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과 꽃과 나무와
탑과 꽃과 나무와
  • 나무신문
  • 승인 2015.06.0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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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강원도 평창 오대산 월정사

월정사는 처음이었다. 30여 년 전 교과서에서 처음 본 월정사팔각구층석탑은 매력적이었다. 월정사를 찾아갈 기회는 여러 번 있었으나 그때마다 다른 일이 생겼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월정사에 첫 발을 내딛는다. 기다린 세월 때문일까? 설레는 마음 참 오랜만이다.  

 

▲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과 적광전.

월정사팔각구층석탑
월정사 주차장에서 절로 들어가는 길, 푸른 물이 고였다 흐르는 연못 위 다리를 건넌다. 금강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절 마당이다. 파란 하늘 아래 햇살이 투명하다. 

월정사는 팔각구층석탑과 전나무길이 유명하다. 전나무길은 절을 다 둘러보고 걷기로 하고 마당에 있는 팔각구층석탑 앞에 섰다. 

월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자장율사가 중국 산서성 오대산 태화지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했는데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를 자장율사에게 전하면서 신라에서도 오대산을 찾으라고 했다. 이에 자장율사가 찾은 곳이 강원도 오대산이며 월정사를 창건하고 적멸보궁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팔각구층석탑은 고려시대 초기 작품으로 높이가 15.2m이다. 구층 석탑이지만 탑신이 위로 올라가면서 크게 좁아지지 않는다. 팔각형으로 만든 것은 불교 실천수행의 기본인 팔정도(八正道)를 상징하는 의미라고 전한다. 추녀 끝에 풍탁이 달려 있어 화려함을 더했고 바람이 지나는 흔적을 느낄 수 있다.  

화재로 인해서 1970년에 1층, 2층, 6층, 9층의 돌을 새 돌로 갈았는데 당시 1층과 5층에서 총 12점의 사리구가 발견됐다. 이와 함께 은제 불상 1구, 청동거울 4점, 금동 향합과 향주머니, 진신사리경 등 12점의 유물이 발견 됐는데 모두 보물로 지정됐다. 석탑은 국보 제48호다. 

탑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공양을 드리며 탑을 바라보는 석조보살좌상이 있다. 약왕보살(藥王菩薩)이라고 한다. 약왕보살은 사리탑을 세우고 탑 앞에서 자신의 두 팔을 태우며 칠만 이천 세 동안 사리탑을 공양했다고 전한다. 높이는 1.8m이며 보물 제139호다. 

 

▲ 월정사 금강문.

적광전
팔각구층석탑 뒤에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신 전각인 적광전이 있다. 정면 5칸, 측면 5칸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이 전각의 원래 이름은 칠불보전이었다. 칠불보전이란 일곱 분의 부처님을 모신다는 뜻인데 6.25전쟁 때 전소되어 1960년대 후반에 중건했다. 

중건 당시 오대산에서 자생하는 나무로 기둥을 세웠다고 전하는데 외부 기둥 18개 중 16개는 소나무이고 2개는 괴목이며 내부 기둥 10개는 전나무다.

적광전 현판과 주련 글씨는 탄허스님의 친필이다. 주련 네 줄은 자장율사의 불탑계다. 

 
만대윤왕삼계주(萬代輪王三界主)/쌍림시멸기천추(雙林示滅幾千秋)
진신사리금유재(眞身舍利今猶在)/보사군생예불휴(普使群生禮不休)

만대의 왕이며 삼계의 주인이여/사라쌍수 열반 이래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가
부처님 진신사리를 지금 여기에 모셨으니/뭇 중생으로 하여금 예배를 쉬게 하지 않으리. 

 

적광전에서 나와 절 곳곳을 돌아본다. 약수도 한 모금 마시고 절집 처마 그늘에 아 쏟아지는 햇볕을 바라본다. 돌계단 아래 노란 꽃 몇 송이가 눈에 띈다. 다가간다. 민들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꽃과 눈높이를 맞춘다. 팔각구층석탑, 석조보살좌상, 적광전…월정사 마지막 풍경이 민들레꽃이라서 좋다. 

 

▲ 월정사 전나무길.

전나무길
꽃을 본 마음을 안고 전나무길로 접어든다. 전나무가 푸르니 길도 푸르러 보인다. 전나무가 하늘까지 자랐으니 길도 높아 보인다. 

전나무길 다람쥐는 사람을 보고 도망가지 않는다. 다가가서 사진을 찍어도 그냥 자기 할 일을 한다. 앞다리로 먹이를 들고 열심히 먹고 있는 다람쥐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그런 다람쥐가 많다. 

▲ 월정사 전나무길. 부러진 전나무. 전나무숲길에서 가장 오래된 전나무였다(6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길 중간에 허리 꺾여 죽은 나무가 있다. 수령이 600년 정도 된다는데, 전나무길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였다고 한다. 2006년 10월23일 밤에 나무는 쓰러졌다. 쓰러진 나무를 길 가에 그냥 내버려뒀다. 토양이 되고 거름이 되고 살아있는 다른 생명에게 쓰인다. 

전나무길 끝에 일주문이 있다. 그러니까 차를 타고 주차장으로 직접 가지 않는다면 일주문부터 보고 전나무길을 걸어 절 마당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왔던 길을 다시 걸어 돌아간다. 

다람쥐는 여전히 길가에서 쪼로롱 대며 바쁘게 움직이고, 이름 모를 꽃들이 다람쥐 눈높이에서 피었다. 사람들 발치에 머무르는 세상에도 어김없이 생의 법칙은 우주처럼 적용되고, 사람들은 하늘을 가린 전나무길을 걷기만 하고!

▲ 보배식당 황태해장국.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