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 나무신문
  • 승인 2015.05.2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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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강원도 강릉 연곡해변과 장덕리 은행나무
▲ 장태동

꽃이 진 줄 알면서도 떠났다. 꽃이 져야 열매 맺는 이치야 오래 전에 알았지만 꽃 떠나보내는 시절은 늘 소설 같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바뀌는 잎사귀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라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지나야 봄날은 간다. 

 

기와집 다방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소재지에 도착했다. 하늘이 파랗고 공기는 투명했으니 햇살이 땅 위에 있는 모든 생명에게 여과 없이 흡수됐다. 

식당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기와집 지붕에 매달린 십자가를 봤다. 돌담 안 기와집이 교회다. 다른 골목에서 찾은 건 기와집 다방이었다. 이곳은 교회도 다방도 다 기와집이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다방으로 들어갔다. 

시골 다방에 으레 있을 법한 주황색 소파 대신, 짙은 갈색과 검은색 소파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주인으로 보이는 아줌마와 마을 아줌마 세 명이 소쿠리에 담긴 튀밥을 집어 먹는데 불청객인 내가 들어간 것이다. 

아줌마들은 연신 튀밥을 먹으면서 ‘어디서 왔냐’, ‘뭐하러 왔냐’, ‘사진기가 크다’, ‘그런 건 뭐하러 찍냐’ 묻는다. 나는 아줌마들을 보지 않고 사진을 찍으며 ‘서울에서 왔고, 사진 찍으러 왔고, 보통 사진기 이고, 시골 다방 사진을 찍으러 다닌다’고 대답했다. 

내 대답을 들은 아줌마들은 더 이상 묻지 않았고 나는 아무런 말없이 사진을 더 찍었다. 차 한 잔 하고 싶었으나 일행이 있어 그냥 나왔다. 

▲ 원주시 소초면 소초면독립만세기념비.

다방 바로 앞 면사무소 주차장에 세워 놓은 차를 타러 가는데 건물 옆에 비석 하나가 보인다. ‘소초면독립만세기념비’다. 일제강점기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만세운동에 참가한 사람 중 일부는 일본군이 쏜 총에 맞아 죽었고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어 징역형을 살기도 하고, 살점이 찢기는 고문과 태형을 당하기도 했다. 

역사의 무게를 버티기 위해서인지 소초면독립만세운동의 내용을 새긴 비석은 산 모양을 하고 앉아있었다.   

 

▲ 주문진항.

달 뜨는 항구
해질 무렵 도착한 곳은 연곡해변이다. 하룻밤 묵을 숙소를 찾는데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해서 주문진항 근처 모텔을 잡기로 했다. 

연곡해변에서 주문진으로 가는 도중에도 바닷가 바로 앞에 민박, 펜션 등의 이름이 적힌 숙소가 여러 개 있었으나 그곳도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숙소를 알아보기 위해 중간에 차를 멈춘 곳이 영진항 근처였다. 마침 수평선 위로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바닷가 건물의 불빛, 오가는 자동차 불빛과 대조적으로 달은 저 먼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난다. 그 모습이 좋았다. 

주문진항 근처에 숙소를 잡고 어둠이 완전히 내린 항구로 나갔다. 달빛은 은은했다. 항구 한쪽에 얌전하게 정박한 두 척의 배 위로 달빛이 내린다. 육지에서 바다로 쏟아지는 물소리, 자동차 소리, 사람 소리에 주변은 시끄러웠지만 달빛이 소리를 흡수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밤바다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그랬듯 삼겹살집에서 고기를 구우며 소주잔을 비웠다. 예전 같지 않은 건강 얘기, 자꾸만 덜컹 거리는 낡은 카메라 얘기,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오는 사랑 이야기 등을 빈 소주잔에 채웠다. 

 

▲ 장덕리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166호다.

800살 은행나무 앞에 피어난 민들레
햇살에 안개가 흩어지기 전에 연곡해변 솔숲길을 걸어야한다고 다짐했지만 눈을 뜨니 밖이 환하다. 

은파금파 바다가 눈부시다. 바닷가 모래밭에 앉았다. 그곳에는 나와 일행 두 명 뿐이었는데 일행이 먼저 자리를 뜨는 바람에 바다 앞에 나 혼자 남았다. 

언젠가 누군가 내게 바다는 그리움이라고 했는데 나는 바다가 그리워질 때까지 바다를 바라보고 싶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냥 그 생각이 났고 그저 어젯밤 술을 많이 마신 탓으로 아직도 코끝에서 술 냄새가 퍼지고 햇살 담은 바람이 바다에서 내게로 불어오는 것만 좋았다. 거기에 누웠다. 

▲ 연곡해변 송림. 소나무숲길에서 산책을 즐긴다.

연곡해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장덕리는 복숭아마을이다. 사실 장덕리 복사꽃밭에서 하룻밤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일행과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늦게 찾아왔다. 꽃 진 지는 이미 오래였다.   

보름달 뜬 복사꽃밭 분홍은빛 팽팽한 조율의 긴장감을 이십대 초반에 경험했던 터라 올해는 그 청춘의 맛이 어떻게 익었는지 알고 싶었다. 계절로 치면 삼복더위 한 여름을 지난 나이인데 아직도 봄 같으니, 그 청춘이 익기는 익었을까? 

장덕리 800살 은행나무 그늘이 좋아 뒹굴다가 쓰러져 누운 민들레꽃 앞에서 멈췄다. “너도 어제 술 먹었냐?”

▲ 송림과 백사장이 아름다운 연곡해변.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