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같은 마을
고향 같은 마을
  • 나무신문
  • 승인 2014.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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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경북 영양군 일월면 윗대티골

 

▲ 윗대티골. 마을에 시냇물이 흐른다 ⓒ장태동

돈은 무슨 돈, 그나저나 먹을 만은 했나 모르겠네!
원래는 영양 윗대티골 구들장황토방(황토로 벽을 만들고 구들을 깔아서 난방을 하는 집)에서 하룻밤 묵을 계획이었는데 이미 방이 다 찼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일반 민박집에서 하룻밤 묵게 됐다.

특별할 것 없는 민박집에서 특별한 일 없이 하룻밤 자고 아침을 맞았는데 이른 아침에 민박집 아저씨가 문을 두드리더니 아침 먹을 거냐고 물어보신다. 그래서 “주변에 식당이 없으면 여기서라도 먹어야죠” 하고 대답하고 기다렸다.

민박집 아저씨가 밥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신다. 민박집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드시는 그대로 밥상을 차린 거란다. 그러니까 민박집 손님들이 아침을 먹는다고 하면 민박집 주인 내외의 아침 밥상과 같은 밥 같은 반찬 같은 찌개를 먹게 되는 거다.

아침 잘 먹고 나오면서 밥값 계산을 하려고 했더니 민박집 주인아저씨가 “돈은 무슨 돈, 그나저나 먹을 만은 했나 모르겠네!”라시며 밥값을 안 받으신단다. 하도 완강하게 돈을 안 받겠다고 해서 몇 차례 말씀 드리다가 그냥 나왔다.

그런데 원래는 돈을 받는데 평일이고 손님도 나 혼자라서 밥값을 안 받으신 것 같다. 남자 혼자 왔다고 애써 아침까지 챙겨주신 민박집 아저씨께 고맙다고 인사 드린다.

시골에는 아직도 인심이라는 게 남아 있다. 아침 한 끼 보다 더 배부르고 가슴도 따듯해지는 그런 정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하다보니 발걸음이 상쾌해진다. 

 

 

▲ 황토구들방 ⓒ장태동

고향 같은 마을 윗대티골
민박집에서 1km 정도 떨어진 윗대티골로 향한다. 언제나 돌아가 안기고 싶은 곳, 고향. 그런 마을, 영양 윗대티골의 품에 안긴다. 

 

윗대티골은 일월산(1219m)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대티’는 ‘큰 고개’라는 뜻으로 마을 옆에 옛 고갯길이 남아 있다. 

마을 초입에 대티골을 알리는 입간판이 있다. 이곳부터 윗대티골까지 가는 길이 옛 시골마을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이 길은 외씨버선길 7코스의 일부 구간이기도 하다.

길을 따라 마을로 올라가면서 띄엄띄엄 집이 있고 밭에서 천궁이 자란다. 길 옆에 맑은 냇물이 흐른다. 전형적인 시골마을 모습 그대로다. 옛날에는 어른들은 밭에서 일을 하고 어린 아이들은 밭 옆에 흐르는 냇물에서 물놀이를 하곤 했다. 돌담길 고목이 마을의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곳이 나오는데 그곳에 안내문구가 적힌 입간판이 여러 개 있다. 2009년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숲길> 부문에서 ‘아름다운 어울림상’을 받은 곳이라는 내용이 보인다. 그 옆에는 외씨버선길 이정표와 아름다운숲길 안내도도 있다.

 

 

▲ 아름다운 숲길 ⓒ장태동

윗대티골 ‘아름다운숲길’
시골 마을의 정취를 만끽하며 마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마을길을 통과해 마지막 집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아름다운숲길이 시작된다.
하늘을 가린 숲 아래 계곡물이 ‘콸콸콸’ 흐른다. 계곡 옆에 길이 있어 언제나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다.

흙 위에 낙엽이 쌓여 오솔길이 폭신하다. 상쾌한 숲 공기를 들이마시고 주변 경치를 둘러보느라 걸음이 자연스레 느려진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을 만나면 계곡물에 손을 씻고 세수를 하며 쉬어 간다.

이 계곡물이 반변천의 최상류이다. 반변천 발원지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간다. 반변천 발원지를 만났다. 반변천은 이곳에서 발원하여 일월면과 영양읍, 입압면을 지나 임하댐에서 모였다가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총 길이 109.4km의 물길이다.

반변천 발원지 옆 계단으로 올라가면 짧은 오르막 구간이 나온다. 오르막길을 다 올라서면 길은 넓어지고 편안해 진다. 어른 서너 명이 어깨동무 하고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다.

길을 걷다 보면 시멘트 포장길이 잠깐 나오는 데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칠밭목’과 ‘숲길입구’ 등으로 길이 갈라지는 데 ‘숲길입구’ 방향으로 걸으면 된다.

 

 

▲ 반변천 발원지 ⓒ장태동

치유의 길
길이 차 한 대 지날 정도로 넓다. 사실 이 길은 예전에는 차가 다니던 31번 도로였다. 이 길은 일제강점기에 구리광산에서 캔 광물과 금강송을 실어 나르기 위해 산 허리를 잘라 만든 고갯길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 이용되다가 옆에 새 길이 나면서 자연의 품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옛길을 걷다보면 ‘영양 23km’라고 적힌 옛 이정표가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광물과 나무 등을 수탈해 간 아픈 역사를 간직한 길이지만 지금은 풀과 나무와 꽃들이 피어나는 자연의 품으로 돌아와 아름다운숲길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산은 잘린 허리를 제 스스로 치유하고 그곳에 서린 역사의 아픔마저 부드러운 초록의 숨결로 승화시켰다.

아름다운숲길을 걷기 전에 마을에서 만난 사람이 한 말이 생각난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걸어도 되고, 숲과 계곡의 풍경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도 되고, 마음에 있는 시름 하나 덜어 놓고 가도 됩니다. 마음에 걱정이 있다면 덜고 가는 거지요”  

길은 계속 내리막이라서 걷기 편하다. 길 중간에 원두막과 의자 등을 만들어 쉬어갈 수 있게 했다. 그렇게 길을 걷다보면 조금 전에 마을로 올라갈 때 만났던 갈림길이 나온다. 길  옆에 버선 모양의 조형물이 보인다. 이 길이 외씨버선길 7코스 중 일부와 겹치는 길이라서 버선 모양 조형물이 있는 것이다. 

 

마을을 둘러 싼 아름다운숲길을 걷는 윗대티골의 낮이 소풍이라면 황토집 구들장 방에 누운 밤은 엄마 품 같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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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