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진달래
아! 진달래
  • 나무신문
  • 승인 2015.05.1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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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강화 고려산
▲ 강화 고려산 진달래.

10여 년 전 보았던 고려산 진달래 능선은 해마다 봄이 되면 술자리 단골 안주로 입에 오르내렸다. 올해는 가야지, 꼭 가야지 하면서도 그 이후로 한 번도 발걸음을 놓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고려산을 찾게 됐다. 올해 봄은 고려산 진달래로 완성됐다. 

 

세계문화유산, 강화도 고인돌
고려산 진달래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여러 가지다. 그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는 백련사~진달래능선, 청련사~진달래능선이다. 

특히 진달래축제 때에는 축제의 주 무대인 고인돌광장(강화지석묘)에서 출발해서 백련사를 지나 진달래군락지에 이르는 약 4.1㎞  코스가 가장 인기다. 축제가 아니면 백련사 주차장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다. 

청련사에서 진달래군락지로 올라가는 코스는 국화리마을회관에서 시작한다. 총 연장 2.9㎞ 다. 적석사에서 진달래군락지로 올라가는 방법도 있는데 고천리마을회관에서 출발해서 약 5.2㎞ 를 걸어야 한다. 미꾸지고개에서 진달래군락지로 가는 길은 총 연장 5.8㎞ 로 가장 길다. 미꾸지고개에서 시작해서 낙조봉을 거쳐 고인돌군을 지나 진달래군락지에 도착하게 된다. 고비고개에서 진달래군락지로 가는 2.4㎞  코스도 있다. 

우리는 고인돌광장~백련사~진달래능선 코스를 선택했다. 고인돌광장에는 세계문화유산인 강화지석묘(사적137호)가 웅장한 자태로 서 있다. 

▲ 강화 고인돌.

강화지석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인돌로 탁자식(북방식) 지석묘다. 흙으로 바닥을 수십 층 다진 뒤 받침돌(지석)을 좌우에 세우고 안쪽 끝에 판석을 세워 묘실을 만들어 사체를 넣은 다음 판석을 막아 무덤을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는 두 끝의 마감돌은 없어진 상태다. 높이 2.45m, 덮개돌 긴축 길이가 6.4m 너비 5.23m, 두께 1.34m이며 덮개돌 무게가 약 75톤이다. 

고인돌광장 주변에 강화역사박물관과 강화자연사박물관 등이 있으니 일찍 도착해서 박물관을 먼저 둘러봐도 괜찮겠다. 

 

▲ 백련사 강아지.

오련지와 백련사
고인돌광장에서 출발해서 마을 안으로 들어선다. 강화도 황토의 검붉은 빛깔이 늦게 핀 벚꽃의 흰색과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그 사이로 난 흙길을 걷다보면 돌담에 안긴 빨간 지붕 시골집이 이정표처럼 여행자를 반긴다.  

마을을 지나 백련사 이정표를 보고 포장도로로 올라간다. 봄의 신록이 산벚꽃 흰빛과 어울려 파스텔톤으로 빛난다. 우리는 그렇게 고려산의 봄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 백련사.

고려산의 원래 이름은 오련산이었다. 고구려시대 고려산에는 다섯 개의 연못(우물)이 있었다. 정상의 큰 연못은 하늘에 제를 올리는 제단으로 사용되었다. 다른 4개의 연못은 군사를 훈련할 때 말에 물을 먹이던 곳이다. 현재 정상 부근 군부대에 우물이 남아 있는데 일반인들이 볼 수 없어서 진달래 군락지로 가는 길 가에 정상의 우물을 본떠 만들어 놓았다. 다른 곳에 우물 2곳은 남아 있고 나머지 2곳은 남아 있지 않다.  

고구려 장수왕 4년에 인도의 천축조사가 고려산에 올라 절을 지을 터를 찾던 중 정상의 연못에 피어있는 5가지 색의 연꽃을 발견하고 그 꽃을 따서 날려 떨어진 곳에 절을 지었다. 백련사, 청련사, 황련사, 적련사(현재 적석사), 흑련사를 지었는데 현재는 백련사, 청련사, 적석사 등 세 개의 절이 남아 있다. 

▲ 백련사 아래 찻집에서 먹은 쌍화차.

백련사 주차장 아래 찻집에 앉아 차를 마신다. 홍차가 전문인데 홍차가 없어서 쌍화차를 시켰다. 보약 같은 쌍화차 한 잔에 여유를 찾고 주변을 둘러본다. 거대한 고목에 돋아난 신록이 꽃 보다 아름답다.  

절 마당 한 쪽에 어미 개와 강아지가 있다. 강아지가 봄볕에 졸다가 내 발자국 소리에 깬다. 꿈결을 지나는 몽롱함을 떨치기 위해 강아지가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한다. 그 뒤에 목련꽃도 봄볕에 지쳤는지 나른해 보인다. 

 

진달래 능선 
백련사를 뒤로 하고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길지 않은 코스지만 갑자기 만난 오르막길에 사람들이 숨을 몰아쉰다. 

오르막 산길이 끝나는 곳에서 포장도로를 만난다. 도로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진달래 능선이 보인다. 

전망이 트이는 곳에 전망데크를 만들어 놓았다. 올라갈수록 더 넓게 멀리 보인다. 보는 곳 마다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니 어느 곳 하나 소홀하게 지나칠 수 없다. 

그렇게 도착한 정상은 널찍한 헬기장이다. 이미 도착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먹으며 진을 치고 있었다.   

1964년에 찍은 고려산 사진에는 나무 한 그루 없었다. 그 이후 나무를 심어 산을 가꾸었다. 그러던 중에 1980년대에 들어 일어난 산불로 고려산은 또 다시 시련을 겪게 된다. 불에 탄 그 자리에 자생하게 된 것이 진달래였다. 산비탈에 뿌리 내린 진달래는 스스로 그 영역을 넓혀가며 해마다 봄이면 붉은 진달래 산천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일행과 떨어져 진달래 능선으로 가는 나무데크길로 접어들었다. 내려가는 줄과 올라오는 줄이 각각 한 줄인데, 데크길이 좁아 누군가 중간에서 핸드폰을 꺼내 기념촬영을 하면 어김없이 그 뒤로는 정체되기 일쑤다. 시장바닥 난장판이 따로 없다. 하지만 짜증내거나 얼굴 붉히는 사람 하나 없다. 

▲ 고려산에서 내려와서 먹은 점심. 묵밥.

10여 년 전에는 고려산진달래축제는 없었다.(축제는 올해로 8회 째다.) 나무로 만든 데크길도 없었다.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때는 진달래 꽃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다. 건듯 불어가는 바람에 졸다가 붉은 진달래 산천이 일렁이는 꿈에서 깨보니 또 내가 그곳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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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