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 고택 明齋
명재 고택 明齋
  • 나무신문
  • 승인 2014.06.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건축가 김석환의 한국전통건축탐방-한국의 名家 14/14

 

▲ 안채 대청과 마당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의 명당터
명재고택은 논산시청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6㎞ 정도 떨어져 있다. 논산은 광활한 호남평야가 금남 정맥과 맞닿는 경계지점에 있으며, 인근 주변은 산세가 낮아 평온한 느낌이지만 동북쪽으로 약 10㎞ 정도 거리에는 험준한 산세의 계룡산(845m)이 자리 잡아 대전과 영역을 가르고 있다. 이곳을 조선시대에는 ‘노성현’이라 했으며, 공자의 고향 옛 이름이 ‘노성’인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윤증 선생 고택의 터는 풍수상 천상의 옥녀가 거문고를 타고 있는 모습을 뜻하는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풍수에서는 “옥녀봉의 청룡백호 자락이지만 안산이 거문고 형상인 횡금사(橫琴砂) 모양”을 하고 있으면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이라 하는데, 이 지역의 주산인 노성산(348m)에서 좌측으로 뻗어 내리다 맺힌 현무봉이 둥그스름하고 아름다운 자태의 모습으로 우뚝 솟아있어 이 지방 사람들에게 옥녀봉으로 불린다.

명재고택을 들어서면 우측 초가집이 있는 쪽 지형이 앞쪽으로 더 뻗쳐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거문고를 탈 때 올려놓는 왼쪽 무릎에 해당하고 안채 안에는 옥녀를 상징하는 샘물이 있어서 옥녀탄금형의 형국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그리고 명당으로서 핵심은 이 집의 산실청에 해당하는 건너 방에 있어서 대대손손 번창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 

 

 

▲ 마당을 둘러치고 앉은 안채

특별한 건립 배경
명재고택은 명재 윤증(明齋 尹拯, 1629~1714)이 작고하기 5년 전 그를 흠모한 제자들이 십시일반 거출해 지은 집으로 역사적 인물로서의 윤증을 상징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끝내 이 집에서 살지 않았는데 평소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해 초가삼간 작은 집에서 하루 두 끼 식사만을 했다고 한다.

명재 윤증(明齋 尹拯, 1629~ 1714)은 소론의 영수로서 조선 정치사에 우뚝 자리매김 돼 있다. 그는 조정에서 18번이나 관직을 하사했으나 그 때마다 모두 거절해 한 번도 나가지 않았으나 정승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명재는 우암의 제자였으나 후에 그의 아버지 윤선거의 묘비명 사건이 발단이 돼 우암과 사제의 의를 끊고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이것이 이른바 노론과 소론으로 분파되는 계기가 된 ‘회니시비(懷尼是非)’ 사건으로, 송시열이 살던 곳이 회덕(懷德)이고 윤증이 살던 곳이 이성(尼城)이어서 그 첫 자를 따라 불리게 됐다. 그 내용인즉, 명재의 부친이 작고하자 윤증이 우암에게 묘비명을 부탁했는데 우암이 써준 글이 마음에 들지 않자 거듭 고쳐 써 줄 것을 청했으나 우암이 끝내 들어주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 꺽여 들어가게 된 안채 중문

기능적인 구성과 짜임새
명재고택은 조선 후기 양반 가옥 가운데 원형이 잘 보존돼 있는 집으로, 평면구성상 양반가옥의 규범과 가옥으로서의 기능적 측면이 잘 갖춰져 있다. 이 집의 안채는 ㄷ자 집으로 중앙 정청에 익랑 부분이 연결돼 있는데, 정청부분은 정면 7.5칸, 측면 2칸 규모이고 좌측 익랑은 정면 3칸, 측면 2칸, 우측 익랑은 정면 3칸, 측면 1.5칸으로 좌측보다 측면 폭이 반칸 정도 작게 돼 있다. 그리고 다락 벽장 등 다양한 수납공간을 두고 있다. 안방과 건넌방의 위계적 고려에 따라 좌우측 익랑의 폭을 다르게 한 것이 특징이다.

