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하루 여의도 일기
어느 봄날 하루 여의도 일기
  • 나무신문
  • 승인 2014.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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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서울 여의도

▲ 샛강 버드나무숲 ⓒ장태동
여의도,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느끼지 못한 풍경이 숨어 있었다. 계절 마다, 보는 장소 마다, 함께 하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 다르니 여의도도 다시 볼 일이다.

 

2014년 4월2일, 10년만의 꽃놀이
이른바 ‘전국 꽃지도’를 그릴 만큼 꽃놀이 참 많이 다녔는데 정작 여의도 벚꽃은 고작해야 여의나루 한강 둔치 풀밭에 돗자리 깔고 앉아 본 게 전부였다. 생각해보니 내가 살고 있는 서울, 그것도 버스 한 번 타고 십여 분이면 도착할 그곳 꽃 핀 자리까지 가는 시간이 10여 년이나 걸린 셈이다.

출발지점은 여의나루였다. 이상고온 현상으로 여의도 벚꽃이 평년 보다 십일 정도 일찍 폈다. 만개를 지나 벌써 꽃잎이 흩날린다. 바람이 불거나 큰 버스가 지나간 뒤 진공의 공간을 메우기 위해 따라오는 바람에 벚꽃이 눈송이처럼 날리는 거다. 그럴 때 마다 사람들은 ‘이야! 와~’하며 저절로 나오는 탄성을 숨기지 못한다.

마포대교 방향으로 걷는다. 사람들이 꽃송이처럼 많다. 앞뒤로 그러니 아마도 여의도 전체 둘레에 벚꽃 그늘 아래 사람들이 띠를 이루고 있을 것 같다.

여의도 전체 둘레길은 대략 7km 정도 된다. 대부분 구간에 벚나무가 있다.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마포대교를 지나 서강대교로 향한다. 여의나루에서 서강대교까지 약 1km 거리다.

1km 정도 걸으면 꽃에도 질릴 줄 알았는데 보면 볼수록 좋다. 주변에 다른 풍경 없이 도심의 반복되는 배경을 보며 걷는 길인데도 마음이 들뜨고 꽃잎처럼 가벼워진다.

벚꽃터널 1km, 꽃에 묻혀 걸어봤으니 이제 밖에서 꽃길을 볼 차례다. 서강대교 남단에서 북단 방향으로 걷는다. 사람에 밀려가는 꽃길에서 벗어나니 한갓지다.

어느 정도 가다 뒤를 돌아본다. 벚꽃길이 하얀 띠를 이루었다. 그 아래 노란 개나리가 피어난 곳도 보인다. 국회의사당 돔 지붕이 벚꽃길 위로 솟았다. 그렇게 한 장면 여의도의 봄 풍경이 마음에 남는다.

다시 벚꽃터널 아래로 돌아간다. 그리고 사람에 밀려 걷다가 쉬고 쉬면서 사진을 찍는다. 올해 벚꽃은 맑고 밝다. 아내가 생각났다. 다른 일로 나중에 연락하겠다던 아내의 연락이 아직 없다.

아내의 또 다른 이름은 ‘오래된 애인’아니겠는가? 먹고 사는 일에 지치고 삶의 굴레에 치여 다투고 외면했던 시간 동안 잊고 있었던 그 이름, 애인. 애인이라는 이름으로 좋았던 시절 보다 눈앞의 빚과 세금 고지서가 매달 가슴을 짓눌렀을 아내의 시간이 화려한 봄날 이토록 맑게 피어난 벚꽃 아래에서 생각난 것이다.

전화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또 걷는다. 여의나루부터 4km 정도 거리에 샛강다리가 있다. 샛강다리에 도착할 무렵 전화벨이 울린다.

 

▲ 샛강 다리 ⓒ장태동
샛강, 여의도의 숨겨진 풍경
여의도는 한강에 떠 있는 섬이다. 큰 물인 한강이 흐르고 영등포쪽에 인접한 곳에는 작은 물줄기인 샛강이 흐른다.

샛강을 건너는 다리는 여의교, 여의2교, 서울교 등이다. 그동안은 차를 타고 건너다녔는데 오늘은 걸어서 이 다리들을 걸어본다. 차를 타고 지나치며 볼 때는 잘 몰랐는데 걸으며 보니 샛강이 품고 있는 풍경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샛강은 수양버들로 아름답다. 신록이 물드는 숲 전체가 낭창거리는 수양버들 가지다. 바람이 부는 대로 나부끼는 저 연둣빛 치맛자락! 숲 전체가 일렁인다.

▲ 여의도 둘레를 따라 벚꽃이 핀다. 다 같은 벚나무지만 나무 크기와 주변 풍경에 따라 벚꽃터널의 분위기가 다르다 ⓒ장태동
샛강 풍경의 백미는 사람만 다닐 수 있는 샛강다리에서 보는 풍경이다. 벚나무의 정수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샛강다리에 서면 샛강을 따라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벚꽃길의 하얀 띠가 눈 아래 보인다.

그곳에서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샛강다리 아래 수양버들 춤추는 흙길 옆 의자 앉아 아내가 사온 김밥과 음료수를 먹었다. 그러고 보니 점심도 거른 채 꽃길을 걷고 있었던 거다.
지금까지 혼자 걸었지만 지금부터 둘이 걷는다. 아내가 아닌 애인과 함께 걷는다. 생활에 찌든 주름 위로 꽃처럼 맑은 웃음이 번진다.   

 

▲ 샛강이 흐르는 물가에 버드나무숲이 있고 숲길을 걷는다 ⓒ장태동
10년 같은 하루
신길역에서 샛강다리로 접어들어서 오른쪽 아래를 보면 차가 다니는 길 오른쪽에 바위 몇 개와 죽은 나무가 보인다. ‘귀신바위와 느티나무’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샛강 물길 가운데 이곳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었다고 한다. 바위가 절벽처럼 서 있고 그 아래 물도 깊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찾았는데 간혹 사람들이 그 절벽에서 떨어져서 죽기도 했단다. 귀신이 물속에서 자꾸 사람들을 부른다고 해서 ‘귀신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조대왕의 왕비가 이곳을 지나다가 경치가 너무 수려해서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때 심은 느티나무인지는 몰라도 오래돼 보이는 고사목 한그루가 밑동만 남아 있다.

우리는 애인처럼 바위 하나 죽은 나무 하나에 얽힌 이야기는 물론 오후의 햇볕, 그 햇볕에 반짝이는 꽃잎, 얼굴을 스치며 머리카락을 날리는 바람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소곤거렸다.

둘이 걸었던 여의도 벚꽃길, 그 아래에서 소곤댔던 이야기, 깔깔거리며 웃던 오늘 하루가 있어 지난 10년이 빛나기를 기원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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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