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어화(解語花) 피던 곳에서 울려 퍼지는 법화(法話)
해어화(解語花) 피던 곳에서 울려 퍼지는 법화(法話)
  • 나무신문
  • 승인 2015.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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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서울시 성북구 길상사

▲ 삼선교 전철역에서 길상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선잠단지. 조선 성종임금 때 만들어졌다.
지하철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길상사로 가는 길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높지 않은 건물이 도토리 키 재기하며 가로수 아래 줄을 지어 있다. 그 길을 걷다보면 시인 조지훈과 관련된 조형물과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선잠단지를 볼 수 있다. 그런 길을 걸어 특별한 이야기가 깃든 도시의 절, 길상사에 도착한다.

 

길상사 가는 길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로 시작하는 시 <승무>를 쓴 시인 조지훈은 성북동에 살았다. 그가 살던 집을 ‘방우산장’이라고 불렀다. ‘방우산장’에는 많은 문인들이 드나들었는데 시인은 집 밖까지 나와 문우들을 배웅하곤 했다.

성북동에는 일제강점기 소설가 이태준과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 등이 살았으니 그 골짜기에 문향이 그윽했으리라.

그래서일까 지하철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성북동 골짜기로 들어가는 길은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 길에서 <시인의 방-방우산장->이라는 제목의 조형물을 만났다. 조지훈 시인이 성북동에 살았던 것을 알리고 그의 시심을 전달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 ‘조지훈 기념 건축조형물’을 만든 것이다. 조형물은 우리의 전통 가옥의 마루와 처마를 상징한다. 이곳을 지나면 선잠단지가 나온다. 

선잠단지는 누에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던 곳으로 1473년(성종 4년)에 만든 것이다. 선잠단 제사는 매년 음력 3월 뱀의 날 중 길한 날을 택해 지냈다. 선잠단지는 사적 제83호이며 단지 내에 있는 뽕나무들은 성북구의 아름다운 나무로 지정됐다.

선잠단지를 오른쪽에 끼고 우회전하면 큰 길에서 마을길로 접어들게 된다. 갈래길에서 길을 물어 길상사에 도착했다.

 

▲ 극락사 일주문.
대원각에서 길상사로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법정스님에게서 길상화라는 법명과 염주 하나를 받은 김영한이 1997년 대원각이 길상사가 되던 날 대중 앞에서 남긴 말이다.’라고 길상사 홈페이지 자료에 적혀 있다. 
한때 시인 백석으로부터 자야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김영한은 훗날 <백석, 내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그는 성북구 배밭골에 한식당을 열었고 훗날 그 자리에 대원각이라는 요정이 들어선다. 대원각은 제3공화국 시절 대한민국 3대 요정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김영한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마음이 움직여 대원각에 절을 세워달라는 부탁을 법정 스님에게 했다고 한다. 대원각 터와 모든 건물을 시주하겠다는 거였다. 법정 스님은 사양했다.

그 후에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법정 스님은 그의 청을 들어주었고 1997년 요정 대원각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 서울 분원으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절 한 쪽에 그의 뜻을 기리는 ‘길상화 공덕비’가 있다.
그의 소원대로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에 맑고 장엄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게 된 것이다.

 

▲ 극락전 앞에 있는 작은 돌부처.
도시의 절에서 찾은 휴식
번잡한 도시 자동차 매연과 소음이 가득한 도로에서 20여 분 거리에 길상사는 있다. 도시의 절, 그 안에서 쉰다.
오래된 나무며 나뭇가지를 흔들고 가는 바람, 새소리, 풍경소리… 그 아래 앉아 있는 시간은 휴식이다.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 만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라는 법정 스님의 글이 생각난다.

일주문을 지나는 일은 적어도 내게는 일상과 결별하는 것이다. 잊기 위해 힘들이지 않고도 저절로 사라지는 것들, 그것이 근심일수도 있고 행복일수도 있지만 근심도 행복도 다 사람의 일이라 이 순간은 그 모든 것들이 내 것이 아니다.

그렇게 경내를 걷는다. 고목에 걸린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는 사이 큰 석탑이 눈에 들어온다. 길상보탑이다. 조선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한다. 육중한 돌의 무게도 풍경소리처럼 가볍다.

수령 265년의 느티나무가 겨우내 곱은 가지를 봄햇살에 녹이고 있나보다. 하늘을 향해 가지를 한껏 펼쳐 기지개를 켜는 듯하다.
나무그늘 아래로 걷는다. 지장전 앞 누런 잔디밭에 작은 연못이 있고 그 옆에 작은 석탑이 자리잡았다.

이리저리 닿는 발걸음을 멈춘 곳은 법정스님 진영각이었다. 진영각 마당 한 쪽에 법정스님의 유골을 모신 곳이 있다.
햇볕 잘 드는 마루 옆 나무의자 하나, 누군가 그곳에 앉아 낮은 돌담 밖 얼기설기 드리운 나뭇가지를 보았겠지. 빈 의자가 가득하다.

▲ 진영각.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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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