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감성이 메마른 산림과학원
어쩌다 감성이 메마른 산림과학원
  • 서범석 기자
  • 승인 2015.03.3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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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범석의 칼럼 혹은 잡념

[나무신문] △비중이 낮고 가볍다. △가공이 용이하다. △열전도율이 낮다. △촉감이 좋고 외관이 아름답다. △흡수, 흡수성이 있다. △부후성이 있고 해충이 발생한다. △옹이 등으로 불균질성 재료이다. △할열이 일어난다.

우리나라 대표적 구조용집성재 전문기업 경민산업의 기술지침서 중에서 ‘목구조 설계자와 시공자가 알아야 할 목재의 기초지식’편 첫 번째 단락에 등장하는 “목재의 특성”이다. 내가 여기에서 목재의 특성에 외따옴표도 아니고 쌍따옴표를 붙인 데이는 이유가 있다.

내가 목재업계에 입문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 그 세월 동안 옹이나 갈라짐, 부후성 등을 목재의 결점이나 단점이 아닌 “특성”으로 규정한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으니, 그만큼 대단한 변화라고 하기에는 아직도 입가에 씁쓸함이 남는다.

‘교과에서부터 배운다’는 옹이나 갈라짐, 불에 탐, 부후성 등 목재의 결점은 사실, 다른 대부분의 소재로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목재만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하지만 우리 목재업계는 스스로 이것들을 단점이라고 치부해버린다.

불에 타는 목재의 성질이 오직 단점이라면 산림바이오매스 산업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묻고 싶다. 이 분야에서는 불에 타는 목재의 특징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장점이 된다. 또 몇 해 전 한 가구전시회에서는 옹이와 갈라짐투성이 국산 간벌재를 집성해 만든 가구가 바로 옆에서 팔리고 있던 미국산 최고급 목재로 만든 제품보다 더 비싸게 팔리는 광경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적도 있다.

물론 이러한 특성들이 무조건 장점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야말로 심각한 결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것도 명확한 사실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최근 제정하고 있는 ‘목재제품의 규격과 품질기준’이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 집성재판재 등급에서 옹이가 있는 것은 무조건 저등급으로 분류함으로써 업계의 공분을 사고 있는 것이다.

집성판재는 대부분 가구재나 인테리어용으로 쓰이고 있다. 때문에 소비자들의 기호에 따라서는 옹이 있는 제품이 더 선호되고 있는 게 시장의 현실이다. 그런데 품질기준에서 무조건 저등급으로 분류해 놓으면 소비자들의 인식이 나빠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그래서 집성판재를 일단 옹이 있는 제품과 옹이 없는 제품으로 분류하고, 여기에서 다시 등급을 매기자는 요구다.

나는 이것이 매우 타당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과학원 입장에서는 번거로운 일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목재 소비자들의 감성을 왜곡시킬 수 있는 품질기준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홍릉숲 속 우리의 산림과학이 감성을 재충전하는 봄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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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