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심라 식물원
인도 심라 식물원
  • 김오윤 기자
  • 승인 2015.07.0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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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역사-권주혁 동원산업 상임고문(前이건산업 사장)
▲ 히말라야 가문비나무와 전나무가 가득 찬 심라 식물원.
▲ 권주혁 동원산업 상임고문(前이건산업 사장)

[나무신문 | 동원산업 권주혁 상임고문(前이건산업 사장)] 인도의 수도 델리는 여름 기온이 섭씨 40도를 넘는다. 아침 일찍 뉴델리 역을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서 서북쪽으로 달렸다. 기차가 델리 시내를 벗어나자 곧 광활한 평야지대가 나타났다. 인도의 곡창인 푼잡(Punjab) 평야이다. 기차는 4시간을 달리자 그동안 조그만 언덕조차 보이지 않던 평야 지대에 나지막한 언덕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기차는 20분을 더 달린 뒤에 정확하게 예정대로 낮 12시에 칼카(Kalka)에 도착하였다. 칼카 역에서 심라(Shimla)로 가는 열차도 정확하게 낮 12시 15분에 출발하였다.


필자는 서울과 부산을 운행하는 KTX열차를 여태까지 수도 없이 이용해 보았으나 정확하게 제시간을 지키는 것을 못 보았다. 보통 5분내지 10분을 연착하였다. 그러므로 칼카역에서 15분 뒤에 갈아타야하는 심라행 열차를 잡기위해 과연 기차가 정시에 칼카역에 도착할 까 걱정을 하였으나 필자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였다. 기차는 1분의 오차도 없이 정시에 도착하고 연결편 열차도 정시에 출발하였다. 델리에서 칼카까지는 일반 크기의 열차가 운행되나 칼카에서 심라까지는 미니 산악 열차가 운행된다. 1903년에 영국인들이 건설한 철도를 따라서 이 작고 귀여운 열차는 여행자들을 가득 싣고 숨을 헐떡거리며 히말라야 산맥 속을 달려 올라가 산맥 가운데 위치한 산악 휴양도시 심라에 예정대로 오후 6시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히말라야 산맥’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선 눈 덮인 높은 산봉우리를 상상하게 된다. 물론, 거대하다 못해 위압감이 느껴지는 히말라야 산맥에는 일년 내내 눈 덮인 고산지대도 많지만 그 아래 산기슭은 초록색 삼림이나 풀밭으로 되어있다. 칼카에서 심라까지 가는 길에 보이는 히말라야의 풍경은 후자에 속한다. 차창을 통하여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필설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롭고 거대하고 광활하다. 그리고 야성미가 넘친다. 필자는 이런 풍경으로부터 잠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주위를 겹겹이 은은하게 둘러싸고 있는 산들은 급경사가 아니고 완만하다. 이들 산을 덮고 있는 수목의 주요 수종은 깔끔하고 소박하게 생긴 히말라야 소나무(Himalayan Pine; 학명 Pinaceae Pinus roxburghii)들이다. 당장 여행을 중지하고 눈앞에 펼쳐져 보이는 계곡 밑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몇 달이고 머물다가 다시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잠시나마 필자의 머리를 흔들었다. 이제야 히말라야를 보다니….


해발 2,200m에 위치하므로 기후가 온화한 심라는 고대에는 네팔 왕국에 속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영국인이 1819년에 이곳을 발견한 뒤에 본격적으로 외부 세계에 알려지게 되고 영국인들은 이곳에 휴양시설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864년부터 심라는 영국인들의 여름 수도가 되었다. 즉, 캘커타(콜카타)와 델리를 중심으로 인도를 통치하던 영국정부 식민지 공무원들은 (캘커타와 심라는 2,000km 거리임에도) 캘커타와 델리의 무더운 여름을 피해 여름에는 이곳으로 이동해 와서 근무를 하다가 가을이 되면 다시 캘커타와 델리로 돌아가서 일을 하였기 때문이다.


심라 시내에서 경사지를 따라서 굽이굽이 펼쳐있는 도로를 따라서 서쪽으로 약 4km 를 가면 4층 높이의 영국식 궁전이 나타난다. 이 건물은 영국의 인도 총독이 여름에 근무하던 곳이다. 거대한 건물은 심라에 철도가 부설되기 훨씬 전에 노새가 끄는 수레에 건축자재를 싣고 히말라야 산맥을 올라와서 4년간의 공사기간이 걸려 1888년에 완공한 것이다. 오늘날 이 건물은 박물관으로서 인도의 현대 역사를 증언하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1947년,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할 때 인도의 지도자 간디와 네루(초대 수상)는 이곳에서 영국 총독 워벨과 인도 독립에 대한 회담을 하였다. 당시 회담장으로 사용된 방에는 인도와 영국측 대표들이 사용하였던 탁자와 의자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건물의 내부벽은 미얀마산 티크, 바닥은 히말라야 소나무, 그리고 천정은 현재 파키스탄령 캐시미르 지역에서 가져온 호두나무로 되어있다. 전체 면적 150ha(약50만평)에 이르는 광활한 크기를 가진 총독공관의 대지는, 넓은 면적 때문에 독립전에는 관리인만 800명이었고 이 가운데 정원사만 40명이었다. 40명의 정원사 숫자가 말해주듯이 총독 공관 주위에는 넓은 식물원이 펼쳐져있다. 식물학을 좋아하는 영국인들이 1909년에 만든 이 식물원은 히말라야의 수목뿐만 아니라 히말라야에서 생육하는 꽃도 많이 있다. 특히 야생 장미의 종류가 많다. 수많은 종류의 장미가 만발한 곳에 있는 식물원의 오솔길에서는 히말라야의 야산이 바로 밑에 파노라믹하게 보인다.


심라는 삼림지대로서도 유명하다. 인구 15만명의 산악 도시 심라는 삼림 도시라고 말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주변은 히말라야 가문비나무(Himalayan Spruce; Pinaceae Picea smithiana), 실버 전나무(Silver Fir; Pinaceae Abies pindrow), 히말라야 참나무(Himalayan Oak; Fagaceae Quercus himalayana) 등의 아름드리 수목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므로 심라에는 인도의 히말라야 삼림 연구소(Himalayan Forest Research Institute)가 위치하고 있어 히말라야 수목의 생태와 조림, 육종(育種)에 대한 강도 높은 연구를 하고 있다. 사전에 연락을 하고 찾아간 연구소에서는 연구소장, 부소장, 그리고 주임 연구원 등 여러 관계자가 필자가 알고 싶어 하던 히말라야 수목의 생육, 보호, 이용, 환경 등에 대한 많은 자료를 제공해주며 멀리서 찾아간 필자에게 같은 임업인으로서 따뜻한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이 글을 쓰면서 심라 시내에서 밑으로 보이는 축적량 높은 가문비 나무숲이 눈앞에 다시 나타난다. 심라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찾아가 보고 싶은 곳이다.

 

권주혁. 

용산고등학교 졸업(22회), 서울 대학교 농과대학 임산가공학과 졸업, 파푸아뉴기니 불로로(Bulolo) 열대삼림대학 수료, 대영제국훈장(OBE) 수훈. 목재전문기업(이건산업)에서 34년 근무기간중 25년 이상을 해외(남태평양, 남아메리카) 근무, 퇴직후 8개월 배낭여행 25개국 포함, 90개국 방문, 강원대학교 산림환경대학 초빙교수(3년), 현재, 동원산업 상임고문. 국제 정치학 박사, 저서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세계의 목재자원을 찾아서 3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