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유성과 표절 논란
칼럼/ 고유성과 표절 논란
  • 서범석 기자
  • 승인 2015.06.25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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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 김성수_한국조형예술원(KIAD) 원장/ 조형예술가•가구작가
▲ 가람 김성수_한국조형예술원(KIAD) 원장/ 조형예술가•가구작가

[나무신문 / 가람 김성수_한국조형예술원(KIAD) 원장/ 조형예술가•가구작가] 최근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에 빅이슈가 생겼다. 유명 소설가의 표절 논란인데 문학계 문제에서 문화예술계 이슈로 바뀌더니, 급기야 법정 잣대를 기다리는 형국으로까지 번졌다. 비슷한 지형에서 창작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참 편치 않은 마음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문화예술계의 다수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특히 창작을 업으로 하는 직업작가라면 더 그럴 것이다.

문학계의 어떤 분은 이 ‘유명 작가’가 모범이 되는 작품들의 '필사'(筆寫)로 단련된 작가라고 하며, '무의식적인 표절' 가능성을 제기했다. 말하자면, 모범 작품을 베끼는 습작 방법인 필사의 잔상(殘像)을 다 지우지 못해서 일어난 ‘무의식적 현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심정적으로는 백번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면죄부가 될 순 없을 것이다. 또 이번 일은 문학계에서 불거졌지만, 문화예술계 전반이 못 본 체 묻어왔던 지뢰밭의 일각이라는 것을 다 알면서도 쉬쉬할 뿐이다.

이미 문화예술향수자(소비자)들은 표절 자체가 작가 스스로의 양심과 작가정신에 연유한다는 사실과, ‘누구든 자유롭지 못하다’라는 집단 감싸기에 안주해왔던 부끄러운 속살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정작 공급자는 자정(自淨) 노력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진작부터 있었던 내부자로부터의 용기 있는 문제제기를 ‘문화권력’은 아예 덮거나 외면하기에만 급급했다. 당초 기득권에 대한 저항을 내세우며 이룩한 지금의 성과와 위상이 문화예술소비자들을 포함한 전체의 합작품이 아닌, ‘그들만이 이룬 그들만의 리그‘라고 여기는 걸 보면서 자가당착적 매너리즘이 얼마나 심각한 ’적폐’인가를 새삼 일깨워 줬다.

이 곤혹스런 문제의 해법조차 직업작가에게는 ‘숙명’일 것이다. 이른바 ‘쿨’한 ‘고해성사’나 '셀프 디스‘도 겸허한 자기반성으로 필요하지만, 결국 초심에서 ’새로운 생각의 가치‘ 발현을 위한 작가적 고유성에 더욱 매진하는 것이 올곧은 해법일 것이다. 더불어 치열한 성찰과 뼈를 깎는 정진, 가혹하리만치 엄격한 자기검열 등의 노력이 꼭 있어야 할 것이다. 작가적 몸갖춤을 소홀히 할 때 비집고 드는 민낯의 트라우마를 거울 보듯 봤기 때문이다.

웹(WEB)문화와 함께 찾아온 새로운 시대정신은, 정보독점이 권력이었던 시대와 달리 투명성과 평등, 고유성을 바탕으로 한다. 물론 ‘검색권력’이라는 또 다른 권력현상도 생겨났지만, 다수는 투명성과 평등, 고유성을 상위 가치로 여기는 신(新)문화사회로의 지향이라고 본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정신 위에 치열한 작가정신과 법고창신의 융합 시너지를 더하여, 시대를 관류하는 참다운 ‘문화융성’을 이뤄야 할 때이다.

공교롭게도, 몇 년 전에 표절을 경계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다른 지면에 실었던 칼럼인데 새삼스러워서 곱씹어 본다.

 

지적재산권과 표절 시비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창의성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고도정보문화시대인 오늘날 이 말의 의미는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한 면피용 ‘립서비스’일 뿐이다. 창작과 표절, 복제, 모방의 경계가 모호한데다 또 문화계 일부에서조차 일련의 창작 과정에서 자신의 독창적 작품 완성을 위한 일정한 모방은 불가피한 일이라며 애써 눈감으려고 하지만, 모방이 자기표현의 구성요소로 녹아드는 창조적 행위에 쓰이지 않고 모방 그 자체로 그친다면 아무리 선의의 목적이라고 해도 결국 표절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수 년 전 어느 디자인페어에 조지 나카시마(George Nakashima) 특별전이 열렸을 때 일이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페어 내 한 부스에서 출품 작품을 복제한 가구를 버젓이 팔고 있었다. 더욱 놀랐던 것은 그 판매부스의 운영자가 가구디자인 전공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는 점이었다. 또 미국 출신 가구디자이너이자 다국적기업 브랜드인 존 켈리(John Kelly)가구의 주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손잡이 디자인’을 그대로 복제하여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최근에는 아예 북유럽 스타일과 조지 나카시마 스타일 두 가지에만 점령당하다시피 한 어느 디자인페어를 보며 눈앞의 집단 몰개성 현상에 머리가 쭈뼛해진 적도 있었다. 심지어 이 방면을 공부하고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조차도 오브제 차용이나 모티프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한눈에도 알 수 있는 모방품이나, 복제품을 발표하고 판매한다는 점에서 우리 문화 수준의 일단을 보는 것 같아 자괴감과 함께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 현실은 이러한데도 주변 환경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데 있다. 지난날 불법 복제 컴퓨터 소프트웨어 단속으로 거액의 벌금을 물게 돼 하루아침에 문을 닫은 영세 업체들의 블랙코미디 같은 전설과 최근 삼성과 애플의 특허분쟁으로 알려진 ‘둘이 닮은 것 같으면 디자인권 침해’라는 유행어를 낳게 한 이른바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 증후군’은 아직은 우스갯소리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우리나라 진출을 결정한 다국적기업 이케아(IKEA)나 국내 진출이 예정된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들, 또 유명 작가 스튜디오들의 실정은 좀 다르다. 그들 대다수는 지적재산권 전담부서가 있으며, 그것도 공룡급 다국적 로펌과 브랜드 보호 자위권을 앞세워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괴력을 소프트웨어와 음원 분쟁 등을 통해 익히 봐왔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PC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소프트웨어와는 달리 생활용품이나 가구류는 훨씬 쉽게 노출되는 속성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낙담만 할 순 없잖은가! 우리는 모진 난관을 ‘기회의 땅‘으로 일군 저력을 갖고 있다. 먼저 불법복제와 표절은 우리 모두가 공범이며 피해자라는 올곧은 인식 아래 직업적 양심과 가치관에 대한 치열한 성찰이 꼭 있어야 할 것이다. 또 표절시비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오히려 우리 방식으로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과 국제사회에 당당하게 도전하는 자존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당장은 우리 DNA가 녹아든 고유디자인과 브랜드가치 개발을 위해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가겠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식 감성 가치관에 기반을 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가람 김성수_한국조형예술원(KIAD) 원장/ 조형예술가•가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