양반가옥은 안채와 사랑채를 분리했지만 하나의 가옥으로서 기능적 연계성도 중요하다. 그래서 연계성과 독립성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충족할 필요가 있지만 그 의미가 서로 상충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인데 명재고택은 여느 집보다 잘 해결돼 있다. 그 점은 안채와 사랑채의 연결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사랑채 뒷마당과 골방이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를 한 몸으로 연결하는 동시에 영역을 분리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중성적인 매개 공간들로 인해 안채와 사랑채를 가까운 거리로 직접 연결하면서 영역적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안주인이 안채에서 자연스럽게 바깥 사정을 알 수 있도록 시선이 고려돼 있다. 즉 대청마루에서 건넌방 창문 너머로 초가집을 보며 아랫사람 형편을 살필 수 있고, 안방에서 사랑채 바깥에 있는 뒷간을 바라보고 사랑채에 들른 손님들을 파악할 수 있으며, 대문 아래 띄워진 틈으로 들어오는 사람의 동태를 알 수 있도록 돼 있다.

안채 전면에는 서로 연결된 문간채와 사랑채가 一 자 형태로 놓여있어 튼 ㅁ자집 구조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우측 사랑채가 ㄴ자 형태로 전면에 돌출돼 있어서 앞에서 보면 독립적으로 보인다. 그 사랑채는 사랑방, 작은 사랑방, 안 사랑방으로 구성돼 아들과 손자까지 3대가 쓸 수 있게 돼 있으며, 어린 손자가 쓰는 방은 안채에서 돌봄이 쉽도록 안마당과 직접 연결돼 있고 아들이 쓰는 방은 손자방과 어른 방 사이에 놓여서 각각의 위치와 크기 및 연결 방식에 웃어른에 대한 예(禮)가 지켜지도록 세심한 고려가 돼 있다. 이처럼 이 집은 안채 사랑채라는 정형화된 공간 구성의 규범성을 넘어 깊이 있는 평면 계획 요소를 볼 수 있다. 또한 자유롭게 분리할 수 있는 창호에 의한 공간 구성의 가변성도 주목할 부분이다.

 

 

▲ 명재고택 전경

친환경적인 구조와 세심한 기능적 장치들
한옥은 흙과 나무 등 현지에서 생산되는 천연 재료의 사용이나 바람 길 등 자연 현상을 이용한 기후 조절 등 소위 오늘날 친환경 건축이 지녀야할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는데, 특히 공기의 순환과 풍속의 조절 등이 고려돼 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에는 일사에 데워진 안마당의 공기가 위로 상승하게 되고 대청 후면으로 열린 창문을 통해 산바람이 들어오면서 순환기류가 형성돼 집안이 시원해지게 된다. 또한 안채와 곳간채 사이의 간격이 평행하지 않고 앞쪽은 넓고 뒤쪽은 좁게 함으로써 남동풍이 부는 여름철에는 바람이 세게 불어 시원하게 하고 북서풍이 부는 겨울철에는 바람이 약하게 불도록 고려했다. 그 뿐 아니라 그 사이로 안방 측벽에 비치는 빛이 계절에 따라 다르게 돼 있는데 태양 고도가 높은 여름철에는 처마 그늘이 깊게 되고 고도가 낮은 겨울철에는 빛이 깊게 들어오도록 돼 있다.

 

 

▲ 건물 밖의 너른 장독대

품격 있는 고옥의 향기
명재고택은 좋은 입지와 어우러진 장소적 기품과 사대부 가옥으로서 신분적 위계와 일상생활에서 예의 규범을 실천하게 하는 공간 구조 등 격과 멋을 지니고 있다. 또한 안채, 사랑채의 영역을 구분하면서도 안채에서 사랑채의 손님과 아랫사람들의 일상 형편을 먼발치서 알 수 있게 하는 등 건축적 지혜가 녹아 있다. 명재고택은 그처럼 품격과 기능을 두루 갖춘 고옥의 향기를 발하고 있다.

 

▲ 연못너머로 펼쳐보이는 전경

 

김석환 
한재 터·울건축 대표. 1994년부터 터·울건축을 개설하여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삼육대, 광주대 건축과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1999년 건축문화의 해 초대작가 및 대한민국 건축대전, 대한민국 건축제 초대작가로 활동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일산신도시 K씨주택, 목마도서관 등이 있고, 저서로 <한국전통건축의 좋은느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