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꽃에서 날것의 향기가 난다.’ 피어라 꽃
‘모든 꽃에서 날것의 향기가 난다.’ 피어라 꽃
  • 나무신문
  • 승인 2014.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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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단상

회의 제왕. 목포 민어회

 
봄날 목포 어느 골목길 꽃그늘에서 마주친 나른한 황홀, 흩날리는 꽃잎이 아찔했다. 그날 저녁 또 한 번 아찔한 순간을 겪게 되니 목포에서 유명한 민어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목포의 여러 여행지를 돌아다니다보니 피곤하고 밥맛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좋아하지 않는 회가 상에 놓였던 거다. 소주를 먼저 마신다. 소주 한 잔에 피로가 싸악 가신다. 그리고 민어회 한 점을 입에 넣고 씹었다. ‘니가 그동안 이 맛을 못 봐서 그렇지 회 맛은 이런 거다!’ 라고 민어회가 말을 건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게 씹히면서 고소하고 달큼한 맛이 입안에 풍성하게 퍼진다. 씹을수록 고소하다. 계속 씹고 싶은데 회가 입안에서 스르륵 사라진다. 그리고 또 한 점, 또 한 점… 맛도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  민어는 여름 음식이다. 언젠가 서울 토박이회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삼복더위를 이겨내는 보양음식 중 최고로 쳤던 게 민어요리였다. 집으로 올라가는 골목길에서 민어를 처음 먹었던 목포 그 집에 전화를 했다. “요즘 민어 물이 좀 괜찮나요?” 
* 목포항에서 약 600m 거리에 민어거리가 있다. 민어거리 횟집 중 한 곳 영란회집 전남 목포시 만호동 1-73. 061-243-7311


날 것이 생각날 때, 소고기육회
 

3~4년 전 광장시장에서 1차, 2차 자리를 옮기며 술잔을 기울이던 날 3차 술자리에서 만난 안주가 소고기육회였다. 그때까지 육회를 먹어본 일이 없었고 웬만하면 육회는 안 먹고 살수도 있었지만 술 취한 김에 육회를 먹어보기로 했다. 광장시장육회골목에 들어서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육회집에 줄을 섰다. 시뻘건 생고기를 날로 먹기 위해 저렇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청춘남녀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육회는 아무 맛도 없었다. 생고기의 맛 보다는 육회에 얹은 참기름 맛이 전부였다. 입안에서 씹는 데도 육즙 보다는 참기름 향이 계속 강하게 남아 있었다. 무슨 맛이 느껴져야 맛이 있다 없다 말할 텐데 아무 맛 없는 그 어떤 것을 씹고 있는 느낌이니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라리 참기름을 그냥 마시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하나 느껴지는 게 있었으니 바로 시원한 기분이었다. 입안에서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고 식도를 타고 넘어갈 때도 시원했다. 술기운에 더워진 몸을 육회가 식혀주는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광장시장육회골목을 가끔 찾았다. 감기 기운으로 몸에 열이 날 때, 몸이 붓고 머릿속에 수증기가 꽉 찬 기분이 들 때, 일상이 나른하고 지겨울 때 등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육회가 떠오르곤 한다. 화르락 피어나는 꽃의 생기를 육회에서 느껴볼 일이다.
* 종로 광장시장에 소고기육회집 골목이 있음. *외양간 : 마포구 성산동 250-25. 02-334-7942.


섹시한 그 맛. 나주 홍어회

17년 전 인천항 부근 허름한 막걸리집, 세 명의 남자 앞에는 닷 되 들이 막걸리 주전자와 고약한 냄새가 나는 ‘홍어회’라는 안주가 놓여 있었다. 세 남자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 “한 번 먹어봐라”라는 말을 남긴 채 막걸리 한 잔을 쭈욱 들이켜더니 홍어회 두 점을 집어 입에 넣는다. 하도 맛있게 먹어서 나도 따라 했다가 혼쭐이 났다. ‘세상에 이런 걸 왜 돈 주고 사먹냐’는 생각이 번개처럼 들었다. 홍어회와의 첫 만남에서 나는 입천장이 까지는 썩 좋지 않은 경험을 했지만 주변에 홍어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면 어김없이 홍어집을 갔고 그럴 때마다 홍어에게 ‘쨉쨉 원투 스트레이트’를 얻어맞으면서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입에 섹시한 맛을 선물해준 홍어를 만나게 된다. 나주 영산포 홍어를 취재해야 했다. 음식의 보물창고 전라도에서 하필이면 내게 주어진 취재꺼리가 홍어라니 먹을 복 참 없다 생각했다. 그러나 영산포 홍어는 지금까지 먹어본 홍어와는 느낌이 달랐다. 홍어회 한 점 입에 넣고 씹는데 홍어 특유의 고약한 냄새는 잠깐, ‘화’한 맛과 들큼하고 구수한 맛이 맴돌 때 쯤 회는 입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꿈에서 아무리 달려가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던 사랑스런 아가씨의 하늘거리는 연분홍빛 원피스 뒷자락이 떠올랐다. 그리고 분홍빛 홍어회 한 점이 현실의 내 젓가락 사이에서 꽃처럼 피어 있었다.      * 홍어1번지 : 전남 나주시 영산동 254-1. 061-332-7444


익히면 닷 냥, 날로 먹으면 오백 냥. 수안보 꿩회
 

충북 충주 수안보는 내 고향에서 10km 거리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유명한 포수가 한 명 쯤은 있기 마련이었다. 고향에도 유명한 포수 아저씨가 있었는데 가끔 그분 손에 사냥한 꿩이 들려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나중에 커서 보니 고향과 수안보 일대가 꿩요리로 유명한 곳이었다. 꿩요리 애호가들의 말에 따르면 예나지금이나 꿩요리 가운데 으뜸은 꿩회다. 그들은 ‘꿩은 익혀 먹으면 닷 냥인데 회로 먹으면 오백 냥’이라는 말로 꿩회의 맛을 설파한다. 꿩요리 가운데 못 먹어본 게 꿩회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오백 냥 짜리 음식 놔두고 닷 냥짜리만 먹었다는 얘기다. 꿩요리 잘한다고 소문난 수안보의 식당을 찾았다. 이것저것 나오는 음식 가운데 큰 접시에 담긴 붉은빛 생살이 보인다. 꿩회가 드디어 나왔다. 붉은 꽃이 식탁에 피어난 것 같았다. 꽃 한 송이 들어 입에 물었다. 어떤 회에서도 느낄 수 없는 맛이었다. 날짐승 특유의 향이 살짝 지나가더니 이내 부드러운 맛이 혀를 감싼다. 씹을 것도 없이 우물우물 하다보면 사라진다.   

* 대장군식당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송계로 105. 043-846-1757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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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