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산천에서 보낸 하루
푸르른 산천에서 보낸 하루
  • 나무신문
  • 승인 2015.07.2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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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경남 하동 지리산둘레길 대축마을~원부춘마을 구간

태풍이 지나간 뒤 공기는 습기로 가득했다. 남도의 햇볕조차 습기를 다 말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끈적거리고 후텁지근한 공기가 피부에 닿는 느낌이 점액질 높은 액체가 척척 늘어지는 것 같았다.   

몸에서 나는 열기가 발산되지 못하고 몸 안에서 응축되는 것 같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힘이 빠진다. 그렇게 지리산둘레길을 걸었다. 그리고 하동읍내에 도착했다. 

 

▲ 하동공설시장

하동공설 시장 두곡집
배는 고팠으나 밥 보다는 시원한 막걸리가 간절했다. 하동에 왔으니 하동에서 만든 막걸리를 먹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동막걸리를 찾아 하동공설시장을 몇 바퀴 돌았다. 

술집은 많았으나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지친 다리를 쉴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게 아니라 마음을 편하게 놓을 곳을 찾았던 것이다. 

▲ 하동공설시장 막걸리집. 하동막걸리가 맛있다.

유리창에 ‘하동막걸리’라고 적혀있는 ‘두곡집’을 오늘의 안식처로 정하고 들어갔다. 주인으로 보이는 70대 중반의 아줌마와 40대 중반 아줌마 두 명과 중년의 시골 남자가 있었다. 

두 아줌마는 언뜻 보기에도 모녀지간이었다. 중년의 시골 남자 앞에는 얼마 남지 않은 술국과 소주 두병이 놓여 있었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하동막걸리를 시켰다. 70대 중반의 아줌마가 반찬통에서 주섬주섬 반찬을 챙긴다. 열무김치와 콩자반, 볶음김치였다. 그리고 막걸리는 주전자에 담아낸다. 
오랜만에 맛보는 맛있는 막걸리다. 달지 않고 걸쭉하지 않으면서도 풍미가 살아 있다. 10여 분 사이에 막걸리 두 병을 비웠다. 발산되지 못하고 응축되었던 몸의 열기가 녹아 사라졌다. 뿌연 수증기가 장막을 친 것 같았던 머릿속도 맑아진다. 더위에 지친 몸도 녹록해지면서 편안해진다. 

중년의 남자와 통성명을 하고 직업과 근황을 이야기하는 중에 팔목에 새겨진 문신을 보았다. 문신은 위협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문신은 주름진 얼굴에 웃을 때 드러나는 드문드문 빠진 이와 더 잘 어울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자의 발음이 점점 불확실해졌다. 그가 하는 말 중 절반 이상을 못 알아들을 때쯤 40대 중반의 여주인이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막차는 타셔야지요’라는 말 한 마디로 중년의 남자를 일으켜 세운다. 

어둠은 내렸고 막걸리는 다섯 주전자 째를 채우고 있었다. 더 이상 손님은 없었다. 밤은 흐릿한 전등 아래 술상 앞에 앉은 우리 세 명을 오붓하게 감싸고 있었다. 70대 아줌마가 살아온 세월을 한 토막 잘라 술상에 풀어낸다.   

지리산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투입된 국군과 경찰의 만행도 서슴없이 이야기했다. 당시 지리산 인근 마을에서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양민을 죽인 일이 있었고 산청 방곡리에 가면 그렇게 죽은 양민의 원혼을 달래는 위령탑도 있는 게 사실이다. 

당시를 떠올리는 아줌마의 눈시울이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아줌마는 ‘어른들이 얘들은 죽이지 않겠지’라는 생각에 엄마의 배를 끌어안고 우리 엄마 살려달라고 목이 터져라 울고불고 했다는 대목에서 눈물을 훔친다. 당시 엄마 뱃속에 아줌마의 동생이 있었다는 말은 눈물을 닦으며 깊은 숨을 몰아쉬고 나서야 이었다. 밤이 부드럽게 깊었다.   

▲ 하동공설시장 안에 있는 우물 예로부터 이곳에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지리산이 엄마의 품 같다는 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내기 때문이리라. 내일 또 그 지리산으로 들어간다. 

 

▲ 대축마을에서 평사리 들판으로 가는 축지교 위에서 본 풍경.

