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佛國寺)
불국사(佛國寺)
  • 나무신문
  • 승인 2014.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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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석환의 한국전통건축탐방 36 | 한국의 사찰 ⑫

▲ 전면 대기단
입지
불국사는 토함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 불국사가 안긴 토함산은 경주의 남산과 함께 신라시대 불교의 성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남산이 민초들의 염원에 의해 자발적으로 조성된 데 비해 불국사는 국가를 통치하는 차원에서 국가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불국토의 의미를 담아 조성한 것이다. 그리고 절의 명칭에서 나타나듯이 토함산 전체에 대해 불국토의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국교로 공인한 이후 신라는 불교를 국가이념으로 삼으며 호국불교의 성격을 띠어 왔다. 그리고 옛 신라 영토 곳곳에는 호국불교의 유적들이 남아 있다. 통도사에는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분황사, 황룡사지 등에도 호국불교의 정신이 담겨 있다. 또한 선덕여왕은 사후에도 나라를 수호하려는 의지로 낭산에 자신의 무덤을 두게 했는데 그 릉이 있는 낭산은 도리천에 해당하며 그 앞에 놓인 사천왕사와  불교적 세계관의 맥락을 이루고 있다.

불국사가 안긴 토함산은 경주의 동해쪽 외곽 언저리를 감싸고 있는데 그에 의해 경주 도읍 전체가 산세에 둘러쌓인 형국을 갖게 되었다. 경주는 동해로 뻗친 낙동정맥의 주변 가운데 가장 너른 들을 갖고 있다. 낙동정맥이 좌측으로 굽어 흐르며 너른 평야지대를 이루어 놓았고 그 평야지대 언저리에 토암산 등의 산세가 둘러싸여 있다.

 

▲ 석가탑과 다보탑
연혁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짓기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다.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신라시대의 절이다. 눌지왕(?~458) 때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신라 법흥왕 15년(528)에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의 바람으로 불국사가 창건되었다고도 전한다.

한편 <삼국유사> 권5 <대성효2세부모> 편에 따르면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김대성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김대성은 전세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현세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정작 자신은 완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김대성 사후, 공사는 신라 왕실에 의해 계속되었고 착공부터 완공까지 3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창건 당시 불국사는 대웅전 25칸, 다보탑·석가탑·청운교·백운교, 극락전 12칸, 무설전 32칸, 비로전 18칸 등을 비롯하여 무려 80여 종의 건물, 약 2000칸이 있었던 장대한 가람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임진왜란때 천년을 지켜온 2000여칸에 이르는 대가람이 전소되었으나 전쟁이 끝난 후 조정의 지원과 승려들의 노력으로 전란의 피해가 복구되기 시작했고 순조 5년(1805)에 이르기까지 200여 년에 걸쳐 40여 차례의 중수를 거듭했다.

▲ 연화칠보교
그리고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도 수리공사가 있었으나 다보탑의 사리장치가 없어지고 공사기록을 남기지 않는 등, 일제에 의한 불국사의 수난은 계속되었다. 광복 후에 석가탑의 해체, 복원 등 부분적인 보수작업이 이뤄졌고, 그 후 불국사복원위원회가 구성돼 1973년 6월에 보수를 끝낸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1969년에서 1973년에 걸친 발굴조사 뒤 복원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내에는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다보탑과, 석가탑으로 불리는 3층 석탑, 자하문으로 오르는 청운·백운교, 극락전으로 오르는 연화·칠보교가 국보로 지정,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문화재는 당시 신라 사람들의 돌을 다루는 솜씨가 얼마나 출중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아울러 비로전에 모신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극락전에 모신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을 비롯한 다수의 문화유산도 당시의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느끼게 한다. 불국사는 이처럼 수준 높은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12월에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 관음전
배치 및 공간구조
일주문 안으로 들어서 숲길을 지나면 연못이 나온다. 불교에서 연꽃은 정화를 상징한다. 그 잔잔한 연못에 주변 숲과 사물이 비추어 입체감을 띤다. 그 연못 사이에 걸쳐진 다리를 건너가 금강문을 지나게 되어 있다. 그 금강문에는 사찰을 수호하는 금강역사가 서 있는데 석굴암의 금강역사와 비슷한 양식으로 되어 있다. 금강문을 지나 조금 안으로 들어서면 큰 소나무가 서 있는 너른 마당이 나온다. 그리고 마치 나무로 가공한 듯 정교하게 가공된 석재 교각과 축대가 장엄한 느낌을 풍긴다.

불국사의 인상은 그 전면의 석조물에 의해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축대는 1300년동안 변형없이 지반이 지탱되고 있는데 거기서 신라시대 사람들의 수준 높은 축대 기술과 지혜를 느낄 수 있다. 즉 기둥과 보를 건물의 구조재처럼 가구식으로 축조하고 교차지점에 팔뚝돌을 땅 속 깊게 박아 놓아서 토압을 안정적으로 지탱할 수 있게 했다.

그 축대에는 대웅전으로 오르는 청운교 백운교와 극락전을 오르는 자하교 칠보교가 각기 놓여 있는데 그 축대 위는 불국토의 세계를 장엄하기 때문에 축대 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불국토의 세계로 들어서는 의미를 담고 있으나 현재 교각 출입은 개방되어 있지 않고 좌측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 대웅전
불국사의 조성은 불국토를 현세의 사바세계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배치는 불국토의 의미를 갖도록 상징적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대웅전 영역, 극락전 영역, 관음전, 비로전 영역 등 불교에 등장하는 여러 지존들의 전각을 조성해 놓아서 각각이 불교 전체의 세계관을 나타내도록 형상화 해 놓았다.

불국사의 가람배치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뉜다. 하나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청운교, 백운교, 자하문, 범영루, 다보탑과 석가탑 등이 있는 영역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칠보교, 연화교, 안양문 등이 있는 영역이다. 그 중 대웅전 영역은 중앙에 놓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전면의 문루와 대웅전 후면의 강당이 일직축선상에 놓여 있고 회랑이 둘러쳐 있는 대웅전 영역은 우리나라에 불교가 도입된 초기의 공간 배치 구조를 띠고 있다. 그 뒤로 축대를 오르면 관음전이 있고 그 좌측 축대 아래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비로전이 있다. 그 비로자나불은 국보로서 불교 미술사에서 희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극락전 좌측에는 수행하는 선원과 스님들이 일상 거처인 요사체가 있다.

▲ 불국사 주변 행각
불국사 주변에는 너른 소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어 늘 청정한 수행처로서의 장소성을 갖게 한다. 그리고 불국사가 안긴 토암산 중턱위에는 석굴암이 있는데 그 안에 모셔진 석가모니불은 붓다가 막 깨달음에 이른 때의 심오한 표정을 생생히 나타내고 있다. 그 신비한 모습이 토암산 전체에 불국토의 분위기를 감돌게 한다.


김석환 
한재 터·울건축 대표. 1994년부터 터·울건축을 개설하여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삼육대, 광주대 건축과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1999년 건축문화의 해 초대작가 및 대한민국 건축대전, 대한민국 건축제 초대작가로 활동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일산신도시 K씨주택, 목마도서관 등이 있다. 저서로 <한국전통건축의 좋은느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