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1번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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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신문
  • 승인 2013.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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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충북 충주 미륵사지와 하늘재

▲ 백두대간 하늘재 비석에서 본 풍경. 하늘재 고갯마루는 충북 충주와 경북 문경의 경계다. 사진은 경북 문경 땅이다
첩첩산중 심심산골로 들어간다. 산길 끝에 넓은 땅이 나온다. 산이 품고 있는 작은 분지가 아늑하다. 그 터에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세운 절이 있었다. 미륵사지의 온화한 기운을 온전하게 받은 뒤에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기 위해 넘었다던 하늘재를 넘는다.

 

▲ 미륵사지 거북이바위. 저 자리에 있는 바위를 그대로 둔채 거북이 형상으로 깎아 만든 것이다
거북바위와 미륵불
미륵사지 500m 전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월악산 산줄기와 단풍이 주차장까지 마중 나왔나 보다. 깊은 가을 미륵사지로 가는 길에 그림자도 붉다.

첩첩산중 길 끝에 넓은 터가 나온다. 햇살이 가득 고인 게 한 눈에 보기에도 평온 그 자체다. 멀리 석불이 보이고 석불 앞에 석등과 탑 거북바위가 차례로 자리잡았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거북바위로 걸었다. 땅에 뿌리박힌 것으로 봐서는 이 자리에 있던 바위를 그대로 깎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안내판에 ‘미륵사지 귀부’라고 적혔다. 비석을 받치고 있던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이라는 뜻인데, 비석은 찾지 못했다고 한다. 비석 받침돌인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은 모양이다. 아무튼 길이 605㎝, 높이 180㎝의 거대한 거북이 모양의 바위가 석불이 바라보고 있는 북쪽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다.

거북바위 뒤에 석등이 있고 절터 가운데 석탑이 있다. 석탑 뒤에는 석등이 하나 더 있고 석등 뒤에 석불이 있다.

이 석불의 공식 이름은 ‘미륵리 석불입상’인데 미륵불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더 많이 알려졌다.

미륵불은 미륵리 절터의 주존불이다. 북쪽을 바라바고 서 있다. 석불 주변에 돌로 쌓은 석축이 있는 것으로 봐서 석굴식 법당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절터 옆에 둥그런 바위가 보인다. ‘공기돌바위’다. 커다란 바위 위에 공 모양의 바위가 놓였다. 직경 1m 정도 되는 공 모양의 바위를 ‘공기돌바위’라고 하는데 전설에 따르면 온달장군이 가지고 놀던 공기돌이란다. 공기돌은 아니었더라도 돌을 들어 올려 힘자랑을 했을 법하다.

미륵불 앞에 서서 미륵불의 시선이 꽂히는 곳을 바라본다. 월악산 영봉 방향이다. 마의태자의 누이인 덕주공주는 월악산 영봉 아래 덕주사에 마애불을 조성하고 머물렀다. 미륵불과 마애불이 서로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다. 나라 잃은 한을 마음에 품고 속세를 떠난 신라의 왕자와 공주의 마음이 만나고 있는 것이다.

 

▲ 하늘재 숲길
하늘재 가을 산책
미륵불을 세우며 마의태자는 망국의 한을 딛고 또 다른 신라를 꿈꾸었던 것은 아닐까? 미륵불을 뒤로하고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떠났다. 그가 금강산으로 가기 위해 넘었던 고개, 하늘재로 발길을 옮긴다.

미륵사지에서 하늘재로 가는 길목에 미륵대원터가 있다. 고려시대에 하늘재를 넘다들던 사람들이 잠도 자고 밥도 먹었던 곳이다. 조선시대 하늘재가 폐쇄되고 인근에 새 길인 조령(새재)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됐다.

미륵대원터를 지나 조금 더 가면 하늘재를 알리는 바윗돌이 있다. 하늘재 초입부터 오솔길에 낙엽이 수북하다. 목책이 길을 인도하고 중간에 이정표도 보인다. 평지와 약간의 오르막이 있을 뿐이어서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갈색으로 물든 중후한 단풍을 배경으로 울긋불긋 단풍이 화룡점정으로 피었다. 햇볕이 노랗게 물든 키 큰 낙엽송에 비쳐 숲이 환하다.

김연아나무라는 팻말 뒤에 김연아의 환상적인 공연 모습을 닮은 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사람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김연아나무를 지나면 곧바로 하늘재 고갯마루에 도착한다. 미륵사지에서 하늘재까지 약 2km 정도 되는 숲길도 좋지만 하늘재 고갯마루 풍경도 놓치지 말아야 할 풍경이다.

 

▲ 김연아 소나무
백두대간 고갯마루에서 막걸리를 마시다
하늘재 고갯마루는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와 경북 문경 관음리의 경계지점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아달라왕3년(156년)에 하늘재를 개통했다. 이곳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군사적 요충지였다. 고구려가 남진할 때도 중요한 거점이었고 신라가 북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신라시대에는 계립령이라 했고 고려시대에는 대원령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 지금의 이름인 하늘재로 부르기 시작했다.

하늘재 고갯마루 오른쪽에 나무계단이 있다. 그 곳으로 올라가면 ‘백두대간 하늘재’ 비석이 서있다. 산줄기가 겹쳐진 풍경이 멀어질수록 희미해진다. 바위가 드러난 포암산의 자태가 보기 좋다. 그 아래 하늘재산장이 둥지처럼 자리잡았다.

우리는 하늘재산장으로 내려갔다. 허투루 지은 산장과 산장을 둘러싸고 있는 풍경은 술을 부른다. 산장 마당 탁자에 앉아 막걸리를 따른다. 안주는 김치 한 종지다.

갓 채운 막걸리 잔 옆으로 단풍잎이 떨어진다. 5㎝만 옆으로 떨어졌어도 술잔에 그대로 안착하는 거였다. 그것처럼 낭만적인 술잔이 또 있을까? 아쉬운 마음에 탁자에 떨어진 단풍잎을 술잔에 띄웠다.

그리고 건배. 단풍숲과 파란 하늘, 맑은 공기, 신선한 햇볕이 만드는 풍경에 내가 앉아 있다는 게 비현실적이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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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