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과거와 현재를 잇다 - 향교부터 옥류동까지
길, 과거와 현재를 잇다 - 향교부터 옥류동까지
  • 나무신문
  • 승인 2015.06.22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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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전북 전주
▲ 한벽굴과 한벽당(굴 왼쪽 위에 보이는 건물).

전북 임실군 관촌면에서 발원한 전주천 물줄기가 전주 시내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전주8경 중 하나인 한벽당을 만난다. 한벽당 절벽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는 이내 향교 앞을 지나 전주 시내를 통과한 뒤 만경강을 만난다. 

이번 여행은 전주천이 전주 시내로 들어서는 곳에 있는 향교를 돌아보고 전주천 물길을 거슬러 한벽당에 올라본 뒤 한벽굴을 통과해서 옥류동을 들르고 자만동, 오목대를 지나 전주한옥마을로 내려서는 걷기여행 코스다. 이 길은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현재를 잇는 시간여행의 길이기도 하다.   

옥류동과 자만동 옛 골목 곳곳을 돌아다니는 거리를 빼면 약 1.5km 정도 되는 거리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다. 

  
조선시대에 심은 나무가 살고 있는 향교
여행의 출발점인 향교 앞에 선다. 사적 제379호로 지정된 전주향교의 역사는 조선 초기까지 올라간다. 세종 23년(1441)에 경기전 근처에 향교를 처음 지었다. 이후 전주 서쪽에 있는 화산 기슭으로 자리를 옮겼다. 선조36년(1603)에 향교가 성 밖에 있다고 해서 지금의 자리에 옮겨 지었다. 

향교에는 수령 250년~400년 정도 되는 은행나무가 다섯 그루 있다. 1603년에 지금의 자리에 향교를 지었으니까 이 나무들이야 말로 전주향교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 전주향교에 있는 380년 된 은행나무와 명륜당.

다섯 그루의 은행나무 가운데 명륜당 마당에 있는 380년 정도 되는 은행나무가 가장 보기 좋다. 명륜당 지붕 건물도 보통 한옥 건물과 다르기 때문에 눈길을 끄는데 그 건물과 은행나무가 잘 어울린다. 

명륜당 앞 은행나무를 몇 바퀴 돌며 바라본다. 보는 방향과 거리에 따라 나무가 다르게 느껴진다. 다시 대성전 앞으로 나와서 가장 나이가 많은, 400년 수령의 은행나무 앞으로 다가간다. 고목 주변에 새 가지가 나와 자라났다. 나무가 새끼를 낳은 것 같다. 

어릴 적 소꿉놀이 할 때 꽃반지를 만들었던 토끼풀이 피어난 마당에 망초꽃이 피었다. 망초꽃의 배웅을 받으며 향교를 나와 전주천이 보이는 뚝방길로 향했다.

 

물가 절벽 위 한벽당
전주천은 1990년대 말까지 오염이 심각했다. 이에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대대적인 정화사업을 벌였다. 그 결과 지금은 수달이 살 정도로 물이 깨끗해졌다. 
냇가에 풀이 무성하다. 물이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모래톱이 생겼다. 거기에는 오리 가족 한 떼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물가 나무도 푸르고 풀도 푸르고 물도 푸르다. 전주천 푸른 물길을 거슬러 조금만 올라가면 전주8경 중 하나인 한벽당이 나온다. 

한벽당은 전주천 옆 벼랑에 세워진 누각이다. 조선 건국에 공을 세운 최담이 태종4년(1404년)에 별장으로 지은 건물이다. 누각에 오르면 굽이쳐 흐르는 물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 풍경에 옥에 티가 되는 시멘트 다리만 없었다면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전주천 물길이 누각 아래 절벽에 부딪혀 포말을 일으키며 옥빛을 자아낸다. 그 물이 차가워서 누각 이름이 한벽당이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5호다.  

한벽당에 올라 누각 마루에 눕는다. 하늘을 가린 나무 아래 누각은 바람이 지나는 길이기도 하다. 선선한 바람에 땀은 마르는데 졸리다. 한가롭게 풍경을 바라보는 일도 졸음에 겨운 눈꺼풀 때문에 버겁다. 잠시 눈을 붙인다. 

여행 중 이런 곳에서 드는 단잠은 꿀 보다 달다. 잠을 깨우는 것도 바람이다. 선선한 바람에 일어나 다시 강을 거슬러 걷는다. 

한벽당이 있는 절벽 아래 한벽굴이 있다. 한벽굴은 일제강점기에 전주에서 남원을 잇는 철길을 놓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터널이다. 

1931년 10월 전주에서 남원을 잇는 철도가 개통 된다. 당시 전라선은 이리역에서 삼례, 덕진을 거쳐 현재의 전주시청에 있던 전주역을 지나 오목대, 이목대, 한벽굴을 거쳐 중바위 서쪽 아래를 타고 색장동을 통과해서 남원으로 이어졌다. 

한벽굴을 통과해서 찻길을 따라 가다보면 옥류동과 자만동이 차례로 나오고 오목대를 지나면 전주한옥마을이다.

 

▲ 옥류동 골목.

옥류동, 옛 골목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마을 벽화 열풍은 지금도 그치지 않는다. 전국적으로 옛 마을이나 산동네 골목에 벽화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그림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물한다. 예쁘고 아름다운 벽화도 있고 마을 사람들 얼굴을 그려 넣은 벽화도 있다. 마을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긴 곳도 있으며 마을 사람들이 남긴 말이나 글을 적어 놓은 곳도 있다. 

하지만 오래되고 낡아 칠이 벗겨지는 등 관리가 되지 않은 벽화는 제 기능을 잃고 애물단지가 된다. 그런 골목은 아무 그림도 없는 원래의 골목 보다 오히려 더 흉하다. 

요즘 보기 드문, 벽화 없이 있는 그대로의 옛 골목만 남은 마을을 찾았다. 마을 이름이 옥류동이다. 전주천 옆 산에 있는 마을이니까 아마도 맑고 깨끗한 계곡물이 산에서 흘러내려 전주천으로 흘러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벽화가 없는 산동네 골목길을 참 오랜만에 걸어본다.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린다. 가파른 골목길은 끝날 것 같으면 이어지고 이어질 것 같으면 막다른 길이다.

 
아마 이곳 담벼락에도 조만간 벽화를 그리겠지! 옥류동 고갯길을 넘으면 벽화로 유명한 자만동 벽화마을이다. 

길은 오목대로 이어진다. 오목대에서 전주한옥마을 한 눈에 바라본다. 맞닿은 기와지붕이 물결처럼 일렁이고 넘실댄다. 조선의 마을 풍경이 이랬을 것이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