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조루 雲鳥樓
운조루 雲鳥樓
  • 김오윤 기자
  • 승인 2015.06.1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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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석환의 한국전통건축 탐방 1 - 한국의 名家 1/14
▲ 운조루 사랑채
▲ 한재 터·울건축 김석환 대표

[나무신문 | 한재 터·울건축 김석환 대표] 산내음 들내음 삶내음

중요민속자료8호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공리에 있는 운조루(雲鳥樓)는 조선 중기 영조 5년(1776)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柳爾胄)가 지은 집이다. 원래 운조루는 사랑채 누마루 이름이지만 현재는 전체 가옥의 택호로 쓰이고 있다. 운조루는 ‘구름속에 새처럼 숨어사는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유이주는 1762년 경북 해안면 입석동 출신으로 28세 되던 1753년(영조 29)에 무과에 급제하여 낙안군수와 삼수부사를 지낸 무관으로, 기개가 뛰어나 호랑이를 때려잡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를 증명하듯 집 한쪽에 호랑이 뼈가 걸려 있었으나 도둑이 훔쳐가는 바람에 말머리뼈로 대신했다고 한다.

 

운조루는 지리산의 동남측 경사지형 끝자락에 있다. 산세가 잦아들며 너른 들을 이루고 있고 그 앞으로는 자연 정취를 간직한 섬진강이 흘러가고 있는데, 명산과 살아 있는 물길이 만나는 곳에 형성된 토지의 넉넉함이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그리고 배경이 되는 지리산이 넉넉하고 어진 모습으로 인근에 아늑한 삶터들을 품에 아우르고 있어 산내음 들내음 삶내음이 향기롭게 풍겨난다.

 

▲ 운조루 전경

금환락지의 명당터

류이주는 이 집을 짓기 전 전국의 명당을 두루 찾아다니다 남한 3대 길지(지덕이 있는 좋은 집터)로 꼽히는 이곳에 집을 지었다. 풍수에서 손꼽는 3가지 국면 중 하나가 금환낙지(金環落地) 형국인데, 이는 선녀가 땅에 내려와 목욕을 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다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터의 형국을 말하며, 운조루 앞에 있는 연못이 바로 선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곳, 즉 금환락지의 혈(穴)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집터가 명당자리임을 나타내는 또 다른 징표가 있다. 이곳에 터를 잡고 주춧돌을 세우기 위해 땅을 파는 도중 부엌자리에서 어린아이 머리 크기만한 돌거북이 출토돼 이를 금귀몰니의 명당임을 여기고 크게 기뻐하였다는 것.


풍수지리설을 허황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일지라도 뒤로는 지리산의 호쾌한 능선, 앞에는 푸르고 너른 들판 너머로 초연히 흐르는 섬진강, 그리고 강 너머에 병풍처럼 둘러 서 있는 산이 바라보이는 양지바른 터에 지은 집을 대하면 저절로 천하명당이라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 운조루 안채

가옥구조
운조루는 7년여의 오랜 기간이 결려 대저택으로 완공됐는데 류이주가 후손들에게 재산을 분배하면서 남긴 기록에 의하면 최소한 78칸에서 100칸에 이르는 대규모 건물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한 때는 100여명의 식솔을 거느렸다고 한다. 이 정도 규모의 건축이 가능했던 것은 창건자 유이주가 각종 성축, 능역 등을 담당했던 경력과도 무관치 않을 것 같다.


현재 운조루는 총 55칸의 목조기와집으로 사랑채, 안채, 행랑채, 사당으로 구성돼 있다. T자형 사랑채와 ㄷ 자형의 안채, 그리고 안사랑채와 곳간채가 일체로 연결돼 있는데, 지붕은 팔작지붕, 박공지붕, 그리고 모임지붕 등 각기 다른 형태로 돼 있다


