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마을
산수유 마을
  • 김오윤 기자
  • 승인 2015.04.1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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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경북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

[나무신문 | 장태동] 올해는 작년 보다 꽃이 좀 빨리 핀다는 뉴스에 이어 개화지도까지 발표됐으니 꽃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의 마음이 분주하겠다. 

광양 매화는 인기로 따지면 상위 1% 스타 중 스타이니 인기를 쫓는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나는 첫 꽃놀이를 의성 산수유 마을로 떠났다. 

 

▲ 산수유 마을에서 콩을 갈아 직접 두부를 만든다.

400년 전에도 산수유는 피었겠다
물리적 거리보다 심리적 거리가 더 먼 지방이 몇 곳 있다. 경상북도 의성도 그렇다. 경상북도의 한 가운데 있는 의성군은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30분 정도면 도착한다. 그러나 심리적 거리는 시골길을 대여섯 시간 꼬불꼬불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오지로 느껴지는 것이다. 

의성의 하늘은 맑았다. 산수유가 지천으로 피었다는 사곡면 화전리로 가는 시내버스는 1시간 30분 정도 기다려야 온단다. 정해진 일정이 있어 기다리지 못하고 택시를 탔다. 택시비가 1만7000원 정도 나왔다. 

마을 이름이 ‘화전리’라고 해서 산비탈에 불을 놓고 돌밭을 농토로 일군 ‘화전(火田)’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현재 화전2리의 옛 이름인 ‘화곡(禾谷)’과 화전3리의 옛 이름인 ‘전풍(全豊)’의 앞 글자를 따다 합쳐서 ‘화전(禾全)리’가 된 것이다. 

화곡은 말 그대로 해석하면 ‘벼 골짜기’고 전풍은 ‘온전하게 풍년이 든다’라는 뜻이다. 이곳 지형을 보면 골짜기를 따라 길이 났고 길 옆에 농토가 있다. 햇볕은 잘 드는 데 바람은 순하다. 그래서 예로부터 ‘언제나 풍년’이란 말이 있었고 마을 이름도 ‘화곡’에 ‘전풍’이었다.

그러나 화곡이나 전풍, 지금의 화전리 또한 ‘산수유마을’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이름이다. 다만 화전3리(옛 전풍)가 생기게 된 유래에 산수유가 등장한다. 

마을을 소개하는 기록에 보면 조선시대 선조 임금 때인 1580년에 호조참의를 지낸 노덕래라는 사람이 이곳에 정착했고 산수유나무가 많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에 마을을 일구면서 마을 곳곳에 산수유나무를 심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다. 

화전2리(옛 화곡)를 소개하는 기록에는 약 300년 전에 최 씨와 조 씨가 정착했는데 사방이 산으로 쌓여 있고 다래넝쿨로 덮여 있는 골짜기를 개척해서 ‘숲실’이라 칭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런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노덕래라는 사람이 화전3리에 정착한 뒤에 100여 년 동안 화전2리는 사람이 살지 않는 산골짜기였겠다. 

마을에서 산수유꽃축제를 여는 데 올해로 여덟 번 째다. 장터가 열리고 공연이 펼쳐지는 축제의 주요 무대는 화전3리에 마련됐으나 산수유는 마을 전역에 지천으로 피어난다. 

점심을 못 먹어서 축제 장터에서 육개장을 시켰다. 1회용 식판과 그릇에 밥과 반찬 육개장을 담아서 산수유 꽃그늘을 찾아 천막식당 밖으로 나갔다. 허겁지겁 밥을 먹으며 바라본 산수유나무 밑동이 굵다. 400년 전 심었다던 그 나무는 아닐까?

 

▲ 산수유마을 저수지에 피어난 산수유꽃.

산에도 들에도 도랑에도 산수유
배를 채우고 축제장을 어슬렁거린다. 축제라고는 하지만 옛날 5일장에 사람들 장구경 나온 분위기다. 서커스단이 들어와서 공연을 하고 사는 사람 파는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어 대며 주막에서는 술판이 벌어지는 정도다. 서커스단 대신 공연단의 연주와 노래가 펼쳐지고 민속놀이에 장기자랑이 열린다. 팔고 사는 것이야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 의성에서 나는 갖은 산물들이 천막을 한 칸 씩 차지하고 있다. 

축제장 구경을 마치고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산길 4km, 들길 4km 총 8km 구간을 걷는 코스다. 

낮은 산에 등산로도 잘 정비했다. 길 안내는 곳곳에 나부끼는 리본과 간혹 보이는 등산로 이정표가 잘 해준다. 

양지 바른 산길에 할미꽃이 피었다. 푸른 소나무도 길도 있고 곳곳에 진달래도 피었다. 간혹 시야가 터지는 곳이 나오면 어김없이 산수유 노란 꽃이 산천을 수놓은 풍경이 보인다. 

등산로 바로 옆에 산수유나무가 군락을 이루었다. 꽃으로 피어 노랗게 물든 산비탈이 황홀하다. 시선을 멀리 옮기면 마을 저 아래 무리지어 있는 산수유나무 사이로 구불구불 길이 흐른다. 

등산로 이정표가 길을 화곡지로 안내한다. 화곡지는 마을 위에 있는 저수지다. 화곡지로 내려가기 전에 전망 포인트가 나온다. 그곳에 서면 골짜기를 따라 자리잡은 마을과 논밭,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있는 산수유 군락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화곡지로 내려와서 마을로 가는 길을 따른다. 길가 도랑에도 마늘밭 옆에도 집 담장 안에도 뒷동산에도 산수유나무는 노랗게 꽃을 피웠다. 

 

▲ 산수유마을 등산로에 핀 산수유꽃이 앞산 능선 위에 걸쳤다.

산수유꽃 같은 불꽃이 피어나고

마을길에는 여행객들이 많다. 놀러온 사람들이니 마음먹고 산을 오르기 전에는 마을 산책길이 더 어울리겠다. 

푸른 마늘밭 위에 피어난 노란 산수유꽃은 색의 대비가 만들어 내는 봄의 빛깔 중 하나다. 봄처녀 하늘거리는 치맛자락의 싱그러움과 명랑함이랄까? 

▲ 산수유 축제 불꽃놀이.

해는 기우는데 사람들은 아직 웅성거린다. 해가 지면 불꽃놀이를 한단다. 불꽃을 쏘아 올리는 곳이 산수유꽃이 피어난 산기슭 아래다. 골짜기를 울리는 폭죽 소리에 아이들이 귀를 막는다. 솟구친 불꽃은 어두운 밤하늘에 수를 놓는다. 

하늘에서 터져서 머리 위에서 퍼지는 불꽃이 산수유꽃을 닮았다. 온 산천과 하늘에 산수유 꽃잔치다. 

불꽃놀이는 5분 남짓 펼쳐지다 끝났다. 이곳 불꽃놀이는 화려하지도 않고 세련되지도 않지만 이곳에서 터지는 불꽃이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순전히 불꽃과 산수유꽃이 닮았기 때문이다. 

불꽃놀이를 뒤로하고 축제의 주 무대로 내려가는 밤길 저 멀리서 신나는 노래 소리가 들린다. 공연장 한 쪽 어슴푸레한 조명 아래서 열심히 북을 치고 장구를 두드리는 각설이패의 노래가 꽃 피는 봄 날 산수유마을 밤을 타고 아직도 흥에 겹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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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