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풍경을 잇는 길
역사와 풍경을 잇는 길
  • 김오윤 기자
  • 승인 2015.07.0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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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관악산둘레길 과천구간
▲ 남태령 옛길 표지석.

관악산둘레길은 서울구간(15km), 과천구간(6.6km), 안양구간(10km)이 이어지는 총 31.6km 코스다. 세 구간 중 남태령역에서 간촌약수터까지 6.6km 거리의 과천구간을 걷는다. 

이 구간에는 조선시대 정조 임금이 넘었던 남태령, 정조가 머물렀던 온온사, 과천향교 등이 역사를 품고 있다. 또한 과천야생화자연학습장에는 다양한 야생화가 피어 여행자를 반긴다. 간촌약수터가 도착지점인데 지하철을 타려면 이곳에서 인덕원역까지 약 1.82km 정도 걸어야한다. 그 거리까지 더하면 8.42km를 걷는 셈이다. 

 

정조가 넘었던 남태령 옛길
남태령역 2번 출구가 출발지점이다. 2번 출구에서 약 900m 정도 차도 옆 인도를 따라 걸으면 서울시와 경기도의 경계지점인 남태령 고갯마루가 나온다. 

고갯마루 차도 중간에 ‘남태령’이라는 글씨를 새긴 큰 돌멩이를 세워놓았다.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南峴洞)을 뒤로하고 경기도 과천시 관문동으로 걸어간다. 

고갯마루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왼쪽에 ‘남태령 옛길’ 표지석이 있다. 옛길이 온전하게 남아 있지 않지만 표지석이 있는 곳 부근이 옛 남태령 고개였다. 

남태령의 뜻은 남쪽에 있는 큰 고개다. 현재 관악구 남현동(南峴洞)의 이름인 남현(南峴)도 남쪽 고개라는 뜻이니 예나 지금이나 같은 뜻의 이름이다. 

남태령에는 정조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남태령의 원래 이름은 여우고개였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찾아가는 길에 이 고개를 넘게 되었는데 그때 고갯마루에서 쉬면서 고개 이름을 물었다. 이때 과천현 이방 변 씨가 원래 이름인 여우고개라고 말하지 않고 남태령이라고 대답했다고 전한다. 그때부터 이 고개를 남태령이라고 불렀다. 당시 변 씨가 고개이름을 남태령이라고 말한 이유는 한양에서 남쪽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첫 번째 큰 고개이기 때문이었다고 전한다.  

남태령 옛길 표지석을 지나 과천루 앞 계단을 내려선다. 길은 이내 포장도로로 이어지다가 ‘용마골 입구’를 알리는 표지석을 만나게 된다. 

 

▲ 개양귀비꽃.

용마골입구에서 과천시야생화자연학습장까지
‘용마골 입구’를 알리는 표지석을 지나서 계곡을 옆에 두고 걷는다. 길은 포장도로지만 길 옆 넓은 계곡 때문에 자연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계곡은 바닥이 다 드러났다.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길은 숲으로 들어가는 오솔길로 바뀐다.  

숲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산 둘레를 걷는 길이기 때문에 심한 오르막이나 위험한 곳은 없다. 

하지만 산기슭이라도 하더라도 숲이 하늘을 가렸다. 작은 계곡을 건너는 곳도 몇 곳 있는데 계곡이 거의 말랐다.(장마철이나 집중호우 등 비가 많이 내리면 위험하니 둘레길 자체를 걷지 않는 게 좋다.)

숲길을 걷다보면 전망이 트이는 곳이 나온다. 산과 건물의 이름을 적어 놓은 이른바 ‘전망 안내판’도 있다. 옥녀봉, 망경대, 이수봉, 국사봉, 매봉, 백운산, 등 산이 만드는 능선이 멀리 이어진다. 눈앞에는 과천 시가지와 정부청사 등이 보인다. 

숲길은 과천교회 앞에서 끝난다. 과천교회를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걷는 게 원래 코스인데 일단 여기서 잠깐 코스를 벗어난다. 

▲ ‘온온사’ 조선시대 정조 임금의 필체다.

과천교회를 바라보고 왼쪽으로 약 200m 정도 걸으면 온온사가 나온다. 온온사는 조선시대 정조 임금이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능으로 가던 차에 머물렀던 곳이다. 여기에서 머무를 때 마음이 편안했다고 하여 ‘온온사’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온온사’ 글씨는 정조 임금의 필체다. 

온온사 입구에 있는 600년 된 은행나무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과천교회 쪽으로 걷는다. 과천교회를 지나 과천향교에 도착한다. 

과천향교는 조선시대 태조7년(1398)에 건립됐다. 원래는 다른 곳에 있었는데 숙종16년(1690)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향교 앞에는 300된 느티나무가 살아있다. 

느티나무를 뒤로하고 다리를 건너 계곡을 오른쪽에 두고 걷는다. 길은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여기서부터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옆 철조망이 있는 좁은 길을 통과해 넓은 도로를 만날 때까지 ‘관악산둘레길’을 알리는 리본과 이정표를 잘 찾아가며 걸어야 한다.  

 

▲ 간촌약수터로 가는 길.

과천시야생화자연학습장부터 간촌약수터까지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옆 철조망이 있는 좁은 길을 통과하면 넓은 도로가 나온다. 길을 건너면 과천시야생화자연학습장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하늘을 가린 큰 나무들이 터널을 만들었다.  

과천시야생화자연학습장은 다양한 들꽃과 수생식물 등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터가 넓지 않아 쉬엄쉬엄 돌아봐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나비가 날아다니는 꽃밭 오솔길을 걷다가 붉은 꽃이 무리지어 피어난 곳을 만났다. 개양귀비였다. 처음 보는 꽃이었고, 붉은 빛으로 매력을 발산하는 그 꽃이 무리지어 피어 마음을 사로잡았다. 꽃밭 앞에 쭈그려 앉아 카메라를 들이댔다. 

꽃의 형상이 1/250초 동안 좁은 조리개 구멍을 통과해서 카메라 메모리칩에 저장되는 과정은 기계적인 이성 보다 직관적인 감성이 지배한다. 눈으로 보는 그 순간 손가락은 이미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붉은 꽃밭에 흰 나비가 날아다닌다. 붉은 물결 위로 튀어 오르는 은비늘 작은 물고기 같다. 쌍을 맺은 나비의 날개짓이 소녀의 명랑한 웃음소리라면 바람에 흔들리는 붉은 꽃잎의 날개짓은 아찔한 키스 보다 매혹적이다. 꽃은 그렇게 나를 관음증 환자로 만들고 있었다.  

다시 길을 걷는다. 과천시야생화자연학습장 앞 계곡 돌다리를 건너서 숲길로 접어든다. 커다란 바위가 있는 곳을 지나서 걷다보면 도착지점인 간촌약수터가 0.44km 남았다고 알려주는 이정표가 나온다. 길이 넓어진다. 

간촌약수터에서 물 한 모금 마시며 잠시 쉰다. 전철을 탈 수 있는 인덕원역까지 1.82km 남았다고 이정표가 알려준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