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고성군 삼산면 장치리 삼봉저수지 아래에 가면 높이 20m 둘레 5m 정도 크기의 팽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다. 이 나무는 수령이 약 300년 정도 되는 데 저수지 둑 중간 쯤 올라서서 나무를 내려다보면 나무가 마을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그 느낌대로 이 나무는 마을 당산목이다. 매년 정월 14일 저녁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동제를 지냈다. 팽나무 나뭇잎이 무성하면 풍년이 들고 그렇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고성의 일반적인 여행지 보다 이 나무 한 그루에 마음이 간다. 나무 밑으로 가서 올려 보면 구불거리는 가지가 기괴하게 꿈틀대는 모양이다. 신령스러운 기운이 느껴진다.
나무를 뒤로하고 고성 읍내로 향한다. 고성의 한자 이름은 ‘固城’으로 풀어 쓰면 ‘굳은 성-단단한 성곽’이다. ‘성’의 우리말 뜻 가운데 ‘재’라는 의미도 있다. ‘재’의 사투리 가운데 ‘재미’ 또는 ‘자미’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고성의 옛 이름이 ‘고자미동국’이다. ‘고재미’, ‘고자국’, ‘고차국’ 등의 이름도 있다. 지금도 고성에 20여 개의 성곽이 남아 있다.
고성 박물관에 가면 고성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고성의 역사를 훑어 본 뒤 박물관 바로 옆에 있는 송학동 고분군으로 발길을 옮긴다.
고성 송학동 고분군은 사적 제119호다. 고성읍 북쪽의 무기산 일대에 위치한 가야시대 고분군으로 7기 가량의 고분이 밀집되어 있다.
동아대학교박물관이 1999년부터 발굴조사를 했다. 모든 고분의 봉토는 인공으로 다져 쌓아 올렸다. 언덕 위를 평평하게 고른 뒤 한 켜 씩 다져가며 쌓아 올린 판축의 기술이 확인됐다. 토기류와 금동귀걸이, 마구류, 유리구슬 등 모두 천여 점의 유물을 찾았다.
유물의 특징을 통해 이 고분군은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조성한 소가야 중심의 고분으로 소가야의 지배자 집단 또는 왕릉급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이로써 고분군이 자리한 고성군은 소가야의 옛 터로 알려졌다.
고분군이 마을 바로 뒤에 있다. 마을 뒷동산이 고분인 셈이다. 문화관광해설사가 고분 아래 마을에 살았었는데 어릴 때에는 마을 친구들과 함께 뒷동산 같은 고분에 올라와 해 지도록 놀았다고 한다.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많이 했는데 함께 놀러온 개가 따라와서 술래에게 들키기 일쑤였단다.
고분 산책로를 따라 여기저기 걷다가 지석묘를 만났다. 완전한 형태의 지석묘가 아니다. 지석묘의 받침돌은 없고 천장돌만 남아 있었다.
이 지석묘는 1997년 고성군 삼산면 두모마을 620번지 논에 있었으나 두모마을 경지정리작업으로 인해 임시로 고성읍 덕선리로 옮겼다가 2005년 이곳 고성 송학동 고분군으로 옮겼다.
이 지석묘가 다른 지석묘와 다른 것은 가로 세로 각각 2.5㎝ 정도 되는 홈이 있다는 것이다. 그 중 일곱 개의 성혈은 북두칠성을 나타내는 별자리인 듯하다.
장치리 당산나무에 이어 고성을 고성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송학동 고분들이 하늘과 맞닿아 만들어 내는 그 곡선이다. 고분군 산책로를 따라 여기저기 걷다보면 인상적인 장면 한 컷이 마음에 들어온다. 그곳에 서서 그 장면을 즐기면 된다.
아름다운 풍경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이 ‘감동’아니겠는가! 감동 어린 마음으로 말뚝이를 보러간다.
고성은 ‘고성오광대’놀이의 본거지다. 예로부터 탈을 쓰고 한 판 놀음을 즐기던 곳이 고성이다.
섣달 그믐이나 정월 대보름 등 특정한 시기에 잡귀를 몰아내기 위해서 말뚝이 같은 무서운 탈을 쓰고 한 판 놀았던 거다.
사람 사는 사회에도 잡귀 같은 것들이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나 보다. 백성을 착취하고 괴롭히던 못된 양반 들은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잡귀 잡신 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을 것이다.
광대놀이에서 양반은 부정적이고 적대적으로 묘사되며 잡귀잡신처럼 몰아내야 할 대상으로 표현한다. 탈의 생김새도 언청이, 삐뚜르미, 혹탈, 조리중 등 한결같이 추한 모습을 하고 있다.
잡귀잡신 같은 못된 양반들을 혼내주고 쫓아내는 게 말뚝이다. 고성을 고성답게 만드는 세 번째 것이 고성오광대 말뚝이다. 고성탈박물관에 가면 말뚝이를 비롯해서 540여 점의 탈을 볼 수 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