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당 忠孝堂
충효당 忠孝堂
  • 김오윤 기자
  • 승인 2015.07.0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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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석환의 한국전통건축탐방 7- 한국의 名家 7/14
▲ 안채
▲ 한재 터·울건축김석환 대표

[나무신문 | 한재 터·울건축 김석환 대표] 입지와 연혁

이 마을 이름을 하회(河回)라고 부르는 것은 병산서원을 지나온 낙동강 물길이 이 마을을 ‘S’자 모양으로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됐다. 경북 북부에 위치하는 안동, 풍산, 상주 등의 고을들은 대부분 낙동강 수계(水系)로 이어지고 있는데 하회가 속한 안동, 풍산 등은 원래 낙동강의 나루터 취락으로 발달한 곳이다. 하회마을은 형국상으로 태극형, 연화부수형, 행주형에 해당하며, 풍수상 재화로 해석하는 물길이 감싸고 있고 마을 안에 너른 들녘이 있어 사람이 살기에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하회마을의 동쪽에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해발 327m의 화산이 있고, 이 화산의 줄기가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면서 마을의 서쪽 끝까지 뻗어 있다. 마을 중심부에는 수령이 600여년 된 느티나무에 마을 수호신을 모신 삼신당이 있어 매년 동제(洞祭)를 올린다.


이 마을은 풍산 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로 발전돼 왔다. 류씨가 집성촌을 이루기 전에는 대체로 허씨, 안씨 등의 씨족들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오는데 인조13년(1635)의 기록에는 류씨가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돼 있다.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류씨는 류종헤로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과 같은 씨족 마을의 기반은 조선 선조 때 류운룡과 류성룡 형제 때 다져졌다. 마을 입구에서 마을을 가로지르는 큰 길을 경계로 위쪽을 북촌 남쪽을 남촌이라 부른다.

 

하회마을에는 하회별신굿놀이, 선유줄불놀이 등 전통 민속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고, 조선시대 생활 문화를 간직한 고가(古家)들이 잘 보존돼 있다. 그리고 국보로 지정돼 있는 하회탈과 병산탈들은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돼 마을의 오랜 역사를 짐작케 한다.


2010년 유네스코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실사를 통해 “하회마을은 주택과 서원, 정자와 정사 등 전통 건축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마을의 공간배치가 조선시대 사회구조와 독특한 유교적 양반문화를 잘 보듬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이 오랜 세월 동안 온전하게 보존돼 있어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 안채 측면

격조 있는 가옥구조
보물 제414호로 지정돼 있는 충효당(忠孝堂)은 하회마을 안에서 가장 높은 품격을 지닌 양반 가옥으로, 1600년대 서애 유성룡의 손자, 졸재 유원지(柳元之)가 류성룡의 학덕과 업적을 숭모하기 위해 유림들과 제자들로부터 성력(誠力)을 모아 먼저 안채를 지었고, 류성룡의 증손자인 눌재 류의하가 사랑채를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때 중축한 부분은 ‘ㅁ’ 자 형의 안채에서 돌출된 사랑방과 사랑대청을 비롯한 5칸이다. 그리고 행랑채는 류성룡의 8세손인 류상조가 지었다.

▲ 안채 후면

이 집의 당호(堂號)를 충효당이라고 한 이유는, 류성룡이 평소에 자손들에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는 말을 자주 했기에 이를 받들어 지은 것이다. 류성룡은 임종할 무렵 시 한수를 지었는데, 평생 부끄러운 일이 많은 것이 한스럽다고 자신을 낮추며 자손들에게는 충과 효를 강조했다.

 

충효당은 원래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는데 솟을 대문이 선 줄행랑채는 광과 방으로 구성돼 있고, 솟을 대문을 들어서서 마주보이는 사랑채는 안채 우측에 일자형으로 돌출돼 있다.

 

이 집의 안채는 명가의 전통이 느껴진다. ㅁ자 형으로 동북쪽에 부엌을 두고 ㄱ자로 꺾여서 안방, 대청, 건넌방을 두었다. 건넌방 앞에는 마루와 두 칸의 온돌방과 부엌이 있으며 사랑채와 연결돼 있다. 또 부엌 앞에는 찬방, 고방, 헛간이 있고, 중문간 행랑채와 연속돼 있다.

 

충효당의 안채는 행랑채와 안채가 앉은 지형의 고저 차에 의해 곳곳에 중층 구조가 형성돼 있다. 그것은 마당과 대청마루의 레벨 차가 다른 집보다 크고 폭이 넓은 안채의 지붕 높이가 자연스레 높아져서 대청마루에서는 천정 높이가 보통 방의 두 배 가까이 된다. 그리고 집의 격을 높이기 위해 애초부터 층고를 높게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천정이 낮은 부엌 상부 등에 다락을 두어 수납공간으로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 사랑채 측면 마당

특별한 격조가 느껴지는 사랑채는 왼쪽에서부터 사랑방과 대청, 방과 마루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와 적절한 동선으로 연결돼 있다. 사랑채 앞쪽에서는 중문으로 통하고 뒤에서는 서비스 통로로 안채와 연결된다. 그것은 사랑채 손님에게 주안상을 내올 때 눈에 잘 띠지 않게 하기 위한 것으로 그 통로를 잠그면 안채와 완전히 격리되고, 바깥사랑채의 독자적 영역이 생긴다. 안채 우측 몸체로 감싸인 사랑채 뒷마당은 사당으로 연결되는 매개 공간이다.

 

사랑채 구성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사랑채 대청과 루 사이 전면에 퇴칸 통로를 두고 그 바깥에 벽을 두른 것인데 그로 인해 대청 부분과 다른 공간 영역이 설정되고 대청에서 통로를 통해 끝 부분에 이르면 독립된 새로운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그 루는 집 앞의 농경지를 바라보고 있다. 뒷마당으로 돌아가는 루 우측에는 숲을 조성해 한적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 놓았다.

▲ 사랑채 대청

이 충효당의 구조는 보수 때 변경된 것으로 보이는 견치석 쌓기의 장대석으로 마무리 된 기단 위에 막돌로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기둥 위에는 주두 없이 납도리를 받치고 기둥 사이의 창방 위에 소로를 두어 납도리의 장여를 받치고 있는 납도리 소로수장집이다. 홑처마 팔작지붕의 사랑채에는 특이하게 계자 난간이 둘러쳐 있다.

 

▲ 사랑채 전면 마당

사당과 영모각충효당 사랑채를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따로 쌓은 담장 안에 사당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서애 유성룡의 유물을 보존하고 있는 영모각이 보인다. 영모각에는 국보 제132호인 징비록을 비롯해 보물 제160호 군문등록외 25종류, 보물 제460호인 서애선생필첩외 34종류, 그 이외에 중요 유물 20여 종류와 교지 문헌 등이 다수 보관되고 있다.

▲ 사당

김석환  
한재 터·울건축 대표. 1994년부터 터·울건축을 개설하여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삼육대, 광주대 건축과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1999년 건축문화의 해 초대작가 및 대한민국 건축대전, 대한민국 건축제 초대작가로 활동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일산신도시 K씨주택, 목마도서관 등이 있고, 저서로 <한국전통건축의 좋은느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