이 집은 건립당시 주택의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보이는 ‘전라구례오미동가도(全羅求禮五美洞家圖)’가 전해지고 있어 건립 당시의 가옥 구조를 생생히 알 수 있다. 오미동 가도는 일종의 설계도면처럼 가옥의 배치와 공간의 쓰임새 등을 묘사한 것이지만 현대 건축의 설계도와 달리 건축 구성이 회화적으로 표현돼 있고 공간 건물의 입면을 표현해 놓았다. 그리고 두변 숲이나 배경의 산 등 입지에 대해서도 상세히 묘사돼 있어서 가옥 구조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가옥을 인식하는 태도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사랑채 평면은 4칸의 몸채에  T자형으로 뒤쪽으로 꺾여 이어진 2칸의 날개가 달려 있고 좌측 한칸은 내루형(內樓形)으로 궁궐의 침전에서와 같이 완전한 누마루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기둥 밖으로 계자 난간이 둘러져 있다. 그리고 사랑채에는 보통 부엌이 없는 편인데, 우측 안채와 만나는 곳에 안채 통로를 겸한 부엌(중문간)이 마련돼 있다. 사랑채 뒤에는 조용히 자연을 관조하며 사색할 수 있게 작은 뒷마당을 두었는데, 그 마당을 통해 안채 부엌에서 눈에 띠지 않도록 수라상 등을 들일 수 있게 했다.


작은 사랑채는 일자형 곳간[庫間]채의 왼쪽 끝에서 2칸의 누마루(귀래정)가 앞쪽으로 돌출돼 있다. 이 2칸은 내루형으로 처리돼 1칸은 방이 되고 1칸은 판상(板床)을 높이 설치한 루로 하여 머름을 드리고 문짝을 달았으며, 서벽 밖으로는 쪽마루와 난간을 설치했다. 


사랑채 우측에 연이어져 있는 안채는 규모가 비교적 크며 요철 형으로 된 중행랑채와 더불어 큰 ㅁ자 형을 이루고 있는 점이 매우 독특하다. 실 구성은 몸체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안방, 우측에 건넌방을 두었다. 그리고 좌측은 안사랑채가 놓여 있고 우측 날개채는 방과 작은 부엌 등이 연이어 있다. 부엌 상부에는 다락 등 수납 공간으로 꾸며져 밖에서 볼 때 중층 구성을 보이고 있다. 운조루의 또 다른 건축적 특징은 이처럼 누마루방이나 누다락방을 두어 스케일이 웅장한 궁전주택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공포와 같은 장식적 의장을 생략하여 소박한 멋을 잃지 않고 있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안채로 들어가는 입구를 경사로로 처리한 것도 특이한데, 수레의 통행이나, 짐의 운반에 용이하도록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안채 마당 아래쪽에는 장독대가 있고 큰 부엌 앞에는 수조와 맷돌이 정겹게 남아 있다.

 

▲ 운조루

잘 짜여진 가옥의 살가운 느낌

운조루는 한국 전통 가옥에서 드물게 전체적인 구조가 잘 짜여진 멋을 띠고 있다. 운조루의 건축적 빼어남은 특히 배치에서 느낄 수 있으며 건물이 자연의 기운과 균형 있게 결합돼 있고 공간은 쓰임에 알맞게 잘 갖춰져 있다. 그리고 각각의 건축 공간과 외부 공간이 짝을 이루듯 대응하면서 팔랑개비처럼 사방으로 펼쳐지는 듯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건물과 건물, 그리고 건물과 담장 사이의 공간이 짜임새 있게 느껴진다. 

 


이 집에서 가장 절묘한 공간 처리는 안채 사랑채가 나눠지는 안채 입구 공간이다. 중문간에 해당하지만 담장으로 영역을 나누고 출입문을 둔 일반적인 경우와는 확연히 다르게, 여기선 그 부분을 통해 나열된 안채와 사랑채가 영역적으로 분리되면서도 동선과 기능적 연계가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처리됐다. 그처럼 이 집은 선례가 없는 독특한 짜임새의 멋을 지니게 됐는데 그것은 터의 특성 및 필요한 규모와 공간구성 등의 요구 조건을 놓고 치밀한 구상 끝에 실현된 결과일 듯하다. 그 중문간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뒤주가 놓여 있는데 뒤주의 쌀을 슬쩍 퍼가도 좋다는 뜻으로 주변의 가난한 백성들에게 베풀기 위함이었다.


명당 터와 잘 짜여진 집의 구조, 그리고 타인능해(他人能解)의 뒤주를 둔 주인의 마음씨까지, 이 곳을 둘러보고 나면 정말 한 번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김석환  한재 터·울건축 대표. 1994년부터 터·울건축을 개설하여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삼육대, 광주대 건축과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1999년 건축문화의 해 초대작가 및 대한민국 건축대전, 대한민국 건축제 초대작가로 활동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일산신도시 K씨주택, 목마도서관 등이 있고, 저서로 <한국전통건축의 좋은느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