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석과 VIP석
입석과 VIP석
  • 김오윤 기자
  • 승인 2015.04.07 13: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SPECIAL COLUMN 창조경제시대 목재산업의 새로운 소비자 창조⑭
▲ 영림목재 이경호 회장

[ 나무신문/ 영림목재 이경호 회장 ] 최근 게재된 매일경제의 문화-예술분야 전문인 전지현 기자의 [입석의 행복, 우린 왜 없을까]란 글이 눈길을 끌었다. 중소기업 분야를 담당하던 그녀가 오래전 문화부로 옮긴 후 종종 올리는 기사를 관심 있게 보아오던 터였는데 다음과 같은 오피니언 난으로 글을 내보냈다.

“<입석 밖에 없습니다.> 지난 1월 말 영국 로열발레단 공연 ‘오네긴’이 열리는 로열오페라하우스 매표소에서 그 말을 듣고 한참 망설였다. 2시간 넘게 서서 공연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리 예매하지 못한 게으름에 대해서도 자책했다. 그렇다고 런던까지 가서 로열발레단 공연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고심 끝에 5파운드(약 8500원)를 주고 입석을 구매했다”며 전지현 기자는 이어 “1막이 종료되고 중간휴식이 끝날 무렵 입석 앞에 빈 좌석 두 개가 눈에 띄었다. 공연에 흥미를 잃었거나 급한 일이 생겨 돌아간 관객 덕분에 생긴 공석이다. 2막이 시작되자마자 재빠른 입석 관객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나이가 지긋한 공연장 안내원도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아줬다”하고 “입석은 관객의 열정, 극장의 배려와 경영전략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졌다”며 “세계 최고 극장은 ‘입석의 행복’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나눠준다”라고 평가하면서도, 국내에서는 다른 관객들의 불만과 화재 등 비상 상황을 고려해 이 입석이 폐지됐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렇다면 로열오페라하우스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은 관객안전을 생각지 않아서 입석을 만들었을까”하는 강한 의구심을 던지면서 “왜 영국과 미국이 문화강국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라며 끝을 맺었다.

이에 대한 필자도 아련히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1977년 늦은 봄 자락의 마로니에 꽃이 한창 피었던 파리에서였다. 마로니에는 무환자나무목 칠엽수과의 낙엽교목으로서 특히 파리의 관상용 가로수로 유명하다. 마로니에를 영어로는 horse chestnut이라고 하는데, 유럽으로 도입되기 전에 페르시아에서 숨이 차 헐떡이는 말의 약으로 사용했고 어린 가지의 엽흔(葉痕)이 말발굽 모양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때가 세 번째 파리에의 업무출장이었는데, 평소 업무로 친하게 지내던 대우실업의 파리주재원에게 그 유명한 공연장인 ‘오페라좌’에서 한 오페라를 관람할 수 있도록 부탁해 놨었다. 당일 그의 부인과 올 계획으로 VIP좌석 세 표를 예약구매해 놓았다는데 갑자기 부인이 몸이 아프다하여 둘이서만 입장하게 되었는 바, 아마도 제법 비싼 표였을텐데 어찌할 수 없어 둘이서만 들어가 1막 공연을 봤다. 1막 공연이 끝난 후 중간휴식 시간을 이용해 길고 넓은 낭하(廊下)로 나와 쉬는 시간을 가졌다. 여러 테이블에 준비된 음료수와 함께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즐기며 연미복과 드레스를 멋지게 차려입은 파리장들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왔다. 그때 당시엔 다소 사치스러워 보였지만 사실상 한편으론 정말 부러웠다. 우리 삶 속에 한국에서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도 생각해 봤다.

이때 옆에서 “한국분이십니까?”며 한 미모의 젊은 여성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혼자 와서 심심하던 차에 우리 둘이 한국말로 얘기 나누는 것을 듣고 나서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반갑게 이런저런 얘기꽃을 피우다가 문득 아까운 VIP표 생각이 나 혹시 그녀에게 좌석이 어디인지를 물어봤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낭하 입석표’라는 것이다. 이 오페라를 꼭 보고 싶었는데 표 값이 비쌀 뿐더러 유학생으로써 돈이 아까워 낭하에서 그저 모니터로 보고 스피커로 듣기만 하는 표를 천 프랑 주고 입장했다는 게 아닌가. 우리는 물론 2막부터 황송해 하는 그녀와 함께 VIP좌석에서 관람을 하게 됐다. 그녀가 공연 중에 “우리가 평소 부러워하던 VIP석이지만, 무언가 편안치 않은 면이 있네요”라고 속삭이기에, 나중에 무슨 뜻인지 물어보려 했으나 그냥 잊어버리고 말았다. 지금도 자못 궁금하긴 하다.

