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혹은 잡념에 대한 잡념 혹은 칼럼
칼럼 혹은 잡념에 대한 잡념 혹은 칼럼
  • 서범석 기자
  • 승인 2015.05.26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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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서범석의 칼럼 혹은 잡념

[나무신문]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이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다. 혹은 그 이야기에 관한 그 이야기일 수도 있다. ‘칼럼 혹은 잡념’이라는 기묘한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 칼럼에 대한 이야기다. 일종의 자기 고백이다.

기자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생각이나 주장을 기사로 쓸 수 없다. 누군가 말하였거나 행동한 것, 혹은 사건이 일어났거나 어떤 사안이 불거졌을 때 비로소 기사로 쓸 수 있다. 나지도 않은 불을 났다고 하거나, 스스로 불을 질러놓고 기사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것이 ‘기자 노릇’하는데 걸림돌이 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일은 없다. ‘꺼리’가 될 만한 사건과 사고는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다면 오히려 나지도 않은 불을 났다고 했을 때 생긴다.

하지만 그러나, 이것이 목재업계로 들어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도대체가 공론화라는 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문제가 나타나면 그것에 대한 문제제기와 활발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해결책도 만들어진다.

그러나 하지만, 목재업계에는 이게 없다. 그러니 당연히 기사를 쓸 수 없다. 써보았자 대안과 대책도 없는 단발성 기사에 그치고 만다. 사설 또한 쓸 수 없다. 사설이라고 하면 신문사 입장에서 그만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얘기다. 

그처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기사는 한 줄도 안 쓰면서 사설만 쓴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알몸에 갓 쓰고 저작거리 활보하는 것만큼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최근의 목재제품의 품목별 품질표시 방법이나 등급 및 규격 제정, 목재법에 따른 법정교육 문제 등 무엇 하나 공론화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았다. 누구 하나 손을 번쩍 치켜들고 나서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넛이 골방에 모여앉아 벌이는 푸념과 불만은 비중 있는 기사가 될 수 없다.

그러면서도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신문사가 왜 나서지 않느냐’는 불만이다. 불만 수준을 넘어 비난을 퍼붓는 일도 허다하다. 하지만 하다못해 아궁이 불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초가삼간 다 탄다고 쓸 수는 없다. 갓 하나 쓰고 덜렁거리면서 저자로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칼럼 혹은 잡념’이라는 잡글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처럼 칼럼 같은 잡념 혹은, 잡념 같은 칼럼이 신문에 실리는 일에 반대한다. 적어도 편집인의 이름을 달고 이러는 것은 ‘아니올시다’다. 

기자는 기사로 말하고 신문은 사설로 말하는 게 옳다. 하루라도 빨리 나무신문에서 ‘칼럼 혹은 잡념’이 사라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누구라도 번쩍 치켜드는 손이 있다면 덥석 잡아줄 용의가 나에게는 있다. 목재업계의 분발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