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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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신문
  • 승인 2015.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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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서울시 서대문구 개미마을

 

▲ 개미마을 전경.

인왕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따라가면 기차바위가 나온다. 기차바위 서쪽 산 아래 숲을 치고 올라온 마을이 있다. 이른바 ‘개미마을’이다. 서울에 남아 있는 달동네 중에서도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 개미마을 뒷동산.

뒷동산 
지하철 3호선 홍제역 1번 출구 부근에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다. 07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다. 이곳부터 이른바 ‘개미마을’ 여행을 시작한다.

마을 골목을 누비기 전에 뒷동산에 먼저 오른다. 마을이 70년대 달동네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마을 뒷동산도 70년대의 추억 속 그 풍경이다.

나에게도 유년의 추억이 서린 뒷동산이 있었다. 나무막대기가 칼이 되고 하늘을 향해 새총을 쏘아대던 그 시절 뒷동산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곳이었고 가장 크고 붉은 해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으며 맑고 순수한 풀들이 사는 곳이었다.

뒷동산에 올라 바라보는 마을은 참 착하고 순해보였다. 당시에 초등학생이었지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지금도 몇 년에 한 번 쯤은 그 동네 골목길을 걷고 뒷동산에 올라 본다.

개미마을 마을버스 종점 옆에 있는 뒷동산으로 올라간다. 하늘로 치솟은 나무들이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밧줄을 엮어 놀이시설을 만들었다. 숲속에 작은 놀이터 ‘복합밧줄놀이시설’이다.

그 숲에서 아빠와 엄마, 두 아이가 논다. 흔들거리는 밧줄다리를 신나게 건너갔다 돌아오는 아이들이 숲의 싱그러운 향기와 닮았다. 이 아이들이 커서 가끔 옛 일을 돌이켜 볼 때 아빠 엄마와 놀던 이 숲의 느낌을 오감으로 기억하겠지.

아이들이 노는 숲에서 나와 산길로 올라가면 인왕산 기차바위를 지나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기차바위가 뒷동산에서 빤히 보인다. 기차바위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를 이곳에서 보니 확실히 알겠다. 한 눈에 보기에도 기차를 닮았다.   

뒷동산 둘레를 돌다보면 안산 정상 봉수대도 볼 수 있다. 곳곳에 시야가 트인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에는 집들이 산기슭에 깃들어 있다.

뒷동산을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마을버스 종점으로 내려간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개미마을 골목길 여행을 시작한다.  

 

 

▲ 개미마을 벽화.

연탄재와 나무전봇대
개미마을의 행정동 이름은 홍제동이다. 조선시대 중국 사신들이 조선을 오갈 때 묵던 여관격인 ‘홍제원’이 있던 곳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판자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달동네가 만들어 졌다. 예전에는 지금 보다 집도 사람도 더 많았다. 지금 마을에서 가장 꼭대기에 있는 집들 보다 더 위쪽으로도 집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작은 터만 있으면 텃밭을 일군다. 집 앞이건 뒤건 골목 자투리 땅이건 상관없다.

울타리 없는 집들도 있다. 골목 옆이 텃밭이고 텃밭 안쪽에 허름한 집이 자리잡고 있다. 집마다 개를 키우는 지 골목 여기저기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방에서 함께 생활하는 애완견이 아니라 마당에서 집을 지키는 개다.

개 짖는 소리 가득한 골목길을 따라 걷다가 만난 꽤 넓은 텃밭 가운데 나무전봇대가 눈길을 끈다. 전봇대에 전선이 하나도 없다. 게다가 중간이 부러졌다. 더 이상 전봇대의 역할은 하지 못하지만 저 전봇대를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부러진 나무전봇대 주변으로 연탄재가 수북하다. 하얗게 타버린 채 연탄 모양 그대로 나뒹구는 것도 있고 질척거리는 땅을 메우느라 부서져 가루가 된 연탄재도 있다. 그러고 보니 이 마을 골목은 아직도 흙길인 곳이 많다.

광에 연탄 가득 채워놓고 김장 항아리에 김장김치를 가득 해 놓으면 긴긴 겨울 엄동도 따듯했었다. 이 마을 사람들도 그렇게 올 겨울을 보냈겠지!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아 질척거리는 곳에 뜨겁게 구들을 달구었던 연탄재를 뿌려 봄이 오는 길을 다진다.

 

 

▲ 개미마을 벽화.

골목과 벽화
개미마을의 길들은 나무 같다. 마을 가운데 마을버스가 오가는 큰길이 굵은 줄기처럼 뻗어있고 그 길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뭇가지가 퍼지듯 골목길이 갈라진다. 

집들이 산비탈에 들어섰기 때문에 계단이 많다. 계단이자 그 자체가 골목인 것이다. 계단을 오르다 보면 같은 높이의 집들을 잇는 골목이 갈라지고 또 만난다.

그렇게 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벽화를 감상한다. 골목과 벽화는 궁합이 잘 맞는다. 벽화가 없어도 골목은 그 자체로 정감이 있지만 거기에 벽화를 덧 입혔으니 골목이 풍성해 보인다.

하지만 사람이 살고 있으니 벽화도 따듯해 보이는 것 아니겠는가.
지붕 위에 골목이 있고 텃밭 아래 집이 있다. 골목을 오가면 남의 집 살림살이가 눈에 들어온다.

그 지붕과 골목길, 담벼락을 누비고 다니는 고양이들 또한 이 골목 주인이다. 지붕 위에서 봄날 햇볕을 즐기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어느 집 뒤뜰에 모여 고양이 세수를 하는 축도 보인다.

 

 

▲ 개미마을 고양이들.

비탈진 계단 골목길 한 쪽에는 물이 흐르는 골을 만들었다. 비가 오면 아마도 그 골로 물이 세차게 흐를 것 같다. 3월 꽃샘추위에 언 물줄기가 큰 고드름처럼 남아 있다.

 

골목길 계단을 내려오는 데 계단 곳곳이 까맣다. 누군가 최근에 연탄을 나른 흔적이다. 계단 좁은 골목이라 오로지 사람이 질통을 메거나 손으로 들어서 연탄을 날라야 한다. 뉘엿뉘엿 저무는 개미마을에서 걸어 나오는 데는 ‘연탄길’이 제격이겠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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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