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소사(來蘇寺)
내소사(來蘇寺)
  • 나무신문
  • 승인 2014.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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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석환의 한국전통건축탐방 34 | 한국의 사찰 ⑩

▲ 내소사 대웅보전 내부
입지
변산반도 국립공원은 호남정맥 서측에 위로부터 익산 김제, 부안 정읍, 고창이 아래로 평야지대로 이어지고 있다. 변산은 내륙에서 섬처럼 바다로 돌출되어 있어 변산 반도로 불리며 호남들녘 너머에 별천지 같이 놓여 있다. 변산(509m) 호남정맥 등 이웃한 산줄기로부터 떨어진 별도의 산세를 이루고 있고 바닷가의 절벽 등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수려한 풍광을 이루고 있다. 변산반도는 그러한 입지를 바탕으로 별천지 같은 풍광이 있고 이야기가 있으며 중생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청정 도량이 있다. 속세를 벗어난 극락의 세계로 여겨질 만큼 밝고 호젓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내소사는 항상 아늑하고 따스한 산세의 품을 느끼게 한다.

내소사는 변산의 한 봉우리인 관음봉(433m)을 배경으로 좌우 능선에 감싸인 남향의 터에 자리 잡고 있어 햇살이 늘 따스한 느낌을 띤다. 부안 답사 때는 개암사와 내소사를 함께 돌아보기 알맞다. 내소사와 개심사는 변산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직선거리로 10km 정도 떨어져 있다. 개암사 주변은 성처럼 기암괴석들이 형성되어 있는데 들녘 언저리를 오가며 자연의 품에 안긴 호젓한 느낌을 느낄 수 있다. 내소사 뒤 관음봉은 불교적 교리에 따라 설정된 명칭이 부여되어 있다. 그 봉우리 이름에서  이곳에 부여된 불교적 세계관의 의미를 느끼게 한다.

 

▲ 대웅보전 루하진입
연혁
내소사는 백제 무왕 633년(백제 무왕34)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소래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그 이름이 지금의 사찰 명칭인 내소사로 언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창건 당시에는 대소래사와 소소래사가 있었는데 지금의 내소사는 예전의 소소래사라고 한다. 그 후 고려 때의 사적은 전해지지 않으며,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임진왜란 때 전소한 절을  인조 때에 청민선사가 중창하였으며, 1633년(인조11년)에는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고종 때인 광무 6년(1902) 관해선사가 중건했고 관해선사와 만허선사의 증축이 있었으며, 1932년에는 내소사의 오늘을 있게 한 해안선사가 1932년 내소사에 자리를 잡고 절 앞에 계명학원을 설립하여 무취학 아동들과 무학 청년들을 대상으로 문명 퇴치 운동을 벌이고 서래선림을 개원하여 호남불교의 선풍을 진작시켰다. 이후 해산 우암선사가 선풍을 이어 봉래선원을 신축하고 현재의 대가람을 이루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소사 대웅전(보물 제291호)은 관음조가 단청을 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노승이 법당에 단청을 하려고 화공을 불러왔다. 노승은 대중에게 “화공의 일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법당 안을 들여다봐서는 안 되느니라” 하고 엄격히 타일렀다. 그런데 법당 안으로 들어간 화공은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밖에 나오질 않았고 사람들은 법당 안에 그려지는 그림이 보고 싶고 궁금했다. 하지만 법당 앞에는 늘 목수가 아니면 노승이 지키고 있어서 들여다 볼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우는 법당 가까이 가서 목수에게 “스님께서 잠깐 오시랍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목수가 법당을 떠나자 선우는 재빠르게 문틈으로 법당 안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림 그리는 사람은 없는데 오직 영롱한 작은 새가 입에 붓을 물고 날개에 물감을 묻혀 벽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더욱 호기심이 커진 선우는 문을 살그머니 열고 법당 안으로 발을 디밀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디선가 산울림 같은 무서운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리면서 그림을 그리던 새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호랑이 소리에 놀란 선우가 어슴푸레 장신을 차렸을 때 법당 앞에 호랑이가 죽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노승은 그  대호를 향해 법문을 했다. “대호선사여, 생사가 둘이 아닌데 선사는 지금 어느 곳에 가 있는가. 선사가 세운 대웅보전은 길이 법연을 이으리라” 이 이야기는 1633년 청민선사가 내소사 조실로 있던 때의 일로 전해지는데 청민선사는 대웅보전 증축 후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그 전설대로 대웅전은 지금도 한 개의 포가 모자란 채 지탱되어 있다.

