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 세상을 녹이다
해장, 세상을 녹이다
  • 나무신문
  • 승인 2015.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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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해장국

죽을 힘을 다해 일한 하루가 행복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들의 하루를 품은 밤이 싱싱한 술잔과 함께 깊어간다. 해장국은 술로 뭉친 속을 푸는 게 아니라 어젯밤 술자리에 뭉친 세상을 푸는  음식이다.

 

▲ 성환 이화시장 순대국밥.
장날만 먹을 수 있는 진짜 장터국밥
성환 이화시장이 100년 됐다. 매 1일과 6일에 열리는 5일장이다. 장이 서는 날이면 장골목 곳곳에 파는 사람 사는 사람 장구경 나온 사람이 난장판을 이룬다. 그야말로 난장이다. 왁자지껄 사람 사는 활력이 느껴진다. 그 시장 골목의 논리는 단순하다. 누가 누구를 해코지하거나 서로 속이고 우위에 서려는 경쟁도 없다. 권력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다 같은 장터 사람들이다. 언뜻 보기에는 물건을 팔고 사는 것 밖에 없어보여도 물건 값을 흥정하거나 덤을 주고받으며, 식사 뒤에 종이컵 커피를 어깨너머로 슬쩍 나누는 정이 흐른다. 그 한 복판에 장이 열리는 날만 문을 여는 포장마차 순대국밥집들이 있다. 국밥이 식어도 맛있으니 뜨끈뜨끈할 때 맛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시리라! 장날 장터에 나온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순대국밥에 언 몸을 푼다. 양복 입은 신사도, 예쁘게 차려입은 아가씨들도 식탁을 차지했다. 국밥을 먹는 지금은 다 같은 장터사람일 뿐이다. 

 

▲ 촌집 매생이황태탕.
북쪽의 황태와 남쪽의 매생이가 한 뚝배기에서 끓는다
조치원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촌집’이라는 식당이 있다. 그집에서 매생이와 황태를 한 뚝배기에 넣어 끓인 ‘매생이황태탕’을 드셔보시길. 매생이탕에 굴을 넣는 게 보통인데 이집은 황태를 넣었다. 매생이와 황태를 한 숟가락에 얹어서 한 입 먹는다. 향긋하고 구수한 매생이 향이 입안을 가득 메운다. 매생이가 머금었던 바다의 향기가 은은하게 퍼진다. 황태는 씹을수록 깊고 진한 맛이 우러난다. 첫 맛은 매생이가 뒷맛은 황태가 책임지는 거다. 한 뚝배기 다 먹을 때까지 매생이가 열기를 머금고 있어 뜨끈하다. 상에 오른 반찬은 정갈하고 맛있다. 연근을 살짝 데쳐서 초절임을 한 ‘연근데침초절임’이 아삭하게 씹히는 소리부터 새콤한 맛까지 식욕을 돋운다. 해초보쌈, 해초비빔밥, 해초돌솥비빔밥, 매생이죽, 매생이부침 등도 있다. 매주 일요일 쉰다.

 

▲ 육대장 육개장은 파가 많이 들어간 게 특징이다.
파가 많이 들어간 육개장
메뉴판 가장 위에 ‘옛날전통육개장’이 있다. 전통적인 육개장에 파가 많이 들어가는지는 모르겠는데 육대장 육개장의 특징은 대파가 많이 들어갔다. 그래서 이집의 육개장은 ‘파개장’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파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는 안내판이 식당 한쪽에 붙어 있다. 파는 네기올이라는 성분이 있어 살균 해열 작용을 돕는단다. 또 파에 함유된 알리신 성분은 피로회복에 좋다고 한다. 유화알릴 성분은 신경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적혀 있다. 이런 효능은 다 모르더라도 맛 자체가 깔끔하면서도 진하다. 한 숟가락의 육개장이 목으로 넘어간다. 어제 먹은 술 찌꺼기가 녹아 흐르는 것 같다. 어제 가슴을 맞대고 술잔을 기울였던 사람들의 고민도 술술 풀려야 할텐데...(육대장이라는 상호를 내건 육개장 집을 간혹 보았는데, 이 글은 인천 소래포구 부근 ‘육대장’집에서 육개장을 먹고 쓴 것이다)

 

▲ 일해옥 콩나물국밥.
군산의 콩나물국밥
군산 일해옥에서 콩나물국밥으로 군산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자는 나 혼자고 다들 생활의 편린이 묻어나는 현지 사람들이다. 식탁 마다 “어후! 시원하다”가 감탄사처럼 폭발한다. 어깨 너머 들려오는 얘기 “괜찮어? 어제는 뭔 일여?” 아마도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고민을 나눴나보다. 열심히 일한 만큼 행복해야 하는 데 그게 생각 보다 어려운 세상이라는 얘기가 주제가 됐나보다. 그들은 국밥 한 그릇에 숙취를 풀 듯 새로운 해가 뜬 새 날 아침을 그렇게 풀고 다시 일터로 나간다. 오늘 하루도 그들에게 행복이 깃들기를! 나의 아침은 그들이 있어 행복했다. 거기에 하나 더, 국밥이 맛있다. 국밥의 맛을 결정짓는 것은 국물 맛이겠지만 국밥에 들어가는 밥알의 상태도 중요하다. 질거나 너무 되도 안 된다. 탱글탱글한 밥알을 씹으면 밥알이 터지는 느낌이 나야 한다. 고슬고슬하면서 탱글탱글한 밥알이 맛있는 국물과 어울린 그 맛으로 국밥의 맛은 완성된다.

 

▲ 논두렁민물 어죽.
후끈 화끈 불끈, 어죽 납시오!
아산이 고향인 지인과 아산어죽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어린시절 천렵의 추억이 진하게 배어나는 그와의 이야기 끝에 언제 한 번 아산어죽을 먹어보리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아산 지역 여행지와 음식 취재와 촬영 계획이 잡혔다. 당연히 어죽을 그 목록에 넣었다. 어죽은 냇물 냄새도 좀 나고 강바닥 흙냄새도 좀 나고 물고기 냄새도 좀 나기 마련인데 아산의 어죽은 그런 맛들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거기에 후추와 산초가루를 넣어서 먹으면 어죽을 먹는 것인지 모를 정도다. 국수면발과 밥이 함께 들어가 있는 것도 특징이다. 어죽을 다 먹을 때까지 열기가 가시지 않는다. 후끈한 열기를 머금은 한 젓가락의 국수면발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서 속을 따듯하게 덥혀준다. 그 느낌이 부드럽다. 어죽을 먹다가 그와 나눈 이야기를 생각했다. ‘옆 마을 그 애는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음식을 어찌 맛으로만 먹겠는가? 추억이 맛이 되는 음식이 있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 오늘 같은 날 아무런 조건 없이 행복했던 어린시절 추억이 들끓는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맛있겠다. 아산에는 유명한 어죽 집이 서너 곳 있는데 그중 한 집을 다녀와서 이 글을 썼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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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