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 따라 걷는 4km 꽃길, 역사길
무심천 따라 걷는 4km 꽃길, 역사길
  • 나무신문
  • 승인 2014.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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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충북 청주 무심천

▲ 충북 청주 무심천 벚꽃과 억새 ⓒ장태동
열흘이나 서둘러 온 꽃소식에 꽃구경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마음이 더 분주하다. 벌써 꽃들이 만개했다는 소식을 접한 지 나흘이나 지나서 청주에 도착했다. 예전 같으면 한창 꽃폈을 무심천 뚝방길에 꽃은 지고있었고 버드나무 신록이 낭창거리고 있었다.  

 

▲ 청주 용화사 ⓒ장태동
무심천 걷기코스 출발지, 용화사
청주대교에서 약 6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용화사가 있다. 절의 역사는 1902년부터 시작된다. 보통 유명한 절은 천년 역사가 기본인데 그에 비해 이 절은 이제 고작 100년 좀 넘었다. 하지만 용화사는 절의 역사에 비해 창건 설화가 그럴싸하다.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계비였던 엄비가 꿈을 꾼다. 일곱 부처가 나타나 집을 지어달라고 하는 내용의 꿈을 꾼 엄비는 1901년 사람을 보내 꿈에 본 그곳을 조사하게 했다. 그곳이 바로 청주 무심천변이었고 그곳에 불상들이 있었다.

엄비는 이듬해에 불상을 모시기 위해 절을 짓고 이름을 용화사라고 했다. 당시에 무심천변에서 수습한 불상들은 현재 삼불전 건물 안에 있다.

약사여래불, 미륵불, 석가모니불 등 일곱 불상은 고려시대 것으로 보물 제 985호로 지정됐다.

거대한 불상이 절집 안에 서 있는 그 자체도 보기 드문 풍경이다. 게다가 꿈에 본 부처의 이야기와 실제 불상을 찾은 것까지, 벚꽃 진 자리의 허전함을 달래기에 적어도 이정도의 이야기가 있어야 할 것 아니겠는가!

꽃잔디가 봄처럼 번지는 절 마당을 나오면 바로 무심천이다. 이른 더위에 예년보다 일찍 꽃이 피고 또 그만큼 일찍 졌다. 그 자리에 낭창거리는 능수버들 신록에서 연둣빛 물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풍경이 자리잡고 있었다. 

 

▲ 충북 청주 무심천 벚꽃 ⓒ장태동
연둣빛 물방울 떨어질 것 같은 신록의 길
용화사에서 청주대교까지 약 600m 구간은 낭창거리는 버드나무 연둣빛 신록이 빛나는 구간이다.

무심천 뚝방 비탈면에 푸른 풀이 덮였다. 뚝방 위 능수버들도 연둣빛 물방울을 잔뜩 머금었다.

각 지방마다 풀향기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것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때가 바로 신록 돋을 때다. 청주 무심천 뚝방의 풀냄새와 향교 뒷산 풀밭의 풀냄새가 ‘풀’이라는 단어를 가장 ‘풀’ 같이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런 풀향기를 맡으며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능수버들가지 아래로 걷는다. 능수버들 또한 연둣빛 풀밭과 함께 가장 아름답게 연둣빛 물방울을 머금고 신록을 만드는 식물 중 하나다. 풀밭의 연둣빛 물방울은 발을 물들이고 머리 위에서 흔들리는 능수버들 신록은 머리부터 물들인다. 그러니까 온몸이 연둣빛으로 물드는 거다. 

청주대교를 지나면 사람만 다닐 수 있는 서문교가 나온다. 그 다리 중간에 서면 무심천 풍경을 잘 볼 수 있다. 

그 풍경 안에도 무심천에 놓인 낮은 다리들과 물가의 능수버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낮은 다리를 건너는 자전거 탄 사람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신록 물 오른 능수버들 한 그루가 그 다리 앞에 있으니 말이다.

 

▲ 청주 무심천 벚꽃 그늘 ⓒ장태동
푸른 풀밭 위에 펼쳐지는 벚꽃과 개나리 꽃길
무심천 둔치로 내려간다. 뚝방길을 걷는 것도 좋지만 무심천 둔치 억새길을 걸으며 억새와 벚꽃, 개나리가 어우러지는 풍경도 즐겨볼만 하다. 

청주 무심천 벚나무는 단아하고 고풍스럽다. 벚꽃을 피우는 나무도 종이 다른가 보다. 나무의 크기와 가지 뻗는 형태, 꽃의 모양과 빛깔 등이 다르다.

청주의 벚나무는 키가 작고 밑동이 굵다. 가지는 비틀려 있으면서도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단아한 맵시가 풍긴다. 그런 모습에서 세월을 읽을 수 있다. 오래된 봄이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나무에서 흰빛으로 반짝이는 꽃이 피어나는 거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샛노란 개나리가 피어 조화를 이룬다. 개나리와 벚나무가 뿌리 내린 땅 위에는 푸른 풀의 향기가 바람에 흩날린다.

▲ 무심천 ⓒ장태동
반환점인 청남교에 다다르면 다리를 건너 좌회전해서 무심천 뚝방길을 걷는다. 올 때는 물 건너편 뚝방길을 걸었으니 갈 때는 반대쪽 뚝방길을 걷는 것이다.

풍경은 다 같아 보이지만 이쪽에서 보는 무심천의 느낌은 또 달랐다. 사람도 왼쪽과 오른쪽 얼굴이 다르듯이 풍경도 마찬가지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왔던 길로 되돌아갔으면 놓쳤을 풍경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올 때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갈 때 느낄 수 있었다. 사람 사는 일도 그와 같다는 생각이 일찍 펴서 일찍 떨어지는 꽃잎을 밟으며 걷는 무심천 뚝방길 위에서 들었다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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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