이 법당 안 불단 뒤쪽 벽면에 그려진 백의관음보살좌상은 국내에 남아 있는 백의관음보살좌상중 가장 크다. 그리고 국화, 목단 등의 형상으로 섬세하게 가공된 대웅전 꽃창살은 매우 유명하여 이것을 보러오는 일들도 많다.

 

▲ 전나무 숲길
배치 및 공간구조
일주문을 들어서 긴 진입로를 거처 천왕문에 이르러 경내를 들어설 때면 엄격한 수행도량이지만, 소풍가고 싶은 숲 속 완만한 경사지에 훤출히 트인 양지바른 곳처럼, 경사진 너른 언덕에 맑은 햇살이 고르게 퍼지는 평화로운 느낌을 대하게 된다. 그리고 앞에서는 능가산의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서 경내에 넉넉함과 편안한 느낌을 불어넣고 있다.

또한 이 절 안에는 수령 950년 된 큰 당산나무가 있어 마을 어귀를 지날 때와 같은 친근한 느낌을 주는데, 그 당산나무는 일주문 밖의 할머니 당산나무와 짝을 이룬다고 한다. 조선시대 중기에 사찰이 민간신앙을 아우르면서 사찰경내에 산신각 등 민간 신앙 요소가 들어왔지만 여기처럼 당산 신앙이 들어온 곳은 희귀한 예이다.

내소사는 입구의 긴 전나무 숲길 또한 유명하다. 일주문을 들어서자마자 경내 문을 들어서는 천왕문에 이르기까지 길 양편에 큰 전나무가 하늘 높이 솟아 터널을 이루고 있다. 묵묵히 경내로 들어서다 가끔 하늘을 보면 아스라이 솟은 전나무 위로 파란하늘이 트여 마음을 맑게 한다.

▲ 일주문
천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편안한 경내의 품새가 느껴진다. 천왕문에서 불전을 향하는 길은 조금씩 축이 어긋나며 점차 몇 단계의 축대를 오르도록 되어 있는데 경사가 완만하고 나지막하여 불전으로 향하는 발걸음도 평온해진다. 그 길 좌우의 축대 위는 평평하게 닦인 채 비워져 있고 그러한 빈 공간들이 편안한 느낌을 발하게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한 때는 많은 당우들이 다 들어차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돌계단을 디디고 대웅전 마당에 이르면 중앙에 석탑이 놓여 있고 정면 축대 위에는 대웅전이 당당함과 화려한 기품을 발하며 놓여 있고 마당 우측의 요사체와 좌측의 무설당이 아늑하 마당을 감싸고 있다. 또 대웅전에 오르면 그 좌측에 벽안당이 놓여 있으며 그 뒤쪽 위로 삼성각이 놓여 있다. 그리고 요사체 우측에는 화승당이 나란히 놓여 경내의 품을 크게 느껴지게 하며 그 뒤로 돌아가면  청련암 영역이 별도 암자처럼 조성되어 있다.  

항상 봄볕을 쪼이는 듯한 따스함과 편안함을 주는 내소사는 많은 사람들이 아껴 찾는 곳이다.

▲ 꽃창살

김석환 
한재 터·울건축 대표. 1994년부터 터·울건축을 개설하여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삼육대, 광주대 건축과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1999년 건축문화의 해 초대작가 및 대한민국 건축대전, 대한민국 건축제 초대작가로 활동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일산신도시 K씨주택, 목마도서관 등이 있다. 저서로 <한국전통건축의 좋은느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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