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를 기다리며
철새를 기다리며
  • 나무신문
  • 승인 2014.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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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충남 서천

▲ 장항 송림
철새 없는 철새 도래지는 밋밋했다. 금강 하구 철새도래지에 철모르고 찾아든 건 여행객뿐이었다. 아쉽지만 겨울 한 복판에 다시 찾기로 하고 돌아섰다. 돌아서서 찾은 곳은 바닷가 송림으로 유명한 장항 송림과 갯벌로 유명한 선도리 갯벌이다. 그곳도 겨울이라 쓸쓸했다. 겨울 바다는 원래 그런 맛으로 찾는 거다.

 

▲ 금강 하구 철새도래지와 조류생태전시관
금강 하구에서
큰고니, 쇠기러기, 청둥오리, 넓적부리도요, 쇠오리, 가창오리, 재갈매기, 개리, 댕기물떼새, 노랑부리저어새 이런 새들이 겨울이면 금강 하구로 날아든 단다.

이런 새들이 날아들어 겨울 한 철 모여 사는 곳이 금강 하구이고 그런 새들을 지켜보는 곳이 조류생태전시관 혹은 철새조망지 등의 이름을 가지고 금강 하구 언저리에 있다.

금강 하구는 전북 군산, 전북 익산, 충남 서천 등이 인접한 곳인데 그중 충남 서천 조류생태전시관에서 망원경을 들여다봤다.

망원경에는 새 몇 마리 물 위에 둥둥 떠 있을 뿐 사진에서 봤던 수 천 마리 혹은 그 이상의 새들이 하늘에 무늬를 남기며 유영하는 모습은 없었다.

해질 무렵 새들이 모이지 않느냐는 말에 안내자는 아직 때가 일러 새들이 안 왔다고 대답한다. 이토록 허망할 때가 있나! 겨울인데 겨울 철새가 없다니!   

사람의 계절은 겨울이지만 새들은 아직 겨울이 아닌가 보다. 절기로 봐서도 입동 지난 지는 오랜데 새들도 사람들의 절기와는 다르게 계절을 맞이하나 보다.

▲ 금강하구 철새 도래지. 아직 때가 일러 가창오리의 군무는 보지 못했다
관계자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사람들의 간섭이 심해지면 철새들은 다른 곳에서 겨울을 날 둥지를 튼단다. 한 번의 날갯짓으로 비상할 때 드는 에너지가 엄청나다는 데 새떼의 멋진 비행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들 중 일부가 물에서 쉬고 있는 새떼를 향해 돌을 던져 날아오르게 했었단다. 철새도래지라고 사람들이 이름을 붙이고 조망시설까지 만들어 놓고 사람들 잘못으로 새들이 오지 않는 거였다.

사람들의 개입이 어디 몇몇 사람들의 돌팔매뿐이랴! 생태계가 오염되거나 생활환경이 바뀌면 새들은 다른 곳을 찾기 마련이다.

철새 없는 철새도래지에서 빈 물만 봤다. 물결 마다 빛나는 햇볕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도 다른 곳에서 봤다면 마음에 잔상이 남았을 텐데 철새 없는 철새도래지에서는 빈 물의 잔상만 멀미하듯 출렁거린다.

 

아침에 거닐었던 장항 송림
서천에 갈 때면 한 번은 들러보는 홍원항, 이번에도 그곳을 빼놓지 않았다. 구름 많은 하늘은 노을 보다 파도에 더 눈을 돌리게 했다. 바람 없는 바다의 파도는 별볼일 없었다.

평범한 날 항구의 저녁은 방어와 광어로 가득한 식탁으로 나를 위로했다. 서천의 특산품인 소곡주를 곁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끝내 그 생각은 저녁상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장항 송림을 보기 위해서 숙소를 장항 송림 바로 옆에 있는 유스호스텔로 잡았다.

검은 구름이 아침 하늘을 짓누르고 있었다. 해 없는 아침 소나무숲은 춥고 음습했다. 바다의 습기가 찬 공기와 엉겨 붙는다.

유스호스텔 뒤가 장항 송림이고 송림 앞이 바다다. 방풍림으로 조성됐을 장항 송림은 산책하기 좋은 숲이다. 끝까지 걸어가려고 했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아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와야 했다.

돌아오는 길 바다로 나가는 길목을 만나서 바다로 나간다. 갯벌이 펼쳐진다. 바다는 멀리 물러났다. 갯벌 앞에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 같은 갈대가 선명하게 보인다. 먹구름에 간혹 부는 바람, 바다는 멀리 있고 새들도 없는 그곳에 갈대만 혼자다.

 

▲ 선도리에서 만난 동백꽃
겨울꽃, 동백
보통 바닷가에는 방풍림이 있고 웬만한 곳은 소나무숲이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바닷가는 방풍림 소나무숲이 띠처럼 둘러싸고 있다.

서천에서 갯벌로 유명한 선도리갯벌도 소나무방풍림이 있다. 방풍림을 지나 갯벌로 들어서니 먹구름 사이로 햇볕 줄기가 부채살처럼 쏟아진다.

겨울 선도리 갯벌은 구경할 것도 없었다. 그저 쓸쓸한 바닷가 풍경이나 만끽하고 돌아설 뿐이었다. 겨울바다는 다 그런 거다. 지상의 것들이 다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는데 사람만 여름처럼 활개를 치니 바다 앞에서만이라도 수렴의 계절을 느껴야하지 않겠는가?

선도리 마을 김을 만드는 집 마당에 동백꽃이 피었다. 웬 꽃이냐며 달려간 그곳에는 정말로 빛나는 녹색 잎에 붉은 동백꽃이 있었다.

‘동백’, 아마도 ‘겨울 꽃’ 아니겠냐는 생각만으로도 그 꽃이 그곳에 피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충분했다.

서천은 동백꽃군락지로도 유명한데 그곳하고는 상관없는 신도리 마을 동백나무 몇 그루가 그렇게 꽃을 피워낸 것이다.

겨울 끝 동백꽃은 봤어도 겨울 시작 동백꽃은 처음이다. 영원하게 피어 있는 꽃이 없으니 아마도 지금 핀 동백꽃은 금강하구에 겨울철새가 날아들 때면 그 꽃을 떨구겠구나! 다 가고 오는 거구나!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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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