있는 문 소장은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초대 작가로 선정돼 건축가로서는 유일하게 일러스트레이션 작품 40점이 전시된 바 있으며, 최근 시카고 건축 비엔날레에 초대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만드는 설계는 단연 눈길을 끈다. 건축주 특징과 자신의 철학을 녹여 낸 완성품들은 하나의 구조물을 넘어 예술품이 된다. 

“흔치 않은 모양일수록, 평범하지 않은 조건일수록 설계할 의욕이 더 생긴다”고 말하는 문 소장은 늘 그와 비슷한 건축주를 만난다. 

 

▲ <1층 평면도>
▲ <2층 평면도>

역동적인 에너지를 품은 대지 
건축주가 문 소장을 찾아온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건축주 부부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문 소장에게 적지 않은 설계비를 지불하면서까지 자신들이 원하는 집을 짓고자 했다. 밀양에서는 조금 더 저렴한 가격으로 설계가 가능했으나, 부부의 신념은 확고했다. 

건축주 부부가 문 소장에게 내 건 조건은 생각 외로 간단했다.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 ‘방의 크기는 작아도 좋으나 3개의 방이 필요하다는 것’, ‘거실에 철봉을 설치해 아이들과 함께 운동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

▲ 거실에 설치된 철봉.
▲ 아이 방과 다락 모습.

“어느 날 사무실로 젊은 교사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무릎을 탁 칠 만큼 기가 막힌 모양의 부지를 들고서요. 긴 칼자루 같이 생긴 극단적 비례가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설계 전부터 부지 모양 자체가 역동적인 에너지를 뿜고 있었죠.”

문 소장은 특징 있는 대지의 모양처럼 이상적인 콘셉트를 떠올렸고, ‘롤(Roll)’이라는 단어가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건축주의 요구대로 설계하고 보니 공간이 모자라더라고요. 그래서 롤 형태를 생각했습니다. 전부 넣을 수 없으니, 돌돌 말아 본 거죠(웃음). 덕분에 특이한 구성의 배치가 가능했습니다.”

3개월의 설계 기간을 거친 롤 하우스는 특별하고 유일한 외관을 갖게 됐다. 양파 껍질처럼 벗기면 벗길수록 매력이 넘치는 공간으로. 

▲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
▲ 게스트룸.

단 차를 활용해 설계한 내부  
128.00㎡(38.72평)의 아담한 대지에 들어선 연면적 99.02㎡(30.00평) 규모의 롤 하우스는 실속 있는 설계로 평수에 비해 확장감이 느껴진다. 또 스터코플렉스와 컬러강판으로 마감해 멋스러움을 더했다. 

문 소장은 설계 시 롤 하우스만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롤 하우스는 작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웅장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진입마당을 위한 헛벽과 구조가 있어 크기가 과장돼 보이는 것도 한몫하죠. 내부는 길고 큰 공간이라는 주제 하에 독립성을 가진 공간들을 벽 대신 단 차로 구성한 것이 특징입니다.”

실내에 들어서면 작은 거실과 마루, 식당, 주방 순으로 공간이 몇 단씩 높아진다. 내부를 샅샅이 감상하며 계단을 오르면, 긴 복도를 따라 욕실, 아이 방, 부부 침실 등이 배치된 2층 공간이 나타난다,   

“거실, 주방/식당 등 공용공간이 놓인 1층과 달리 2층은 사적인 공간으로 구성했습니다. 이 중, 다락이 있는 아이 방은 천창을 통해 따스한 햇볕뿐만 아니라 반짝이는 밤하늘을 보며 아늑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 현관에서 바라본 1층 내부.

도시에서 단독주택의 여유를 즐기다 
내부 중, 눈길을 끄는 공간은 게스트룸과 정자 공간이다. 특히 정자 공간은 포근함을 주는 가족만의 시크릿 공간이다.

“별도의 게스트룸을 만들어 추후 여러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안방과 복도가 만나는 지점에 작은 툇마루 공간과 다락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안방에 들어서면 탁 트인 창 앞으로 붉은 벽이 나타나죠. 그 헛벽과 연결된 철제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정자 공간이 펼쳐집니다. 가족들이 오순도순 즐길 수 있는 공간이죠.”

예술적인 모습 속에 실속까지 갖춘 롤 하우스는 건축주 부부에게 보물 같은 집이 됐다. ‘상상은 현실이 된다’고 했던가. 스케치에서 톡 튀어나온 듯, 개성 있는 주택에서 추억을 쌓을 건축주 가족의 앞날이 기대된다. 
홍예지 기자 hong@imwood.co.kr 
사진 = 남궁선

 

인터뷰 | 문훈발전소 문훈 소장

“모든 영감은 건축주로부터”

문훈 소장을 만난 대다수 사람은 그의 화려한 언변과 실력에 혀를 내두른다. 그에게는 확고한 건축 철학이 있다. 

“한 번의 만남에도 상대방이 어떠한 사람인지에 대해 명확히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건축주의 말과 행동에서 영감을 받고, 실질적인 기능과 접목한 다음 누구보다 즐겁게 일을 추진하는 것이죠.”

독특한 건축물만큼 그가 듣고 싶은 칭찬은 따로 있다.

“제가 가장 듣고 싶은 칭찬은 ‘주택 같지 않다’는 말입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가 아니란 얘기죠. 고정 관념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획일화된 구조가 아닌 건축주의 개성이 드러난 건축물을 짓고자 합니다.”

이어 문 소장은 목조주택이 마치 ‘수채화’ 같다고 표현한다.

“목조주택은 빠른 기간 안에 완성할 수 있어 수채화 같은 느낌이 듭니다. 경쾌함과 가벼움도 느낄 수 있죠. 장단점은 있지만, 제대로 활용하면 훌륭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건축가 소개
인하대학교 건축과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MIT 건축대학원을 졸업했다. 2001년부터 문훈발전소를 설립,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작업으로는 ‘락잇수다’, ‘롤리팝’, ‘K-POP 커브’, ‘투문정션’, ‘피노키오 박물관’ 그리고 2005년에 건축가협회상을 받은 ‘상상사진관’ 등이 있다. 2009년 건축학과 교수들이 뽑은 ‘한국 건축을 대표하는 12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달로 가는 제멋대로 펜’과 ‘집짓기 바이블’(공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