공연이 끝난 후 우리 셋은 근처의 어둠이 내린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녀가 담배를 피우며 고달픈 유학생활을 설명할 때의 그 어두운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돈 때문에 북한에 포섭된 어느 유학생의 이야기 또는 경비절감을 위한 남녀유학생의 합방과 실험결혼 등 당시 우리로선 아주 낯선 내용이었고, 김포공항을 떠날 땐 모두 부러워했지만 이제 7년차에 접어들어서야 박사학위를 들고 귀국하면 누가 그리고 무엇이 나이 들고 찌들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겠는가 하면서 말이다. 위로하는 우리의 말에 그저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돌아서서 빈고(貧苦)한 하숙집으로 향하는 그녀의 처연(悽然)한 뒷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뚜렷한 사고와 학문에의 열정은 그녀가 귀국한 후에도 여전히 빛났으리라 생각한다.

유럽에서의 오페라 관람 경험을 한 가지 더 얘기해보고자 한다. 78년 가을로 기억되는데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출장 갔을 때 어렵게 저녁시간을 빌어 ‘오페라 하우스’를 찾아갔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푸치니의 <라 보엠>, <나비부인>과 더불어 3대 오페라 중 하나로 꼽히는 ‘토스카’가 공연 중이었다. 2층 구석 좌석인데도 다소 비싼 느낌이 드는 표를 구입해서 설레이는 마음으로 입구로 향했으나 입장을 저지하는 게 아닌가! 일상 업무를 마친 후라 무심코 잠바를 입고 갔는데 규칙상 정장(formal dress)이어야만 된다는 것이다. 잠시 당황했던 나는 그러나 곧 여권을 내놓으며 “이 오페라를 보러 멀리서 왔다”라고 사정사정해 겨우 입장할 수 있었다. 넓은 홀 속에 꽉 들어찬 관객들의 뜨거운 열기가 대단했다. 아름다운 서정적인 곡이 끝날 때마다 환성을 올리고 손뼉을 마구 치며 목재마루 바닥을 시끄러울 정도로 구르는 청중들의 모습은 정말 문화예술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격려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마침내 제3막 ‘산 탄젤로 성’의 감옥과 옥상이 등장하고 날이 밝으면서 간수가 나타난다. 곧 사형을 당할 카바로도시는 간수에게 끼고 있던 반지를 뇌물로 주고 마지막으로 편지를 쓰게 해달라고 한다. 편지를 쓰던 카바로도시는 감회에 북받쳐서 그 유명한 테너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E Lucevan Le Stelle)’을 부른다. 이 아리아는 지난날 토스카와의 뜨거웠던 사랑과 갖가지 추억을 회상하면서 부르는 이별의 노래이다. 잠시 그 가사를 들어보자.

별은 빛나건만/ 땅은 향기를 뿜고/ 문의 삐걱임과/ 흙을 스치는 발자국과 함께/ 향기로운 그녀는 들어와/ 두 팔에 쓰러져 안겨오고/ 달콤한 입맞춤, 부드러운 손길/ 내가 떨고 있는 사이/ 그 아름다운 것들은/ 베일에 가려지듯 사라졌네/ 내 사랑의 꿈은 영원히 사라지네/ 모든 것이 떠나갔네/ 절망 속에 나는 죽어가네/ 일생만큼 난 사랑치 못하였네.

이 곡이 끝났을 때 그야말로 장내가 떠나갈 듯한 청중의 함성과 앵콜 요청 등 반응이 어떠했을지는 독자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고자 한다.

지난 3월 10일엔 ‘라움, 문화를 여행하다’라는 타이틀로 금난새 씨가 지휘하는 연주회에 초대를 받았다. 프리젠테이션의 최고전문가로 알려진 ‘엔트리 컨설팅’사의 김미성 사장과 그녀의 부군인 김학관 총경(현 강남경찰서 서장)이 우리를 저녁식사 겸해서 초대해준 것이다. 서강대학 유기풍 총장, 장흥순 블루카이트 사장, 신용한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위원장 및 필자가 참석했는데 신위원장은 당일 가족의 갑작스런 애경사가 생겨 불참케 됐다. 연주 장소는 일반 의자를 평면좌석으로 구성해 학교식으로 배치함으로써, 많은 관객들이 동시에 공연을 즐기게 돼 있었으며, 오스트리아 대사 등과 어우러진 청중은 다소 어눌한 금난새의 설명이 곁들여진 멋진 연주회를 감상했다.

이 연주회를 통해서 전지현 기자의 ‘입석의 행복’과 기억 저편에 있는 ‘오페라좌에서의 VIP좌석’이 불현 듯 떠올라 비교됨은, 아마도 행복이란 것이 입석과 VIP석 구분에 있지 않고 그리 멀지 않은 우리들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는 가르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