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창 고택 鄭汝昌 古宅
정여창 고택 鄭汝昌 古宅
  • 김오윤 기자
  • 승인 2015.07.2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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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석환의 한국전통건축탐방 10 - 한국의 名家 10/14
▲ 사랑채

[나무신문 | 한재 터·울건축 김석환 대표] 입지 

▲ 한재 터·울건축 김석환 대표

정여창(鄭汝昌) 가옥이 소재한 함양은 남쪽의 지리산과 북쪽의 덕유산 그리고 동북쪽의 가야산 중간 지점으로 큰 산세에 둘러쳐 있다. 백두대간이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르며 지나고 있는데 지리산의 서북측 산록에는 남원이 있고 동북측 산록에는 함양이 있다. 함양 가까이에는 북측의 천황봉(1228m)과 황석산(1190m), 서쪽의 감악산(945m)이 둘러치고 있으며, 그 사이로 남강이 산청을 향해 흐른다.

 

함양군 지곡면 개평길 50-13 번지에 위치한 정여창 가옥은 조선시대 5현 중의 한 분인 문헌공 일두 정여창(鄭汝昌, 1450 ~1504) 선생의 고택으로, 고택 주위에는 들녘이 펼쳐 있고 남쪽으로는 평촌천이 흐르는데 개평들녘에서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며 가까이 있는 낮고 구릉진 산과 들이 너르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정여창 고택의 유적 명칭은 지정 당시의 건물주 이름을 따서 ‘함양정병호 가옥’이라 돼있다.


정여창 가옥이 있는 개평마을은 함양의 대표적인 선비마을로 하동 정씨와 풍천 노씨 그리고 초계 정씨, 3개의 가문이 오래도록 뿌리를 내리고 살아오면서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일두 정여창 선생, 옥계 노진 선생 등 역사적 위상이 높은 인물을 배출했다. 개평이라는 이름은 하천과 마을이 끼일 ‘개(介)’자처럼 생겼다는데서 유래됐는데 표지석이 서 있는 마을 입구에서 보면 좌우로 두 개울이 하나로 합류되는 사이로 개평마을이 들어서 있다.

 

▲ 사랑채 일우2

함양은 ‘좌안동 우함양’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유학자를 배출한 고을인데 정여창 고택이 있는 개평마을은 그 중심에 위치해 있다. 정여창은 조선 성종시대의 문인으로, 선생은 자신을 한 마리의 좀벌레에 비유해 일두라는 호를 썼는데 그는 입지를 중시해 [입지론]에서는 “전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막아야 한다.” 고 역설했다.

 

개울 옆으로 마을길을 걸어가다 보면 왼쪽으로 눈에 띠는 종바위(鍾巖)가 나타나는데 그 곳에 마을 우물이 있다. 이 우물은 옥계천 좌우의 자연암반 위에 있던 다섯 개의 샘물 중 하나였는데 우물을 파면 안 된다는 전설이 있어 마을 사람들은 이 우물 말고는 일절 다른 우물을 파지 않았다고 한다. 전해오는 풍수지리학적으로 보면 개평마을은 배가 떠나가는 행주형이라 마을에 샘을 파면 배에 구멍을 뚫는 것과 같다해 금기시 돼 왔는데 일제강점기 때 초등학교를 지으면서 이를 무시하고 다시는 일두 정여창선생 같은 분이 태어나지 못하도록 우물을 판 후로 마을이 점차 기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 사랑채 일우2

연혁 

현재의 정여창 고택은 그가 죽은 후 선조 무렵(1570년대)에 건축된 남도지방의 대표적 양반 고택이다. 천여 평의 대지에 크게 나누어 사랑채, 안채, 별당, 가묘, 곳간 등이 샛담으로 구분돼 있는데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조선 후기에 중건한 것들이다. 사랑채는 현소유자 정병호의 고조부가 중건했다고 하는데, 안채는 사랑채보다 건축연대가 더 올라가서 300년 전 청하현감을 지낸 선조가 중건했다고 전한다. 솟을 대문에는 5개의 충신·효자의 정려패가 걸려 있어 눈길을 끄는데 그것은 조선시대 사회제도의 일면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 안채

가옥 구성

대문에 들어서서 앞으로 바로 가게 되면 안채로 들어가는 일각문이 있고 동북으로 비스듬히 사랑채 전경이 눈에 들어오는데, 문헌세가(文獻世家), 충효절의(忠孝節義), 백세청풍(白世淸風)등의 편액이 걸려 있으며 앞 툇마루가 있고 높직한 댓돌 위에 세워져 있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ㄱ자형 평면에 내루가 앞으로 튀어나온 구조로써, 지면이 높은 안채와 아래채에 수평을 맞추기 위해 높은 기단 위에 새워져 있다. 가늘고 긴 석주(石柱)를 초석으로 삼았으며, 납도리 3량가의 홑처마 맞배지붕집이다. 그리고 내루는 구조가 간결하면서도 단아하고 소박한 난간과 추녀를 받치는 활주를 세우고 가늘고 긴 석주를 초석으로 삼았으며 누하의 주간을 판벽으로 막아 수장고로도 이용할 수 있게 한 것이 특이하다.

 

▲ 사랑채 마당
▲ 사랑채 툇마루 및 루마루 부분

사랑채 앞마당은 산과 골짜기를 만들어 돌을 배치하고 갖가지 나무를 조화롭게 심어 집 주위에 딸린 숲처럼 아름답게 꾸몄다. 그리고 사랑채 끝 담장 아래에는 석가산(石假山)을 조성해 바라보며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보통은 정원을 후원에 꾸미고 앞마당에는 평평한 흙마당으로 두는 일이 많으나 이 집에서는 사랑채의 내루에서 내려다보며 즐길 수 있게 꾸몄는데 지금은 후대에 바꿔 심은 나무들이 웃자라서 옛 모습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 중문 아래채 일우

일각문을 거쳐 다시 중문을 통과하면 안채가 나온다. 사랑채에 직각 방향으로 앉은 ‘ㅡ’자형의 안채는 넓고 반듯한 안마당을 두고 정면 7칸, 측면 1.5칸으로 남향으로 배치돼 있는데, 왼쪽에는 아래채가 있고 뒤편에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가묘(家廟)가 남향으로 배치돼 있으며, 가묘 동쪽에 정면 2칸, 측면 1칸의 광채가 있고 그 동측에 안사랑채가 놓여 있다.

 

정여창 고택은 구조적인 특성뿐 아니라 옛 장인의 손길이 고스란히 베인 세간들이 보존돼 있어 양반가의 기품 있는 생활상이 가득 느껴지는데, 이는 조선 중기·후기 주택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사당 및 곳간채

김석환  한재 터·울건축 대표. 1994년부터 터·울건축을 개설하여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삼육대, 광주대 건축과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1999년 건축문화의 해 초대작가 및 대한민국 건축대전, 대한민국 건축제 초대작가로 활동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일산신도시 K씨주택, 목마도서관 등이 있고, 저서로 <한국전통건축의 좋은느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