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것이 빛나는 대전의 옛 도심
낡은 것이 빛나는 대전의 옛 도심
  • 나무신문
  • 승인 2014.01.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대전 오래된 도심

▲ 옛 충남도청 청사
옛 충남도청 청사에서 청사 앞 중앙로 우측 옛 대전 도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길목을 찾아간다. 30여 년 역사의 필방에서는 아직도 붓을 만들고, 50년 된 다방 난로 위에는 고구마가 구워지고 있다. 길거리에 나와 있는 피아노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듯 하며 신선한 과일을 파는 과일가게에서는 전국으로 보낼 과일꾸러미를 예쁘게 포장하고 있다.  

 

▲ 30여 년 역사의 일신필방
▲ 일신필방 내부

▲ 도청 중앙홀과 중앙계단
등록문화재 옛 충남도청
대전은 작은 마을이었다. 경부선 철도 부설과 함께 대전으로 이주한 일본인들은 전통 마을의 원형을 갖춘 대전의 곳곳을 파괴하고 뿌리도 없는 개발을 진행한다.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고 1914년 호남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대전은 옛 모습을 잃었고, 단기간에 진행된 도시화 과정에서 민족적 갈등도 함께 증폭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를 품고 있는 대전에 1932년 충남도청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1932년 건립된 충남도청은 등록문화재다. 도청 건물은 1930년대 들어 모더니즘 양식이 강해지면서 외관이 단순하고 수평이 강조되는 평지붕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도지사실이 위치한 2층 중앙부를 높게 해서 관청의 권위를 드러냈다. 벽도 세세한 장식들을 넣지 않고 단순하게 처리했다.

도청 건물 중앙문으로 들어가면 중앙계단이 나온다. 건축 당시에는 좌우 벽에 창문이 달린 접수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철거됐다. 벽과 바닥은 대리석으로 마감했다. 중앙 로비에는 2층과 연결되는 중앙계단과 독특한 몰딩이 되어 있는 아치, 아치를 받치는 두 개의 기둥과 벽기둥이 조화롭게 보인다.

충남도청 도지사의 접견실에 금고가 하나 있다. 이 금고는 일제강점기 공주에 도청 청사가 있을 때부터 사용하던 금고다. 공주, 대전, 내포 등 3곳의 청사를 모두 겪은 유일한 물건이다. 금고 무게가 약 1톤 정도 나가서 기중기가 없었던 시절에 옮기기가 어려워 금고를 옮긴 기사에게 20원(당시 쌀 2가마)의 포상금을 지급했다고 한다.

도청 건물 내부 2층 계단실 및 중앙 홀에 샹들리에를 고정시킨 천장 지지대를 꾸민 문양이 눈에 띈다.

복도 창문 중 후면 복도창문은 건축 당시 그대로다. 창은 수직으로 길며 세로 6면, 가로 4면으로 구성됐다. 창문을 열고 닫는 방식이 특이하다. 손잡이는 황동으로 만들었는데 창문을 원하는 만큼 열어놓고 고정할 수 있게 했다.

다시 밖으로 나와 외관을 자세히 보면 1층과 2층 창 사이에 장식 문양을 볼 수 있다. 조선총독부의 문양과 유사하다는 의견도 있어 한 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해방 후에 이 건물은 미군정청으로 사용됐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임시 중앙청 건물로 사용됐다.

 

▲ 50년 역사의 산호다방
50년 역사의 다방
도청 청사에서 나와 중앙로 지하상가 6번 출구로 들어간다.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그집’이라는 상호의 떡볶이집이 눈에 들어온다. 가래떡을 듬성듬성 썰어 놓은 것 같은 큰 떡과 어묵, 계란 등이 큰 불판 위에서 뻘건 양념에 버무려졌다.

먹음직스런 왕떡볶이를 뒤로하고 대전중부경찰서 골목으로 나와 거리를 걷는다. 그 거리에서 처음 만난 건 30여 년 역사의 필방이다. 출입문 한 쪽에 거대한 붓을 걸어 놓았다. 한 눈에 보기에도 이집이 예사롭지 않다. 일신필방 붓은 3대째 붓을 만들고 있는 장인의 손길에서 탄생한 것이다. 매장 안 천장에 각종 크기와 모양의 붓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매장 곳곳에 붓과 종이 벼루 먹 등 이른바 문방사우가 격 없는 모양으로 서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종이 묵 향기 진한 필방을 나서니 세월 향기 진하게 풍기는 다방이 보인다.  

▲ 산호다방 내부
‘산호다방’이다. 50여 년 전 다방 이름이 ‘산호’였다. 제주 바다의 에메랄드 물결이 다방 안에서 출렁일 것만 같았다.

산호다방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다. 할아버지 한 무리가 한 테이블에 모여 장기를 두고 있다. 그리고 별도의 테이블에 아줌마 몇몇이 앉아 있고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자는 주방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다.

2천 원 짜리 커피 한 잔이면 몇 판의 장기를 두고도 남는 이곳은 할아버지들의 놀이터다. 아줌마들의 호쾌한 웃음과 크지 않은 소리로 나누는 대화의 정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주인아줌마와도 아는 사이 같았는데 겉으로 보이는 모양만으로 짐작하자면 커피를 마시러온 손님 같지는 않았다.

관심을 접고 난로 옆으로 다가갔다. 손이 시리지 않았지만 연통 가까이 손을 가져갔다. 따끈한 열기가 공기를 통해 전달된다. 난로 위에는 고구마가 익어가고 있다. 커피 향과 고구마 구워지는 향기는 닮았다. 술집 앞에 술을 찌끄려 놓으면 술 향기를 맡고 술꾼들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술집을 찾는 것과 같은 것일까? 고구마 향기에 입안에서 커피 향이 피어난다.

 

▲ 활짝핀 꽃이 그려져 있는 콩나물밥집
길거리 피아노와 과일바구니
커피를 마시지는 않았다. 다음에 다시 대전을 찾을 구실을 남겨놓고 싶었다. 다방은 사거리 모퉁이에 있었다. 또 다른 모퉁이에는 매화 혹은 복사꽃이 화사하게 꽃을 피운 벽화가 있는 콩나물밥집이 있다. 그리고 여행자들이 모이는 여행자카페가 보인다. 그 한 쪽에 사과나무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이집은 과일을 파는 곳이다. 가게에서 직접 살 수도 있고 주문을 하면 배송을 해준다. 과일로 만든 쨈이나 차도 판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지만 맛있단다. 그래서 먹어봤더니 맛있다. 맛있는 걸 직접 먹어보고 판단다. 어디론가 떠날 과일상자 안에 과일이 복스럽게 담겼다.

과일과게를 나와 목적 없이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맨다. 가보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 당연한 이치를 생각하지 않아도 이곳 골목들은 발길을 이끈다. 그 골목에서 피아노를 만났다. 낡은 피아노에 색을 칠했다. 이상하게 어울리는 색감은 강렬했다. 색이 피아노를 연주한다. 오래된 골목에 빛나는 음표가 통통 튀어다닌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Tag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