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사 영선암
봉정사 영선암
  • 나무신문
  • 승인 2014.12.0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건축가 김석환의 한국전통건축탐방 35 | 한국의 사찰 ⑪

▲ 봉정사 극락전
입지
봉정사는 낙동정맥 줄기를 이루는 산세에 이어져 있다. 청량산에서 낙동강 건너 풍락산(775) 응봉산, 만리산, 용두산, 봉수산(567m), 학가산(870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서 학가산의 봉우리인 천등산(575m)에 면해 있다. 그리고 그 산줄기 너머에는 영주가 있고 좌측에는 예천이 있다.

이 절은 의상이 종이로 만든 봉황을 날려 앉은 명당에 절터를 잡았다는 전설이 전해 올만큼 자리 앉음새가 좋다. 안동에서 진입하다 보면 구릉진 들녘 언저리와 만나는 봉황산이 밝은 햇살을 쬐듯 바라보인다. 

그 길을 오르다 경내가 올려 보이는 기슭에 기품과 맵시 있는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휘어 오르는 산사 길과 잘 어우러지면서 곧 닿을 경내에 대한 기대감을 크게 한다. 높다란 언덕 가운데 놓인 계단을 올라 만세루 루하를 지나 대웅전 마당에 당도하도록 되어 있고 그 좌측 마당의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그러나 그처럼 사료적 의미가 있고 지형과 어우러진 느낌도 좋은 봉정사지만 건축적 힘을 특별히 느끼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그 경내를 벗어난 곳에 아늑한 암자가 하나 있어 이곳에 발길을 내디딜 때마다 감동을 갖게 된다.

 

▲ 영선암 조감
연혁
봉정사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1972년 그 곳 극락전을 해체 수리할 때 나온 상량문에는 1363년에 중수한 기록이 있었다. 그런데 목조 건물은 건립 후 대략 150년 만에 중수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그로 미루어 이 건물이 13세기초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 연대적 의미는 건축적 우수성 여부를 떠나 오래 전 이 땅에서 이루어진 건축솜씨를 확인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곳 경내에 있는 대웅전을 조선전기의 다포식이고 화엄강당은 공포가 익공식으로 되어 있는데, 다른 곳에서 보이듯 형식적 면모로만 쓰여지기 쉬운 것과 달리 여기서는 외목도리를 받치는 구조적 역할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봉정사는 전통건축의 대표적 공포형식인 주심포식, 다포식, 익공식을 한자리에서 확인하기에 좋은 곳이다.

 

▲ 영선암 마당
배치 및 공간구조
봉정사 경내를 돌아보고 요사체 쪽으로 나와서 계곡을 가로질러 좁은 계단길을 오르면 왼편으로 가옥처럼 보이는 건물이 서 있다. 정면에서 바라본 그 건물의 첫 인상은 풍상으로 거무스름하게 변해서 그리 친근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누 밑으로 난 입구 통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맑게 정제된 분위기에 의해 저절로 숨소리를 죽이게 된다. 영선암은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촬영한 곳이다. 그런데 그 영화는 잘 기억하지만 영선암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영화의 힘은 영선암의 분위기 때문에 생길 수 있었다.

건축은 지반에 의존하는 관계로부터 성립된다. 유람선은 집처럼 거주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지만 땅과 관계없기 때문에 건축이 되지 못한다. 땅과 관계 맺음에 의해 건축다움이 생기고 우주질서와 운행을 같이하며 호흡하는 사물로서 독특한 성질을 갖게 된다. 영선암은 단지 하나의 암자이지만 그 건축적 감각은 어느 곳보다 빼어나다. 자연 산세의 품과 조화된 자라잡음, 공간적 짜임새, 자연스런 흐름과 변화의 감각을 지니고 있다. 건물의 물성과 햇살 바람 등 자연 현상이 생생한 생명력을 발하며 고요한 수행처의 감각을 띤다.

