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심사 開心寺
개심사 開心寺
  • 나무신문
  • 승인 2014.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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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석환의 한국전통건축탐방 32 - 한국의 사찰 ⑧

▲ 대웅보전 마당
입지
서산은 금북정맥 서측에 별도로 독립된 지형에 면하여 내륙의 외륙 같은 형세를 지니고 있다. 즉 가야산 (677)으로부터 북측의 옥양봉(621), 상왕산으로 이어진 지형이 동서로 지역을 가른 가운데 서해 언저리에 위치한다. 그리고 그 산줄기와 북쪽의 옥녀봉 산세에 둘러싸여 있어 그리 너르지 않지만 독자적 지역성을 띠고 있다. 그리고 개심사, 서산마애삼존불, 보원사지 등 유서 깊은 문화유산이 많이 간직되어 있다. 

개심사가 안긴 상왕산(307)은 이 지역 지세의 중심이 되는 가야산(677)의 한 봉우리로 가야의 명칭은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로부터 유래되었다. 산의 모양이 코끼리 형상을 하고 있어 상왕봉이라 부르기도 하고 옛날 상왕이 이곳에 도읍을 정해서 그리 부른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개심사가 전후 깊이가 깊지 않으면서도 넉넉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경내 앞에 여백적인 외부 공간과 너른 연못이 있기 때문이다.

 

▲ 명부전 측면과 배롱나무
연혁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에 있는 개심사는 649년(백제 의자왕9)에 혜감국사가 창건한 절로서 원래 이름은 개원사였으나 고려시대에 중건하면서 개심사로 불리기 시작했다. 개심사는 특히 한국 불교사에서 고승들이 머물러 수행하던 곳으로 유명하며 특히 한국 선종이 중흥조로 불리는 경허 스님이 이곳에서 두문불출하며 정진했다. 경허스님은 그 후 개심사와 충남 일대에서 만공스님과 수월, 해월 등 많은 선사들을 제자로 길러내어 한국 선종의 전통을 세웠다. 

 

▲ 명부전
배치 및 공간구조
개심사는 마음이 열리는 절이라는 이름대로 언제나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 느껴진다.  일주문을 지나 한적한 숲길을 가다보면 산으로 접어드는 언저리 왼쪽에 세심동(洗心洞), 오른쪽에 개심사(開心寺)라고 글이 새겨진 입석이 대문처럼 길 좌우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 너머로 지그재그로 휘돌아 오르는 소나무 숲 속을 지나면 마을 어귀같이 편안한 앞마당이 있고 그 우측으로는 반듯하게 조성된 직사각형의 연못 가운데 외나무다리가 걸쳐져 있다. 그 연못은 상왕산이 코끼리를 상징하듯 코끼리가 목이 마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조성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외나무다리로 연못을 건너는 것은 피안(彼岸)의 세계로 건너감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외나무다리를 건너 계단으로 언덕 같은 지형을 올라 대웅전 마당 귀퉁이에 난 해탈문을 들어서면 대웅전 앞마당에 도달한다.

▲ 개심사 오르는 길의 표지석
개심사가 전후 깊이가 깊지 않으면서도 넉넉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경내 앞에 여백적인 외부 공간과 너른 연못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듯하게 구획된 대웅전 영역과 자연스럽게 현성된 주변의 다양한 공간, 그리고 반듯한 형식의 불전 건물과 돌담을 쌓아 지은 수각의 질박함 등이 다채롭게 어우러져 풍부한 감각을 띤다. 이른 봄에는 안양루 앞쪽에 만발하는 벚꽃, 복숭아, 능수 벗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장관을 이루는데 그와 함께 신록과 주변에 소박하게 일구어진 채소밭에서 자라나는 새싹 등이 함께 조화되어 생명력을 더한다.

이 절은 대웅전과 안양루, 심검당 무량수각이 마당을 둘러 감싸고 있는데 가로 세로가 약 24m 정도 되는 그 마당이 개심사의 중심 영역을 이룬다. 중앙에 5층 석탑이 놓인 그 마당은 매우 평온한 느낌을 지니는데, 마당 모서리의 해탈문으로 우각(隅角) 진입(모퉁이 진입) 하게 되어 있어서 중앙부로 진입할 때보다 마당 분위기가 더 차분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대웅전 마당 좌우측으로 무량수각, 심검당, 명부전 등이 연이어 있는데 그처럼 펼쳐진 배치 구조로 인해 전면에서 볼 때 큰 절이 아님에도 많은 건물이 어우러져 보인다.

개심사의 중심을 이루는 대웅전(보물 제143호)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 다포식 맞배지붕이다. 그리고 대웅전 마당에 면해 있는 심검당은 본래 지혜의 검을 찾는 집이라는 뜻으로  그처럼 정진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 반대쪽에는 스님들이 참선하는 무량수각이 있다. 그리고 그 오른편에 놓인 명부전은 철로 만든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염라대왕 등 10대왕을 봉안한 전각이다.

산신각은 우리나라에서 고유하게 발달한 토속신인 산신과 호랑이를 모신 전각이다. 불교가 도입된 초기에는 그러한 시설이 사찰에 들어오지 못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불교가 점차 민간 신앙을 아우르면서 대부분의 사찰에 그 전각이 세워지게 되었다. 사찰에서는 매년 10월 중순에 한차례 산신제를 올린다. 개심사 산신각 안에는 호랑이를 거느린 산신상이 그려져 있다. 민간 신앙에서는 산에 사는 영물로 호랑이를 산군으로 모시기 때문에 산신을 언제나 호랑이를 거느리는 것으로 표현한다.

 

▲ 이른봄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개심사
개심사의 문화재와 대웅전의 양식적 가치
개심사는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지 않고 보존되어 그 이전 시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건축사 자료로서도 소중한 곳인데 정면3칸 측면3칸에 맞배지붕으로 된 대웅전은 조선 성종 15년에 중창한 대웅전이 보물 제14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건물은 특히 주심포식과 다포식의 요소가 복합되어 있어 주심포에서 다포식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포작의 구성은 다포식이지만 맞배지붕의 형태나 건물 측면의 고주 사용, 그리고 지붕 구조의 가구 방식 등 건물의 뼈대를 이루는 기본적인 구성이 조선 전기의 대표적 주심포식 건물인 무위사 극락전(국보 제13호)과 유사한 모습을 띠고 있다. 대웅전의 기단은 백제시대 것이다.

개심사 영산회괘불탱은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괘불탱으로,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 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 그림이다. 조선 영조 48년(1772)에 그려진 이 그림은 임금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인데 특이한 신체 비례와 복잡한 문양에서 18세기 후기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봄철 개심사는 갖가지 꽃이 피어 매우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왕벗꽃이 화사히 필 무렵에는 온 주변이 봄기운에 들떠 보인다.


김석환 
한재 터·울건축 대표. 1994년부터 터·울건축을 개설하여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삼육대, 광주대 건축과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1999년 건축문화의 해 초대작가 및 대한민국 건축대전, 대한민국 건축제 초대작가로 활동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일산신도시 K씨주택, 목마도서관 등이 있다. 저서로 <한국전통건축의 좋은느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