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2일, 10년만의 꽃놀이
이른바 ‘전국 꽃지도’를 그릴 만큼 꽃놀이 참 많이 다녔는데 정작 여의도 벚꽃은 고작해야 여의나루 한강 둔치 풀밭에 돗자리 깔고 앉아 본 게 전부였다. 생각해보니 내가 살고 있는 서울, 그것도 버스 한 번 타고 십여 분이면 도착할 그곳 꽃 핀 자리까지 가는 시간이 10여 년이나 걸린 셈이다.
출발지점은 여의나루였다. 이상고온 현상으로 여의도 벚꽃이 평년 보다 십일 정도 일찍 폈다. 만개를 지나 벌써 꽃잎이 흩날린다. 바람이 불거나 큰 버스가 지나간 뒤 진공의 공간을 메우기 위해 따라오는 바람에 벚꽃이 눈송이처럼 날리는 거다. 그럴 때 마다 사람들은 ‘이야! 와~’하며 저절로 나오는 탄성을 숨기지 못한다.
마포대교 방향으로 걷는다. 사람들이 꽃송이처럼 많다. 앞뒤로 그러니 아마도 여의도 전체 둘레에 벚꽃 그늘 아래 사람들이 띠를 이루고 있을 것 같다.
여의도 전체 둘레길은 대략 7km 정도 된다. 대부분 구간에 벚나무가 있다.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마포대교를 지나 서강대교로 향한다. 여의나루에서 서강대교까지 약 1km 거리다.
1km 정도 걸으면 꽃에도 질릴 줄 알았는데 보면 볼수록 좋다. 주변에 다른 풍경 없이 도심의 반복되는 배경을 보며 걷는 길인데도 마음이 들뜨고 꽃잎처럼 가벼워진다.
벚꽃터널 1km, 꽃에 묻혀 걸어봤으니 이제 밖에서 꽃길을 볼 차례다. 서강대교 남단에서 북단 방향으로 걷는다. 사람에 밀려가는 꽃길에서 벗어나니 한갓지다.
어느 정도 가다 뒤를 돌아본다. 벚꽃길이 하얀 띠를 이루었다. 그 아래 노란 개나리가 피어난 곳도 보인다. 국회의사당 돔 지붕이 벚꽃길 위로 솟았다. 그렇게 한 장면 여의도의 봄 풍경이 마음에 남는다.
다시 벚꽃터널 아래로 돌아간다. 그리고 사람에 밀려 걷다가 쉬고 쉬면서 사진을 찍는다. 올해 벚꽃은 맑고 밝다. 아내가 생각났다. 다른 일로 나중에 연락하겠다던 아내의 연락이 아직 없다.
아내의 또 다른 이름은 ‘오래된 애인’아니겠는가? 먹고 사는 일에 지치고 삶의 굴레에 치여 다투고 외면했던 시간 동안 잊고 있었던 그 이름, 애인. 애인이라는 이름으로 좋았던 시절 보다 눈앞의 빚과 세금 고지서가 매달 가슴을 짓눌렀을 아내의 시간이 화려한 봄날 이토록 맑게 피어난 벚꽃 아래에서 생각난 것이다.
전화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또 걷는다. 여의나루부터 4km 정도 거리에 샛강다리가 있다. 샛강다리에 도착할 무렵 전화벨이 울린다.
여의도는 한강에 떠 있는 섬이다. 큰 물인 한강이 흐르고 영등포쪽에 인접한 곳에는 작은 물줄기인 샛강이 흐른다.
샛강을 건너는 다리는 여의교, 여의2교, 서울교 등이다. 그동안은 차를 타고 건너다녔는데 오늘은 걸어서 이 다리들을 걸어본다. 차를 타고 지나치며 볼 때는 잘 몰랐는데 걸으며 보니 샛강이 품고 있는 풍경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샛강은 수양버들로 아름답다. 신록이 물드는 숲 전체가 낭창거리는 수양버들 가지다. 바람이 부는 대로 나부끼는 저 연둣빛 치맛자락! 숲 전체가 일렁인다.
그곳에서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샛강다리 아래 수양버들 춤추는 흙길 옆 의자 앉아 아내가 사온 김밥과 음료수를 먹었다. 그러고 보니 점심도 거른 채 꽃길을 걷고 있었던 거다.
지금까지 혼자 걸었지만 지금부터 둘이 걷는다. 아내가 아닌 애인과 함께 걷는다. 생활에 찌든 주름 위로 꽃처럼 맑은 웃음이 번진다.
신길역에서 샛강다리로 접어들어서 오른쪽 아래를 보면 차가 다니는 길 오른쪽에 바위 몇 개와 죽은 나무가 보인다. ‘귀신바위와 느티나무’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샛강 물길 가운데 이곳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었다고 한다. 바위가 절벽처럼 서 있고 그 아래 물도 깊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찾았는데 간혹 사람들이 그 절벽에서 떨어져서 죽기도 했단다. 귀신이 물속에서 자꾸 사람들을 부른다고 해서 ‘귀신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조대왕의 왕비가 이곳을 지나다가 경치가 너무 수려해서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때 심은 느티나무인지는 몰라도 오래돼 보이는 고사목 한그루가 밑동만 남아 있다.
우리는 애인처럼 바위 하나 죽은 나무 하나에 얽힌 이야기는 물론 오후의 햇볕, 그 햇볕에 반짝이는 꽃잎, 얼굴을 스치며 머리카락을 날리는 바람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소곤거렸다.
둘이 걸었던 여의도 벚꽃길, 그 아래에서 소곤댔던 이야기, 깔깔거리며 웃던 오늘 하루가 있어 지난 10년이 빛나기를 기원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