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암사와 영평사
비암사와 영평사
  • 나무신문
  • 승인 2014.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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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세종시

▲ 비암사
뒷동산 같은 정겨운 산의 품에 들어앉은 아담한 절, 비암사. 아미타대불이 바라보는 평온한 풍경에 마음도 편안해지는 곳, 영평사. 세종시에 숨겨진 두 절을 돌아본다. 

 

꽃 피는 봄이 오면
먹구름이 낮게 떠서 세상은 컴컴하지 함박눈은 펑펑 내리지 방바닥은 따듯하지… 이런 날은 나른한 육신과 정신이 방바닥에 딱 달라붙는다. 계란 노른자가 깨져 퍼지는 느낌으로 녹아 흐르는 몸과 마음을 추슬러 길로 나선다. 

일기예보도 세밀해져 동네예보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동네마다 일기가 다르다는 얘기인데… 눈이 오고 그치고 하늘이 개는 게 동네마다 다르고 시간대 별로 또 다르니 어떤 시간에 어디에 가 있느냐에 따라 여행의 맛도 달라진다.

한 10년 전쯤일까? 유채꽃 복사꽃 배꽃이 내가 한 눈에 볼 수 있는 시야 안에서 한 무리로 일렁이는 산천을 본 일이 있었다. 개천가 유채꽃이 노란 띠로 산 아래 밭을 감싸고 있었으며 밭에는 배꽃이 희게 빛나고 산비탈 복사꽃은 붉고도 희게 반짝였다. 고복저수지로 가는 길이 그랬었다.

눈 쌓인 산과 들을 바라보고 아득한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다가도 금세 즉물적인 봄 생각이 간절해진다. 꽃 피는 봄이 오면 이곳에 피어날 유채꽃 복사꽃 배꽃의 봄을 기대해본다.
저수지는 얼었고 그 위에 눈이 쌓였다. 10년 전 꽃 피는 봄날 이곳 어디쯤에서 새우매운탕을 먹고 감탄한 적이 있었는데 그 집이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저수지 주변이 깔끔해 졌다. 저수지 둘레길을 따라 달리는 데 새우매운탕을 팔던 집과 같은 이름의 간판이 보인다. 옛날 낡은 집은 사라지고 다른 곳에 새로 건물을 지어 이사했다.

도가네식당, 새우매운탕과 메기매운탕 전문이다. 메뉴가 그 두 개 밖에 없다. 예전에 그 맛일까? 먹어볼까? 하다가 주인아줌마에게 인사만 하고 나왔다. 꽃 피는 봄날 꽃구경하며 먹어야 10년 전 꽃 피는 봄날 그 감흥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겠다 싶었다.  

 

▲ 비암사 보호수 810년 된 느티나무
810살 느티나무가 있는 비암사
동네 뒷산 같이 정겨운 산의 품에 안긴 아담한 절, 비암사는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비암사길 137(전의면 다방리 4)에 있다.

비암사로 가는 눈 쌓인 길을 조심스럽게 달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화장실로 가는 데 절 아래 마을에서 곡소리가 들린다. 누가 방금 세상을 떠났나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덮힌 적막한 마을이었는데 곡소리가 마을을 떠나 절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낯선 마을에서 들리는 곡소리에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화장실 뒤로 길이 났다. 산으로 올라가는 계단길을 따라 올라가보니 절이 한 눈에 들어온다. 숨겨진 조망 포인트다. 곡소리는 여전히 나를 따라왔고 나는 그 곡소리를 들으며 그곳에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다시 절로 내려가 절 마당으로 올라서는 데 계단 옆에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810년 된 느티나무다. 높이 15m 둘레 7.5m의 나무가 절로 오르는 계단 옆에 문지기처럼 서 있으면서 오고가는 사람들을 반긴다.

극락보전과 대웅전을 돌아보고 극락보전과 대웅전 사이 계단으로 올라 산신각 앞에 서서 풍경을 감상한다.

비암사는 2000여 년 전 삼한시대의 절이라고 하지만 정확하지 않다. 통일신라 말기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조선시대의 기록에 비암사라는 이름이 나온다.

▲ 비암사3층석탑
삼층석탑은 석가모니의 사리나 유품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1960년 3층 석탑 꼭대기에서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이 발견되어 국보 106호로 지정됐다. 1657년에 제작된 영산회 괘불탱화는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됐다.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은 유형문화재 제13호다.

거대한 느티나무의 배웅을 받으며 절을 나와 돌아가는 길에 올 때는 보지 못했던 ‘도깨비로로 시작지점’을 알리는 안내판을 보았다. 차의 기어를 중립에 놓고 가만히 있으면 오르막길처럼 보이는 길로 차가 올라가는 것이다.

 

▲ 비암사 입구에 있는 도깨비도로
아미타대불의 시선
남쪽으로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산학리 441 번지, 영평사다. 영평사는 1987년에 건립한 사찰이다. 이 절이 짧은 기간에 비해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은 가을에 피어나는 구절초꽃 때문이다. 가을이면 절 주변에 새하얀 구절초꽃이 피어 장관을 이룬다. 구절초꽃 필 때면 구절초축제도 열려 사람들이 몰려든다.

▲ 영평사
그렇게 알려진 영평사지만 꽃 다 진 뒤 앙상한 겨울에 절을 보고 싶었다. 언젠가 연극이 다 끝난 뒤 빈 객석을 바라보며 텅 빈 무대에 서서 엉엉 우는 배우를 본 적이 있다. 그 장면이 연극 보다 더 크게 내 마음을 울렸다.

그 배우가 왜 울었는지 알지 못했고 묻지 않았다. 그의 울음을 보고 내가 또 다른 무엇을 느꼈듯이 그 또한 스스로 그랬을 것이다.

절에 앙상한 겨울이 깃들었다. 스님 한 분이 공사 쓰레기로 나온 각목과 잡쓰레기를 절 마당 한쪽에서 태우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뒤에 서 있는 그 스님이 아지랑이에 비쳐 흔들린다.

눈 여겨 볼 것 없는 평범하고 아담한 절을 어슬렁거리다 삼성각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내가 걸음을 멈춘 게 아니라 그 어떤 풍경이 걸음을 멈추게 한 것이다. 삼성각 앞에서 아미타대불이 바라보는 시선과 같은 방향으로 바라보는데 겨울의 삭막한 풍경이 푸근하게 느껴진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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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