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마을과 솔섬 그리고 도다리쑥국
옛 마을과 솔섬 그리고 도다리쑥국
  • 나무신문
  • 승인 2014.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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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경남 고성 학동마을

▲ 하일면 솔섬 ⓒ장태동
돌담 같지 않은 돌담이 옛 마을에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거기서 그런 돌이 많이 나서다. 또 그 마을 앞에는 바다가 있는데 그 바다에 섬 같지 않은 아주 작은 섬이 있다. 거기에 그 섬이 있는 이유는 바다가 있어서다.

 

도다리쑥국
서울남부터미널에서 고성으로 가는 새벽 버스에 사람이 붐빈다. 알고 보니 고성은 경유지였고 종착지가 통영이다. 예상대로 고성에서 나 혼자 내렸다. 나를 내려 준 버스는 뒤도 안 돌아보고 잽싸게 통영으로 향했다.

낯선 땅에 혼자 떨어진 나는 식당을 찾아 돌아다녔다.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맛집 정보를 알아봤을 텐데 아직도 스마트하지 않는 전화를 쓰다 보니 식당이 어디 있는 지 직접 걸어다니면서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덕분에 고성 읍내 웬만한 길을 다 훑고 다녔다.

고성은 일반 가정집 같은 분위기가 나는 식당에서 한정식을 파는 곳이 많다. 그런데 한정식은 1인분은 안 판다. 중국집이 몇 곳 보였으나 고성에서 먹는 첫 끼니가 짜장면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길 저길 돌아다니던 발걸음은 결국 고성시장에서 멈추었다. 바닷가 마을이어서 그런지 수산물이 많았다. 그런데 가게마다 ‘도다리쑥국’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여름 같이 더운 늦봄까지 도다리쑥국을 파는구나!

▲ 고성시장에서 파는 도다리쑥국 ⓒ장태동
봄 도다리쑥국은 유명세만 알았지 먹어보지 못했다. 비싼 가격을 감내하고서라도 먹고 싶었다. 그런데 한 식당에서 쑥이 억세져서 도다리쑥국을 안 판단다. 여린 쑥이라야 차지고 담백한 도다리와 잘 어울린단다.

쑥이 억세건 부드럽건 식당에서는 팔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참 솔직하게 장사한다는 생각을 했다.

돌아서서 다른 집으로 들어갔다. 도다리쑥국이 나왔다. 쑥 향이 강하게 풍겼다. 쑥버무리 쑥국 쑥떡 등 쑥으로 만든 다른 음식에서 풍기는 쑥의 향기 보다 강했다. 그 향은 향기다. 냄새가 아닌 향기 그 자체다. 그윽하게 진한 쑥 향을 한 술 떠서 입으로 넣었다.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도다리쑥국을 향기로 먼저 먹었다.

도다리쑥국은 입안에서도 그 향이 퍼졌다. 향기로 먹는 셈이다. 숟가락에 담긴 쑥 향을 넘기고 도다리를 씹는다. 흰 살이 차지고 담백하다. 씹는 맛이 있다.

도다리쑥국은 쑥의 향기와 도다리의 차지고 담백한 맛으로 완성되어 늦은 봄날 고성을 여행하는 여행자의 하루를 즐겁게 해주었다.

 

▲ 학동마을(학림리) 옛 돌담길. 이 지역에서 많이 나는 넓고 편편한 돌로 담장을 쌓았다 ⓒ장태동
학동마을 옛 담장길
‘도다리쑥국’ 다시 봄이 되면 꼭 찾아 먹을 것 같다. 행복한 식탁으로 시작한 고성 여행에서 도착한 곳은 학동마을이다.
이 마을은 돌담길이 유명하다는데 옛날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그런 돌담이 아니다. 넓적하고 큰 돌로 두껍고 높게 담을 쌓았다. 동글납작한 돌을 쌓고 황토를 발라 쌓은 낮고 아담한 담이 아니라 성벽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마을 자체는 옛 마을 분위기가 난다. 낯선 돌담이지만 돌담이 만들어 놓은 골목길은 옛 정취가 풍긴다.

학동마을 옛 담장은 수태산 일원에서 채취한 2~3cm 두께의 납작돌과 황토로 쌓아 만들었다. 0.4m~1m 높이까지 큰 납작돌을 쌓고, 그 위에 작은 납작돌과 진흙을 쌓아 올린 뒤 맨 위에 큰 판석을 올려 만들었다. 국가등록문화재 제258호다.

돌담길을 따라 가다보면 크고 오래된 기와집이 보인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최균의 현손 최형태가 지은 집이다. 안채는 1908년 경, 사랑채는 1917년에 지은 것이다. 높고 낮은 축대를 모두 점판암계 판석과 점토를 사용하여 쌓은 게 특징이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78호다.

마을 가운데 커다란 정자나무가 보인다. 나무 아래 조그만 또랑이 흐르고 또랑 옆으로 집들이 들어섰다. 또랑 옆 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서비정이 나온다.

서비정은 서비 최우순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일제에 의해 강제적으로 체결된 을사늑약 이후 동쪽에 있는 일본이 싫어서 호를 청사에서 서비(서쪽사립문)로 고치고 의병을 일으켰다. 강압적이고 불평등한 일제의 한일합방 이후 일제는 명망 있는 사람들에게 은사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주어 회유하려했는데 최우순 선생이 거부하자 일제는 헌병을 동원하여 선생을 연행하려 했다. 이에 선생은 독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어 순절했다.

 

▲ 학동마을(학림리)에 있는 서비정 ⓒ장태동
아주 작은 섬, 솔섬
옛날 마을에서는 돌담도 오래된 집들도 다 여행자에게 말을 건다. 옛 마을의 이야기를 듣고 마을에서 약 3km 떨어진 곳에 있는 솔섬으로 향했다.
솔섬은 도로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섬이다. 육지와 연결된 듯 가까이 있어 섬 같지도 않다. 또 섬이 아주 작아 섬 같지도 않다.

작은 섬 둘레에 데크길을 만들었고 산책로도 있다. 길 따라 진달래가 피었다. 산책로를 따라 섬을 도는 데 코스에 따라 30분~1시간 정도면 된다.

바닷가에 작은 캠핑장도 있다. 물이 빠질 때면 캠핑장 바로 앞 갯바위에 오를 수 있다. 갯바위에 올라 솔섬을 한 눈에 바라본다. 오후의 햇살이 솔섬을 그윽하게 비춘다. 푸른 솔섬에서 도다리쑥국의 향기가 나는 듯 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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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