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에서 오지로 이어지는 열차여행
오지에서 오지로 이어지는 열차여행
  • 나무신문
  • 승인 2013.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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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백두대간 협곡열차

 

▲ 기차는 달리고 풍경은 아름답다

철암역에서 분천역까지 1시간 10분, 기차는 첩첩산중을 후벼 파듯 비집고 달린다.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곳에 놓인 집 한 채가 풍경을 따듯하게 만든다.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곳을 달리는 기차 또한 멀리서 바라보면 풍경을 따듯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철암역에서 승부역까지
철암역에서 11시30분에 출발하는 백두대간협곡열차를 타러간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받고 자리가 있으면 역에서 발권을 하는 데 보통 인터넷 예약에서 다 끝난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으니 백두대간협곡열차를 타기는 하늘에 별 따기와 같다고들 한다.

어렵게 타게 된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출발하는 철암역은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배우 안성기와 박중훈의 결투 장면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철암역 뒤편에 석탄이 산을 이루었다. ‘검은산’을 뒤로 하고 백두대간협곡열차가 출발한다. 기차는 느리게 달린다. 빨리 달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느리게 달리며 풍경을 감상하는 게 목적이다.

기차 안에 목탄난로와 선풍기가 있고 창문 또한 옛날 기차처럼 위 아래로 열고 닫는 것이다. 작은 매점도 있어 기차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기차여행 중 안내원이 주변 풍경과 마을의 내력 등을 설명한다. 설명을 들으며 바라보는 풍경에 더 정이 간다.

기차는 점점 더 깊은 산골로 접어든다. 산이 첩첩 계곡이 첩첩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의 풍경은 처음 그 풍경이 만들어졌을 때처럼 순수하게 느껴진다.

단풍도 저 혼 자 피고 지고 가을도 또 그렇게 저 혼자 오고 가고, 그런 세월이 얼마나 흘렀을까. 풍경을 감상하는 사이 어느새 기차는 첫 정차역인 승부역에 도착한다. 승부역에 내리면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승부역은 1956년 1월1일 문을 열었다. 승부역은 역 플래트폼에 세워진 시비 때문에 유명해졌다. ‘하늘도 세 평이요 / 꽃밭도 세 평이나 / 영동의 심장이요 / 수송의 동맥이다’라는 시를 역무원이 지었는데 그 시를 새겨 넣은 시비를 만든 것이다. 또한 눈꽃열차가 다니면서 더 유명해졌다.

승부역 플래트폼 앞으로 가을색 깊은 풍경이 펼쳐진다. 한쪽에 서 있는 단풍나무가 아주 빨갛게 물들었다.

 

 

▲ 열차는 오지의 계곡과 산을 비집고 달린다

 

양원역, 10분 간의 축제소박한 역사 앞에 펼쳐진 계절의 향기를 안고 다시 기차에 오른다. 기차는 다시 출발하고 안내원은 이어지는 풍경과 마을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한다.

 

찻길이 없어 기차를 타야지만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기차는 지나가되 서지 않으니 아마도 저 풍경에 손 댄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과 바위와 나무와 풀이 거기 그렇게 있되 만질 수 없는 것이다. 바라만 봐야 하는 풍경이 더 아름답다.

기차에 함께 타고 있는 사람들이 왼쪽과 오른쪽 창을 번갈아 돌아본다. 어디에 눈길을 놓아도 신선하지 않은 곳이 없다. 무리지어 왁자지껄 떠드는 아줌마들이 계란과 사이다를 싸들고 소풍 나온 여고생 같다.

기차는 양원역에서 멈춘다. 10분 정도의 시간을 준다. 작은 역사가 한 눈에 들어오고 그 옆에 천막을 치고 사람들이 뭔가를 판다. 

양원역은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원곡마을에 있다. 역 승장장 옆으로 낙동강이 흐른다. 낙동강을 기준으로 서쪽은 봉화군 동쪽은 울진군이다. ‘양원’이라는 역명은 울진 원곡과 봉화 원곡의 ‘양쪽 원곡’이란 뜻이다. 

1955년 12월31일 영주와 철암 사이에 놓인 철도를 개통하면서 영암선이라고 했는데 그게 바로 지금의 영동선이다. 개통 초기에 원곡마을에는 역사도 없고 기차도 서지 않았다.

원곡마을 주민들은 마을 앞 낙동강 계곡을 따라 달리는 기차를 바라보면서 이웃마을 승부역까지 걸어가서 기차를 타고 철암장과 춘양장에서 곡식을 팔고 생필품을 구입해야 했다.
주민들은 계속해서 마을에 기차를 서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영동선 개통 33년 만인 1988년 4월 원곡마을에 기차가 정차하게 됐다.

기차가 서게 되자 주민들은 괭이를 들고 지게를 지고 직접 역 승강장과 대합실, 화장실을 만들었고 이정표도 세웠다. 양원역은 그렇게 세워진 최초의 민자역사이다. 그리고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작은 역사일 것 같다.

양원역에서 정차하는 10분은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역사 주변 천막 아래서 막걸리 잔술을 1000원에 판다. 2000원을 내고 두 잔을 들이킨다. 속이 시원하고 배가 불뚝 일어선다. 안주도 팔긴 파는 데 마을에서 기른 고추와 된장을 기본 안주로 내놓았다. 그거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잔치국수도 팔고 인디언감자와 땅콩도 판다.

먹을거리를 파는 옆 천막에서는 각종 산나물을 판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가 너도 나도 막걸리에 잔치국수를 마시고 먹고 산나물을 산다. 왁자지껄 야단법석 그야말로 10분 동안 펼쳐지는 축제다. 그렇게 10분 동안의 축제는 끝나고 다시 기차는 출발한다. 

 

 

▲ 양원역에 내리면 역 주변 마당에서 잔막걸리, 잔치국수 등을 간단하게 먹을 수 있다. 나물 등도 판다

 

분천역에서 나누는 이별양원역에서 다 먹지 못한 막걸리와 잔치국수가 못 내 아쉽다. 한 10분 만 더 머물렀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쉬움은 양원역에 두고 이제 이 열차의 종착역인 분천역으로 가고 있다. 분천역은 승부역과 양원역에 비하면 역사가 꽤 크다. 그리고 마을도 크고 식당과 가게 찻집 등도 있다.
분천역에서 백두대간협곡열차와 아쉬운 작별을 한다. 마을로 내려와서 가게에 들른다. 양원역에서 다 먹지 못한 막걸리를 가게에서 마무리 한다.

구멍가게 안에는 관록 있는 식탁이 있다.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가 보다. 주인아줌마는 먹고 갈꺼냐고 묻는다. 막걸리 큰 거 한 통에 5000원을 받는다. 비싸지만 언제 다시 분천역 앞 구멍가게에서 막걸리를 먹어보겠냐는 생각에 돈을 빌려 잔을 들었다.
함께한 일행들에게 한 잔 씩 막걸리를 돌리고 건배를 외친다. 보기만 해도 정이 느껴지는 첩첩산중 오지마을과 오지마을을 잇는 백두대간협곡열차를 한 번 쯤 타볼만 하다고 다들 입 모아 얘기한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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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