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조선시대 대목장 2
그림 속 조선시대 대목장 2
  • 김오윤 기자
  • 승인 2015.07.13 14: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大木匠의 세계 ⑪

[나무신문 | 수원화성박물관] 지난호에서는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 기산풍속도화첩箕山風俗圖畵帖,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경직도耕織圖를 소개했다. 이번호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직도耕織圖, 한양대학교박물관 소장 경직도耕織圖, 목기 깎기를 소개한다.

 

▲ 경직도 耕織圖, A painting related to plowing and weaving for farming, 19세기, 작가 미상, 각 135.5×49.4, 견본채색, 국립중앙박물관

경직도(耕織圖)
‘경직도’는 농사일과 잠직蠶職의 광경을 그린 그림이다. 『시경』의 ‘빈풍칠월편山風七月編’을 그린 ‘빈풍도’에서 유래했다. 전통시대 생산의 근본인 농사짓고, 누에치고, 옷감짜는 일에 종사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왕이나 왕비 등이 보고 그 수고로움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제작했다. 그리고 경직을 장려하기 위한 교화의 목적도 있었다.


‘경직도’는 처음 중국 남송南宋의 누숙樓璹(1090 ~ 1162)이 논갈기, 모심기, 벼베기, 도리깨질 등 경작하는 21개 장면과 뽕잎따기, 실뽑기, 베짜기 등 잠직하는 24개 장면을 그려 황제에게 바친 것에서 시작했다. 이후 그림의 소재로 계속 유행하다가 1696년 청淸의 초병정焦秉貞이 경류와 직류의 내용을 재구성하고 서양의 투시원근법 등을 반영해 ‘패문재경직도 佩文齋耕織圖’를 그린 후 목판화로 제작해 널리 보급시켰다.


우리나라에는 1498년 ‘누숙경직도樓璹耕織圖’가 처음 유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18세기초 ‘패문재경직도’가 전래되면서 본격적으로 성행했다. 조선후기에는 농가의 세시풍속과 결합해 ‘농가사시도’, ‘농가월령도’ 등으로 조선화해 병풍 형식으로 많이 제작됐고 19세기에는 민화의 소재로도 많이 활용됐다. 특히 ‘패문재경직도’는 김홍도(金弘道, 1745 ~ ?) 등에 의해 조선화되면서 조선후기 풍속화 발달에 영향을 미쳤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직도’는 청록산수화풍을 띠는 장식화 계열의 화려한 경직도로 모두 8폭으로 구성됐다. 각 장면마다 벼를 심어 수확하는 일, 초가 지붕을 개량하는 일, 사냥하는 일 등이 사계절에 맞게 묘사됐다. 그리고 농사나 잠업에 필요한 목재의 가공 모습도 화폭 한 부분에 자리잡고 있어 주목된다. 서양의 원근법과 음영법이 사용됐으며 인물과 의복 표현 등에서 점차 조선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 경직도 耕織圖, 목수들의 탕개톱 사용 모습, A painting related to plowing and weaving for farming, 18세기, 작가미상, 각 105×47, 한양대학교박물관

경직도(耕織圖)
조선의 농촌 풍경을 뛰어난 구도 위에 부드러운 필치로 그린 8폭의 경직도이다. 농사짓는 모습뿐만 아니라 뛰어노는 아이들, 탁발하는 승려, 초가집 안에서 글 읽는 선비 등도 사실적으로 묘사됐다. 글 읽는 선비의 우측 공간에는 2명의 목수가 1명은 앉고 또 1명은 일어선 채 탕개톱을 맞잡고 열심히 나무를 켜고 있는데 얼굴 표정이 매우 진지하다. 이 장면을 통해 당시 사용했던 탕개톱 모습과 사용 방법을 살펴볼 수 있다.

 

▲ 목기 깍기, A scene carving a wood through the use of a foot, painted by Yun Du-Seo, 18세기, 윤두서, 32.5×20.9, 개인 소장

목기 깎기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풍속화가중 한명인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 ~ 1715)가 그린 그림이다. 손으로 직접 깎던 목기를 간단한 수동식 기계인 선차旋車를 이용해 더 쉽게 깎는 모습을 배경없이 그렸다. 화면의 우측 상단에 “공재언희작恭齋彦戱作 선차도旋車圖”라는 화제가 쓰여 있다. 비스듬히 놓인 회전축을 사이에 두고 1명은 나무틀에 기대어 발로 축을 돌리고 있고, 나머지 1명은 돌아가는 나무에 칼을 대어 함지박을 깎고 있다. 뛰어난 화면 구성과 사실적인 묘사력이 돋보인다. 목기는 전라북도 장수, 무주, 운봉 등의 특산물로서 물푸레나무, 피나무, 단풍나무, 노감나무 등으로 제기를 비롯해 촛대, 찬합, 쟁반 등을 제작 사용했다. 목기깎는 도구로 구부러진 자루에 날을 댄 자귀가 사용됐음을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다. 

자료제공_수원화성박물관(담당 학예팀 오선화 031.228.4209)
에디터 _ 박광윤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