푸른 들판 푸른 길
다음날 아침 9시가 다 돼서야 눈을 뜨고 늦은 아침을 먹었다. 하늘은 날아갈 듯 파랬고 하얀 구름 몇 점 떠 있어 명랑했다. 

물과 계란 음료수 등을 사서 배낭에 넣고 지리산둘레길 대축마을~원부춘마을 구간을 걷기 위해 출발지점인 대축마을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 평사리 들판
▲ 평사리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

지리산둘레길 이정표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지축교를 건너면 평사리 들판이 나온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배경무대가 이곳이다. 드넓은 들판이 온통 초록색이다. 초록의 들판을 배경으로 하얀 새 한 마리 마음대로 날아든다. 저 멀리 서 있는 소나무 두 그루는 갖은 세월을 다 살아내고 서로를 품은 부부를 닮아 ‘부부송’이라 부른다. 멀리 산줄기가 선명하게 보인다. 

▲ 평사리 들판에 있는 ‘부부송’
▲ 평사리 들판

습기가 가신 공기는 상쾌했다. 햇볕은 쨍쨍했지만 경쾌하게 빛난다. 살갗을 스치는 바람이 부드럽다. 

둑길을 걸어 입석마을로 접어든다. 등에 땀방울이 구른다. 어제 먹은 술기운이 몸에서 마지막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 입석마을 골목길

녹슨 대문과 슬레이트지붕, 한쪽 구석이 무너진 돌담, 지푸라기 드러난 흙벽, 그런 공간을 잇는 골목길, 입석마을은 그렇게 남아 있어서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의 추억으로 나를 인도하고 있었다. 

추억은 언제나 따듯하다. 편안한 마음에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마을을 벗어나 산으로 접어든다. 산길 초입에 지리산둘레길 이정표가 서있다. 도착지점인 원부춘마을까지 4.9km 남았다. 

▲ 입석마을에서 산길로 접어드는 초입에 지리산둘레길 이정표가 있다

오르막이 계속 이어진다. 체력을 안배해가며 천천히 걷는다. 능선을 만나 능선길을 따라 걷는다. 능선에는 언제나 바람이 분다. 바람에 땀을 식히며 마시는 물 한 모금이 달다. 
숲이 푸르니 길도 푸르다. 푸른 길을 걷는 마음도 푸르게 물든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구간 어디쯤에서 시야가 트인다. 소나무가 있는 바위에 올라 바라보는 풍경 저 멀리 섬진강이 살짝 보인다. 

▲ 원부춘마을 위에 있는 계곡
▲ 원부춘마을 위에 있는 계곡

다시 길 위에 선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 반복되다가 이내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내려가는 길은 계곡을 끼고 걷는 길이다. 

계곡이 보이지는 않지만 물소리는 들린다. 계곡이 드러나는 구간에서는 물길을 옆에 두고 걷기도 하고 물길을 건너야 하는 곳도 있다. 

바위틈으로 흐르는 계곡물로 얼굴을 씻고 목덜미를 훔친다. 습기 머금은 나무와 돌에 이끼가 끼어 미끄럽다.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며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는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은 금세 풀로 뒤덮인다. 계곡 옆길을 걷는데 길이 풀섶으로 사라졌다. 이정표도 없고 등산로를 알리는 리본도 없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풀섶을 헤치며 길을 찾는다. 희미한 길의 흔적을 찾았다. 풀리지 않는 문제의 실마리를 잡은 듯 발걸음은 더 빨라진다. 

▲ 지리산둘레길. 원부춘마을 위쪽에 있는 계곡

아래로 내려갈수록 계곡은 제법 그 모양을 갖추었다. 물소리도 웅장하게 울린다. 원부춘마을 꼭대기에 있는 암자를 만났다. 그곳부터 포장된 길을 따라 내려가면 원부춘마을회관이다. 마을회관 앞 길 건너 계곡이 그럴싸하다. 작은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통쾌하게 부서지며 흐른다. 

하동읍내로 나가는 버스 막차가 끊긴지 오래다. 나도 사람 북적대는 도시로 내려가기 싫었다.    

 

▲ 지리산둘레길. 사진에 보이는 나무 앞에 서면 섬진강이 내려다 보인다
▲ 지리산둘레길. 저 아래 섬진강이 살짝 보인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