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산서원 屛山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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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신문
  • 승인 2014.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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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석환의 한국전통건축탐방 24 - 한국의 서원 ⑤

 

▲ 만대루서 본 입고당과 마당

입지
병산서원은 한국전통건축 가운데 건축과 자연이 어우러진 가장 빼어난 멋을 지니고 있다. 강 건너에 옆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병산은 수려하고 강물은 은자처럼 운치를 풍기고 서원은 그런 터의 운치를 잘 느낄 수 있게 짜여 있는데, 그 특별한 경관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서원에서 강과 함께 어우러진 병산의 풍광이다. 병산서원이 안긴 화산(338m)과 만대루에서 옆으로 길게 펼쳐 보이는 병산이 이 앞을 흐르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데 강 건너 병산의 지세는 화산을 향해 종으로 뻗친 모습이지만 서원 앞에서 양팔을 벌리듯 되어 병풍처럼 펼쳐 보인다. 

 

성리학을 신봉한 조선시대 선비들은 모든 점에서 주자를 본받으려 했다. 그래서 그가 일생동안 행했던 일화나 그가 세운 건물의 명칭 그리고 그가 머물며 공부하던 환경에 이르기 까지 다각도로 관심을 가지고 따라 행하고자 했다. 그리고 조선의 서원이 생성된 것도 주자를 흠모한 선비들이 그가 경영한 백록동 서원을 본떠 지은 것이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서원들은 그 모습과 장소성에 있어 중국의 서원과 여러 가지 다른 느낌을 풍긴다. 중국의 서원은 그 나라의 건축적 전통에 입각해 건물과 마당이 결합된 원(園) 단위의 영역이 반복적으로 짜인 양상을 띤다. 그에 비해 우리의 서원은 서원내 건물들이 전체적인 규범적 질서를 갖도록 구성된 가운데 자연 풍광과 서정적으로 어우러지게 되어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건축적 전통이 자연과 더 유기적인 관계를 갖도록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특히 병산서원에서 살펴 볼 수 있는 자연과 건축의 합일적 상승 감각은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빼어난 것이다.

 

 

▲ 만대루의 조망

연혁
사적 제260호인 병산서원은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탁월한 경세가로 칭송되는 서애 유성룡을 배향한 서원으로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에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은 16세기 중종 때 우리나라 최초의 성리학자인 안향을 추모하여 세운 소수서원이다. 그 서원이 생긴 후로 김굉필의 유지를 받들어 만든 도동서원을 비롯하여 이언적의 옥산서원, 이황의 도산서원, 병산서원 등 이 땅의 대표적인 서원이 생기며 점차 이 땅에 서원문화가 확산되어 갔다.

 

유성룡은 학자, 정치가로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운암(雲巖), 본관은 풍산(豊山) 이다. 서원이 되기 전 이곳에는 풍산면에 있던 풍악서당을 옮겨 지은 ‘병산서당’이 있었다.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은 공민왕이 지나다 그곳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상찬하기도 했던 곳인데 200여년이 지나는 동안 인근에 많은 건물이 들어서면서 유림들이 새로운 터를 물색할 때 서애가 이곳이 적당하다고 일러주어 1572년 서당을 병산으로 옮기고 이름을 ‘병산서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병산서당은 1607년 불에 탄 것을 그해 다시 중건하였는데 그 해 서애가 세상을 떠나고 3년 후인 1610년 현재의 사당인 존덕사를 건립하였다. 병산서원은 그 3년 후인 1613년(광해군 5)에 창건되어 유성룡(1542~1607, 柳成龍)의 위패를 모셨다. 그리고 1629년 서애의 아들인 유진(柳袗)을 추가 배향했으며 1863년(철종 14) 현재의 이름으로 사액 받았다.

 

 

▲ 입교당 마루에서 겹쳐보이는 만대루와 병산

배치 및 공간구조
서원은 강당을 중심으로 사당이 전면에 놓이는 형식과 반대로 후면에 놓이는 형식 그리고 자유롭게 놓이는 형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사당을 공간적으로 가장 위계를 높여, 부지 내에서 지형이 높은 후면에 두는 병산서원과 같은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외부로부터 진입문인 외삼문과 강당, 사당이 중심축을 이루게 하였다. 서원내 그 밖의 건물로는 서책을 보관하는 장서고와 사당에서의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 그리고 누각을 들 수 있는데 병산서원 건축의 백미라 일컬어지는 만대루는 휴식과 경연에 쓰이도록 지어진 누각 건물이다.

 

병산서원 내에는 사당, 강당, 기숙사인 동서재, 장판각 전사청 고직사가 전후 축선 상에 전학후묘의 반듯한 규범적 질서를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지대가 가장 높은 맨 뒤쪽에는 사당인 존덕사가 놓여 있는데 그 안에는 류성룡과 그의 아들인 류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그리고 그 좌측에는 서책을 보관하는 장판각이 놓여 있어 사당과 병렬 구성을 보인다.

 

 

▲ 병산서원 사당

중앙에 위치한 강당은 강학을 하는 곳으로 서원의 중심을 형성한다. 정면 5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원형 기둥에 굴도리를 얹고 5량가로 구성했다. 강당은 높은 기단에 놓여 있다. 앞에는 정료대가 있다. 그 강당 앞에는 좌우에 동쪽에 상급생이 쓰는 동재가 놓여 잇고 서측에는 하급생이 쓰는 서재가 놓여 있다.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로 가운데 대청을 두고 강 쪽에 기숙하는 방을 두었다. 막돌 기단위에 초석을 놓고 사각기둥을 세우고 민도리를 올렸다. 3량가로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맨 앞에 옆으로 길게 펼쳐 보이는 만대루는, 휴식과 경연을 위해 세운 건물로 사방이 모두  트여 있다. 그 마루에 오르면 강과 산이  어우러져 빼어난 풍광을 보이고 있다. 병산서원 건축의 백미라 일컬어지는 만대루는 휴식과 경연에 쓰이도록 지어진 누각 건물이다. 만대루 앞에는 3칸 솟을 대문으로 된 외삼문이 있는데 복례문이라는 현판이 결려 있다. 전체적으로 외삼문으로무터 만대루 강당이 일직선 중심 축선 상에 놓여 있고 맨 뒤 사당은 우측으로 조금 비켜서서 좌측의 장판각이 자리 잡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우측에는 전사청이 있고 그 앞에는 고직사가 있다.

 

병산서원은 만대루가 있어 더욱 아름답다. 거기서 만대루의 역할은 내부의 공간 질서 형성강학 영역의 독립성 서원영역과 외부 자연과를 매개하고 연결함으로써 조형 어휘의 풍부함을 갖게 하는 것이다. 비유하여 자연 풍광 그 자체가 7할 정도라면 만대루와 겹쳐진 자연풍경은 완전하게 느껴진다. 규범적 바탕에 지형 및 쓰임에 맞게 적절히 변화된 배치 구조를 갖춘 병산서원은 규범성과 변주의 조화로움과 자연풍광과의 어우러짐에 의해  한국전통 건축의 특질적 아름다움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김석환 
한재 터·울건축 대표. 1994년부터 터·울건축을 개설하여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삼육대, 광주대 건축과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1999년 건축문화의 해 초대작가 및 대한민국 건축대전, 대한민국 건축제 초대작가로 활동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일산신도시 K씨주택, 목마도서관 등이 있다. 저서로 <한국전통건축의 좋은느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