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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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신문
  • 승인 2014.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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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석환의 한국전통건축탐방 37 | 한국의 사찰 ⑬

▲ 대웅전 마당.
입지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에 있는 수덕사는 덕숭산(495m) 중턱의 좌우 능선이 감싸는 양지 바른 터에 입지하고 있다. 덕숭산 위쪽으로는 이 지역 지세의 중심인 가야산이 있고 아래쪽에는 충남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용봉산이 있는데 그 산들이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며 예산, 서산 등 동서의 고을들을 구분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경계지대의 산세가 탈속한 수도 도량의 장소성을 낳는다. 

수덕사가 안긴 덕숭산은 예산의 중심 지형으로서 근대 역사를 간직한 많은 암자들이 덕숭산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는데 일엽 스님이 견성암(환희대)에서 청춘을 불사르고 라는 책을 쓴 일화로도 유명하다.

 

▲ 관음보살상.
연혁
수덕사는 384년 동진의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할 때 창건한 절이라고 전해온다. 하지만 실제로는 백제 위덕왕(554~597) 재위시에 지명법사가 사비성 북쪽에 창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수덕사 경내 및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 와당은 그 창건설을 뒷받침한다. 고려시대 수덕사는 관련 문헌이 남아 있지 않으나 1308년(충렬왕 34년) 지은 대웅전과 통일신라 말기 양식을 본 딴 삼층석탑과 수덕사에서 출토된 고려자기 및 와당 등을 통해 융성했던 면모를 짐작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재덕숭산 사유취적불운이루(在德崇山 寺有就籍佛雲二樓) 라는 기록으로 보아 대웅전 이외에 2개의 누각이 있을 만큼 대가람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의 가람이 소실되었는데 다행히도 대웅전은 전화를 입지 않고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수덕사에는 다음과 같은 창건설화가 전해온다. 홍주마을에 사는 수덕이란 훌륭한 가문의 도령이 있었는데 그가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터의 먼발치에서 한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 곧 상사병에 걸린 도령은 수소문한 결과 그 낭자가 건너 마을에 혼자 사는 덕숭낭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청혼을 했으나 여러 번 거절당했다. 수덕도령의 끈질긴 청혼으로 마침내 덕숭낭자는 자기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 줄 것을 조건으로 청혼을 허락하였고 수덕 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짓기 시작했다.

▲ 수행공간에 걸린 묵언 표지.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절을 완성하는 순간 불이 나서 모두 소실되었다. 다시 목욕재계하고 예배 후 절을 지었으나 이따금 떠오르는 낭자의 생각 때문에 다시 불이 나서 완성하지 못했다. 그 후 낭자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으나 수덕도령이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참지 못한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낭자의 한 쪽 버선만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버선 모양의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이 꽃을 버선꽃이라 한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이후 수덕사는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고 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이라 하여 덕숭산 수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다.

수덕사(덕숭총림)는 조계총림(조계산 송광사), 영축총림(양산 통도사), 가야총림(가야산 해인사), 고불총림(장성 백양사) 등과 함께 한국 불교의5대 총림으로 되어 있다. 총림이란 선원(禪院), 강원(대학 또는 승가대학원), 율원(율원 승가대학원) 그리고 염불원을 갖추고 본분종사인 방장의 지도하에 대중이 여법하게 정진하는 종합수행 도량을 말한다. 총림에는 방장, 수좌, 주지, 유나, 선원장, 율주, 강주(학장) 및 당주(염불원장)가 있다. 수덕사는 1984년 11월29일 중앙종회의 의결로 근대선풍을 진작한 선지종찰임이 인정되어 총림(叢林)으로 승격되어 덕숭총림이라 하고 초대 방장에 혜암스님을 추대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25교구 본사중 제7본사이다.

 

▲ 대웅전 측면.
배치 및 공간구조
수덕사로 들어가는 주차장 주변은 유명 사찰답게 관광객들을 의식한 상가가 즐비하다. 그 시설들은 일주문 앞 도로 양편에 저잣거리처럼 늘어서 있었는데 그러한 번잡스런 분위기를 정비하면서 집단 시설지구를 형성해 놓은 것이다.

그 상가 가로를 지나 우측으로 접어들면 매우 굵은 두 개의 기둥이 떠받치는 일주문이 있고 다시 한참을 걸어 올라가면 경내로 들어서는 천왕문이 놓여 있다. 수덕사는 그 천왕문 너머의 금강문을 지나 대웅전 앞마당에 도착하게 되어 있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심우당, 관음전, 명부전, 염화실, 화소굴, 청련당, 백련당, 무이당, 범종각, 법고각, 조인정사, 완월암 등이 중앙의 대웅전 축을 중심으로 대칭적으로 놓여 있고 주 경내 주변으로 환희대, 극락암, 선수암, 견성암(見性庵), 정혜사(定慧寺) 등이 퍼져 있는데 별도 사찰처럼 큰 영역이 형성된 정혜사에는 능인선원, 관음전, 산신각, 요사체 등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 대웅전
범종각 앞 마당에 서면 앞쪽 지리가 낮게 깔린 상태로 멀리 호쾌한 시선이 펼쳐져서 이곳에 절 터를 잡은 의미가 느껴지게 된다. 그런데 중심 불전인 대웅전 전면에 근래 새로 지은 만세루가 과도한 규모로 세워져 있고 축대로 구분된 너른 마당이 놓여 있어 대웅전이 상대적으로 왜소하게 느껴진다. 그처럼 너른 대웅전 마당이 조금 휑해 보이는데 비해 대웅전 측면으로 돌아 들어간 관음전 마당 등은 지형을 적절히 살려 아담한 공간감이 느껴진다.

수덕사 앞에는 수덕여관은 과거 이응노 화백이 살았던 집이다. 그 앞 마당에는 이응로 화백의 추상문자 그림이 새겨져 있어서 그의 자취와 예술세계를 느껴볼 수 있다.

 

▲ 전면 조망.
목조 건축 양식의 백미 대웅전
국보49호인 수덕사 대웅전은 현존하는 전통 건축물 가운데 가장 완전한 형식미를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 목조 건축물 가운데 세 번째로 오래된 목조 건물로 고려시대 1308(충렬왕34)년에 세워졌다. 다듬돌 기단에 다듬돌 초석, 배흘림기둥, 항아리보, 우미량 등 균형미가 뛰어난 각각의 부재의 치목 솜씨는 국내에서 가장 빼어나다 할 만큼 건축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우미량은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부재이다. 건물 측면에서는 건물의 내부 구조가 측면에 고스란히 드러나며 내부 기둥도 배흘림기둥이고 가구는 11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살은 사선의 빗살 형태로 되어 있으며 오랜 세월 풍파를 견뎌온 기둥은 무늬결이 선명하게 도드라져 있다. 그처럼 오랜 세월을 견뎌온 부재 들은 유물적 감각이 드러난다.


김석환 
한재 터·울건축 대표. 1994년부터 터·울건축을 개설하여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삼육대, 광주대 건축과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1999년 건축문화의 해 초대작가 및 대한민국 건축대전, 대한민국 건축제 초대작가로 활동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일산신도시 K씨주택, 목마도서관 등이 있다. 저서로 <한국전통건축의 좋은느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