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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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신문
  • 승인 2014.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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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북한산 문수봉

▲ 문수봉에 올라선 초등학교 4학년 승언이
북한산 등산코스 중 평창동~문수봉~구기동 코스는 안전하면서도 북한산의 산세를 느끼기에 충분한 코스다. 그래서 아이들이나 나이 많은 사람도 어렵지 않게 오갈 수 있다.

출발지점인 평창동 삼성아파트에서 도착지점인 구기동까지 약 6~7km 정도 거리이며 놀고 쉬고 먹고 경치를 즐기면서 천천히 걸어도 4시간 정도면 거뜬하다.

 

문수봉에 오르다
광화문 KT건물 앞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평창동 삼성아파트 가는 버스를 탔다. 삼성아파트 정류장에서 내려서 건널목을 건너 아스팔트길을 올라간다. 멀리 북한산 보현봉 봉우리가 보인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섰다. 언제나 그렇듯이 등산은 초반 20분이 가장 힘들다. 그 초반 20분을 이번에는 계단길에서 만났다.

계단을 다 올라 북한산 평창동 출입소를 통과해서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알싸한 숲 향기가 좋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뱉는다. 보폭을 줄이고 천천히 걷는다.

▲ 동령폭포
동령폭포가 나왔다. 비가 많이 오면 바위절벽을 타고 낭떠러지로 물이 떨어지는데 그렇지 않으면 물 없는 빈 폭포다. 그 풍경도 나쁘지는 않다. 돌계단과 흙길 나무계단이 뒤섞인 길을 오르고 또 오른다.      

이번 산행은 혼자가 아니다. 열 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했다. 각자 준비해온 간식을 풀고 나누어 먹는 휴식시간이 즐겁다. 혼자 다닐 때 여러 사람이 둘러 앉아 음식을 먹으며 웃고 얘기하는 풍경을 보며 부러워했다.

▲ 대성문
그렇게 걸어 도착한 곳은 대성문이다. 대성문은 북한산성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문이다. 그 문을 통과해서 좌회전해서 조금만 더 가면 대남문이 나온다.

대남문은 북한산성 가장 남쪽에 있는 성문이다. 대성문은 형제봉 능선을 타고 서울의 북쪽 평창동과 정릉동으로 오가는 중요한 성문이다.

오늘의 목적지인 문수봉은 대남문에서 가깝다. 대남문에 돗자리를 깔고 준비해온 음식을 먹는다. 산행의 즐거움이 배가 된다.

▲ 북한산 단풍
그런 기분으로 문수봉에 올랐다. 해발 727m 높이의 문수봉에 오르면 전망이 탁 트인다. 멀리 백운대 인수봉 만경봉 등이 보인다. 반대편 풍경에는 사모바위 비봉 향로봉 족두리봉 등의 한 눈에 들어온다. 

일행 중에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도 있었는데 처음부터 문수봉에 도착할 때까지 씩씩하게 잘 걷는다. 아이가 문수봉에 올라 풍경을 둘러보는 모습이 대견하다.

문수봉을 타고 넘는 부드러운 바람을 한껏 느낀다. 땀이 마르는 기분이 상쾌하다. 일행은 핸드폰카메라로 풍경을 담거나 서로 기념사진을 찍어준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 문수봉에서 바라본 풍경 저 멀리 족두리봉이 보인다
북한산성
문수봉 코스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풍경이 능선을 타고 산을 넘는 북한산성이다. 사적 제162호로 지정된 북한산성은 그 둘레가 8km 정도 된다.

북한산에 성을 처음 쌓은 건 132년 백제의 개루왕이었다. 고구려의 장수왕이 백제의 북한산성을 함락하고 성을 차지했다. 이후 신라의 진흥왕이 한성을 점령하면서 성의 주인이 됐다.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전란을 겪은 뒤 한양도성 외곽에 성을 쌓자는 논의가 대두됐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굴욕적인 항복을 해야했던 인조는 두 아들마저 청나라에 볼모로 보내게 됐다.

▲ 문수봉에서 바라본 백운대와 인수봉
그 두 아들이 바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었다. 소현세자는 청나라에서 서학을 알게 되고 새로운 문물을 접했다. 조선에 돌아가면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조선의 현실에 접목하겠다는 뜻을 세웠다. 봉림대군의 전쟁의 패배와 굴욕적인 항복을 해야했던 일을 마음에 두고 북벌의 꿈을 키워갔다.

세자가 왕의 자리를 물려받는 게 당연하지만 소현세자는 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고 봉림대군이 왕이 됐다. 그가 바로 효종이다.

효종은 북벌 계획의 하나로 북한산성을 쌓을 것을 결심하고 송시열에게 그 일을 맡겼다. 하지만 북한산성 축성은 그때 이루어지지 못했고 숙종38년(1712)에 완성됐다.

성 둘레가 약 8km정도 된다. 성내에는 행궁과 99개의 우물, 26개의 저수지, 8개의 창고 등이 있었다. 성 안에는 승군을 주둔시키기 위한 사찰을 여러 개 두었다.

 

▲ 문수봉 아래 있는 문수사. 바위동굴에 부처님을 모셨다
자연동굴에 만들어진 문수사 절집
문수봉에서 대남문 쪽으로 내려왔다. 문을 통과하면 하산길과 문수사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하산하기 전에 문수사를 들렀다. 문수사로 가는 길에서 바라보는 보현봉의 자태가 늠름하다. 

문수사는 고려시대 예종4년(1109)에 대감탄연국사가 창건했다. 고려시대 의종21년(1167)에는 왕이 친히 절에 다녀갔다. 조선시대 암행어사로 이름을 널리 떨쳤던 박문수도 그의 부친이 오랫동안 후사가 없어서 이곳에서 기도를 드려 얻은 아들이다. 문수사는 자연동굴에 만든 절집으로 유명하다.

문수사에서 다시 대남문 쪽으로 나와서 하산길에 접어든다. 약 2.5km 하산길이 지루해질 무렵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가 마지막 인사를 한다. 북한산의 마지막 단풍이 아닐까 생각했다. 단풍나무가 혼신을 다해 마지막 가을을 빨갛게 물들이며 산객들을 배웅하고 있는 것 같았다.  
 

▲ 산에서 내려와서 세종음식문화거리에서 비빔국수를 먹는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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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