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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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신문
  • 승인 2014.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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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충남 서천

▲ 홍원항 횟집에서 소곡주를 마시다
나를 초대한 소곡주
전통주 가운데 네 번째로 좋아하는 게 소곡주다. 이강주 문배주 연엽주 소곡주 순이다. 전통주는 다 좋아하는 데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그렇단 얘기다.

7~8년 전 모 매체에 전통주에 대한 글을 연재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국내 전통주는 대부분 먹어봤다. 소곡주도 그때 처음 만났다.

일상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소곡주 대신 소주와 맥주 막걸리를 마시다보니 전통주는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된 게 사실이다.

그러다 소곡주의 고향인 충남 서천 한산에 갈 일이 생겼다. 소곡주가 그의 고향으로 나를 초대한 기분이다.

소곡주 앞에는 꼭 ‘한산’이라는 말이 붙는다. ‘한산 소곡주’가 고유명사처럼 쓰인다. 그냥 ‘소곡주’하는 것 보다 ‘한산 소곡주’라고 해야 그 술의 향과 맛이 더 깊어지는 것 같다.

해지는 홍원항 갯바위를 어슬렁거리며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 내는 세계는 공기처럼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카메라에 투영된 일상은 또 다른 질감으로 느껴진다. 일상과 나 사이에서 카메라가 프리즘 혹은 증폭기의 역할은 하는 것이다. 빛을 또 다른 빛으로 바꾸고 감동의 진폭을 늘리는 것이다.

 

카메라를 통해 변형된 일상은 있는 그대로의 그것보다 깊고 넓은 감흥의 진폭을 스스로 내포한다.

2014년 6월11일 지는 해와 그 바다를 담은 카메라를 목에 걸고 바다가 보이는 횟집으로 들어섰다.

상 위에 바다가 차려졌다. 그 바다를 옆에 두고 나를 초대한 소곡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못 만난 시간만큼 마셨다. 창밖은 완전하게 어두워졌다. 그도 비었고 나도 비워냈다.

 

▲ 춘장대 해변 앞 식당 김굴 해장국
해당화가 피어 있는 그 아침의 바닷가
숙소가 있는 춘장대 해변으로 자리를 옮겼다. 짐을 정리하고 바다로 나갔다. 불빛이 닿지 않는 바다는 검었다. 검은 바다에서 밝은 해변으로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옷자락을 붙잡고 흔든다.

우리는 검은 바다 앞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누구는 노래를 불렀고 누구는 춥다고 했다. 바람은 놀아달라고 떼를 쓰는 듯 더 세게 불어닥쳤다. 그렇게 춘장대의 밤을 지내고 아침을 맞이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해변을 걷는다. 해당화는 바닷가 길과 해변의 모래밭 사이에 울타리처럼 피었다. 해당화가 이 바다의 문패 같았다. 문패 옆 문 없는 문으로 누군가 들어간다. 바다는 멀리 물러나 있었다. 그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는 모래사장에 박힌 말뚝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그가 바다와 나눈 교감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돌아오는 그와 함께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에서 김굴해장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뚝배기 안에 김과 굴이 함께 끓는다. 새우젓으로 간을 한다. 옅은 옥빛 도는 뽀얀 국물이 바다 같다. 식탁에 놓인 한 그릇의 바다를 마신다. 오랜만에 만나 교감한 소곡주가 내 몸을 떠난다. 미련 없이 그를 보내며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 국립생태원 야외 습지
물고기와 나눈 인사
서천에는 국립생태원이 있다.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은 홈페이지를 통해 “자연에 대해 많이 알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기적을 이루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너무 엄청난 말로 사람들을 초대했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나를 돌아볼 겨를 없이 무턱대고 국립생태원 연못 앞에 섰다.

더운 공기 뜨거운 햇볕 흐르는 땀 축축하게 젖은 옷, 뭐 하나 편한 게 없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자연은 편한 게 아니라 불편한 것이다. 적어도 사람에게는… 그러니까 불편한 것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불편한 것을 사랑하라니! 편리와 속도가 선이 되는 세상의 잣대를 부러뜨리는 그의 한 마디가 울린다.

호수를 지나면 에코리움이 나온다. 그곳에서 세계5대 기후대 생태를 체험할 수 있단다. 열대관 사막관 지중해관 온대관 극지관 등을 자연스럽게 이어진 동선을 따라 움직이며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온 작은 물고기 시클리드 앞에서 20분 동안 앉아 있었다. 시클리드는 아프리카 말라위 호수에서 수천 년 전부터 살고 있는 물고기다. 화려한 색상의 작은 시클리드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 국립생태원 에코리움에 있는 악어
▲ 국립생태원 놀이시설
물고기는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방향을 바꾸고 때로는 정지하기도 한다. 아래 위를 오가며 자연스럽게 유영한다. 물고기는 눈동자를 움직인다. 내 눈과 마주치기도 한다. 나를 볼 수 있는 걸까? 볼 수는 없어도 나는 물고기가 나를 본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물고기의 표정도 보인다.
제한 된 시간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거기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을 것이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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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