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손에 들린 큰 떡은 毒<독>이다
남의 손에 들린 큰 떡은 毒<독>이다
  • 서범석 기자
  • 승인 2015.04.2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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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서범석의 칼럼 혹은 잡념

[나무신문] 사활을 건 전쟁이 시작됐다. 이제는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게 목재업계 전반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다.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만 하는 시장, 냉혹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때문에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지 남의 손에 들린 떡을 빼앗아 나의 배를 채우지 않으면 굶어 죽기 십상이다. 내가 이제까지 먹던 밥 한 공기의 양은 그대로인데 영양가가 절반으로 줄어들었으니, 졸도해 밟히지 않으려면 밥 한 공기를 더 먹는 수밖에 없다.

뱃고래를 늘려서 옆집에 차려진 밥상까지 내 입에 털어 넣어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남의 손에 들린 큰 떡부터 노리는 게 상책이다. 떡이 크면 얼마라도 빼앗기도 쉽고, 작은 떡 하나 노려서 빼앗아봤자 간에 기별도 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정말 남의 손에 들린 큰 떡에 내가 살아날 방법이 있을까. 단언컨대 큰 떡은 절대 방법이 될 수 없다. 이는 우리나라 현대 목재산업 흥망성쇠의 역사를 들춰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제야 반백 년 조금 넘은 수준이니 그리 들춰보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먼저 합판산업 페이지를 보자.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원목생산 강국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게 바로 합판생산이다. 서 있는 나무 베어서 팔기도 바쁘고 그 돈이 넘쳐나는데 굳이 깎고 붙이고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에겐 원목 하나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 나라들이나 할 산업이 바로 합판생산이었다. 하지만 합판산업은 우리나라 경제를 견인할 정도로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이후 원목 생산국을 능가하도록 발전한 국내 목재산업도 마찬가지다. 동남아에서 들어오는 원목 중에서 단단하고 성질이 고약해, 합판으로 만들지 못하고 버리던 나무들을 굽신거리며 얻어다가 일으킨 게 지금의 목재산업이다. 

목재산업계의 라이징스타 수준을 지나 지금은 확고한 주인공 자리를 꿰찬 목조건축산업은 어떠한가. 이 역시 전국을 주름잡던 을지로 합판상들이 ‘고까짓거’ 무시하고 방치한 시장이다. 

이제는 ‘대기업 보다 더 대기업’이 되어버린 래핑몰딩 산업도 매한가지다. 대기업들의 아이템 개발 회의석상에서 남동공단의 작은 제재소에서나 할 일이라고 치워버린 게 바로 그것이다.

보잘것없는 것. 무시당하는 것. ‘큰집’에서 하기에는 낯간지러운 것. 시장을 독식해봐야 간에 기별도 안 가는 것. 이러한 것들이 10여 년 세월 만에 시장의 지배자가 됐다. 또 딱 그 세월 만에 당시의 메이저들은 쇠락의 길을 걷거나, 잘해봐야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처지다.

역사가 알려주는 답은 자명하다. 지금 당장 남의 손에 들린 큰 떡 낚아채서 내 배 채워봐야 결국 둘 다 굶어죽는다. 죽기살기로 ‘남들이 무시하고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보잘 것 없지만 가능성 있는 어떤 것’을 찾아야 한다. 이미 남의 손에 들린 식사는 잘해봐야 식사(食死)다. 먹으면 죽는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