영선암의 마당은 건물로 둘러쳐 외부세계와 분리된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상태이다. 빈 아랫마당에 면해 놓인 툇마루에 조용히 앉아 있으면 맑고 정갈한 분위기의 힘이 느껴진다.

▲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의 허와 실
자연의 힘을 응축해서 고이게 하는 것 같은 미묘함이다. 그러나 이 곳의 느낌은 좀 더 치밀한 의도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위란 본질적으로 부자연스러운 일인데 여기서는 인위의 바탕 위에서도 손길을 가하지 않은 것처럼 유연하게 느껴진다. 영선암의 배치는 건물들이 마당을 둘러치고 앉은 단순한 형식이지만 자연스런 흐름을 유도하듯이 조금씩 어긋나 있다. 전면 누 밑의 지면은 마당보다 몇 단 낮고 고랑처럼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아랫마당이 더 투명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응진전과 노전으로 오르는 계단이 생동감을 일으킨다.

영선암은 시작도 끝도 없는 비완결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닫힌 구성이지만 어딘가 항시 열려져 있어서 외부와 끊임없는 호흡이 일어나고 숨결이 유지되고 있다. 항상 조용함이 유지되는 아랫 마당은 적당한 짜여짐이 있어서 바깥에서 들어오면 정제된 분위기로 바뀌는 전환이 있고, 다시 밖과의 관계로 생기는 긴장의 힘이 있다. 그리고 건물들은 마당의 넓이에 비례하여 짜여짐의 힘이 지녀질 만큼의 적당한 높이로 되어 있다. 그 반면 각각의 건물의 구조는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다. 다포식인 응진전과 민도리 형식을 한 요사체의 디테일 변화는 통일 속의 다채로움으로만 작용되고 있다.

영선암은 건축의 질서틀 안에서 조용히 햇살이 닿아 생기는 갖가지 정감 있는 표정, 사물 본연의 생명력과 숭고함, 맑고 순수한 느낌이 함께 한다. 경사지형을 알맞게 다듬어 이루어진 배치는 그 느낌을 이루는 중요한 요인이다. 마당은 지형을 따라 여러 단으로 이루어져 레벨상의 위계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입구에서 보면 아랫마당은 지형의 고저차를 이루는 반쯤에 걸쳐 있어서 항상 다음 단계로의 흐름이 예비되어 있다. 그리고 건물로 둘러싸인 부분의 반쯤이 화단으로 되어 있어 자연지형과 같은 자연스런 분위기를 이룬다. 머무를 곳의 정제된 분위기와 경사진 자연지형의 동세적 요소가 결합되어 있어서 누 밑 계단을 오를 때, 불전 계단을 오를 때의 느낌이 각각 다르다. 입구 통로의 짧은 거리를 지나가는 동안에도 어스름한 통로의 감각으로부터 좀더 다가갔을 때의 표정이 한 발자욱을 옮길 때마다 달라지며 생생하고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조용히 승방 쪽마루에 앉아 흙마당의 적조한 햇살을 느낄 때면 침묵에 사로잡히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명상에 잠겨든다. 세속을 벗어난 듯이 한줄기 자의식만 마음안 깊은 곳으로 자신을 찾아간다. 계절에 따른 변화는 마당에 비춘 그림자를 더 길거나 짧게 한다. 그림자가 소리 없이 건물의 창과 마루, 마당 위로 움직여 간다. 마당 한 쪽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건물의 처마자락을 살짝 걷어올리듯이 서 있는데 그 한 그루 나무는 주변에 있는 많은 나무들보다 더 큰 자연의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김석환 
한재 터·울건축 대표. 1994년부터 터·울건축을 개설하여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삼육대, 광주대 건축과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1999년 건축문화의 해 초대작가 및 대한민국 건축대전, 대한민국 건축제 초대작가로 활동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일산신도시 K씨주택, 목마도서관 등이 있다. 저서로 <한국전통건축의 좋은느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