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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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신문
  • 승인 2013.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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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전북 전주시 전동성당과 경기전

▲ 멀리서 바라본 전동성당
서울에서 일어나 전주에서 아침을 먹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전주행 첫차를 타려고 했으나 매진이다. 새벽 같이 전주로 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하지만 약 10분 간격으로 차가 있어서 오랜 시간 차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아침을 먹고 차를 탈까 아니면 전주에 도착해서 아침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전주에서 먹기로 했다. 터미널 음식은 가격 대비 맛이 터무니없이 차이가 난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입맛은 물론이고 영혼마저 감동하게 만든다면 그 음식은 비싸게 느껴지지 않을 텐데 터미널 음식은 가격만 비싸다. 반면에 전주에 가면 싼 가격에 영혼마저 감동할 음식이 있다.

6시10분 출발한 버스가 서울요금소를 빠져나가기 전에 잠들었다. 눈을 떠보니 전주월드컵경기장 앞이다. 눈을 감았다 떴더니 2시간 40분이 지났다. 전주행 새벽 버스가 타임머신 같았다. 눈 깜박할 사이에 나를 서울에서 전주로 옮겨놓았다.

전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전주남부시장으로 향한다. 재래시장이 모두 그렇듯 전주남부시장도 싸고 맛 좋은 음식들의 천국이다. 전주남부시장에는 ‘피순대국’과 ‘콩나물국밥’이라는 시장 국밥의 양대 산맥이 50년 세월 동안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피순대국은 선지와 야채를 버무려 속을 채운 순대와 곱창 등이 듬뿍 들어간 전통순대국밥이다. 콩나물국밥은 말 그대로 콩나물을 넣고 끓인 국밥이다. 맑고 시원한 국물이 먹고 싶어서 콩나물국밥을 선택했다.

시장 안에 콩나물국밥을 파는 식당이 예닐곱 집은 된다. 그중 눈에 들어온 간판, ‘현대옥’. 관록이 느껴지는 이름만큼 깊은 역사를 지닌 현대옥의 콩나물국밥은 5000원, 요즘 한 끼 식사 가격이 5000원이면 이른바 ‘식객’들에게는 ‘성지순례코스’나 다름없는 곳이 아닌가!
서울에서 눈비비고 일어나 전주에서 아침을 먹는다. 영혼을 울리는 콩나물국밥 한 그릇으로 행복한 하루를 연다.    

 

▲ 전동성당 내부
순교의 터에 건립된 전동성당
남부시장에서 전동성당으로 가는 길 중간에 풍남문이 있다. 풍남문은 조선시대 전라감영이 있었던 성곽의 남쪽 출입문이다. 동서남북에 문이 있었는데 지금은 풍남문만 남았다. 고려시대에 처음 세워졌으며 정유재란 때 화재로 불탔다가 영조44년(1768년)에 전라감사 홍락인이 다시 세우면서 풍남문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한옥마을은 성 밖 마을이었다. 한옥마을 대문격인 전동성당으로 가는 길, 작은 광장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전동성당은 한옥마을 순례의 출발지점으로 조선시대 천주교도의 순교 터에 세운 성당이다. 정조15년(1791년)에 윤지충과 권상연이 순교했는데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였다.

이후 순조 원년(1801년)에 유항검과 윤지헌 등이 처형 됐다. 이들의 뜻을 기리고자 1908년 프랑스 신부 보두네가 순교한 곳에 성당을 건립하기 시작했고 1914년에 완공했다.

성당 건물과 사제관이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았다. 붉은 벽돌로 아기자기하게 지은 건물 앞에서 여행자들이 삼삼오오 사진을 찍기 바쁘다.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높은 천장과 긴 회랑, 스테인드글라스가 엄숙하고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행자 몇몇은 성당 의자에 앉아 기도를 드린다. 눈 감은 그들의 얼굴이 진지하다. 종교가 없는 사람도 성당의 분위기에 마음이 차분해 진다.

 

▲ 경기전 정전
경기전
전동성당 앞에 있는 경기전으로 향한다. 경기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보관하는 곳이다. 원래는 부속 건물이 많았으나 일제강점기에 부속 건물이 철거됐다. 현재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전주사고와 예종대왕의 태실 등이 남아 있고 어진박물관이 여행자를 반기고 있다.

태조의 어진을 보관하고 있는 경기전 정전은 보물 제1578호다. 태종10년(1410년)에 세웠다. 어진을 보관했던 건물은 개성 영흥 전주 경주 평양 등 다섯 곳에 있었는데 경기전 정전을 제외한 나머지는 임진왜란 때 모두 불에 탔다. 경기전 정전도 정유재란 때 불탔으나 광해군6년(1614년)에 다시 세웠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국보 제317호다.

▲ 손에서 손으로 맛의 비법이 이어진 남부시장 현대옥 콩나물국밥
전주사고는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곳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곳은 여러 곳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춘추관, 충주, 성주 등지에 있던 사고는 모두 소실됐다. 전주사고에 있던 실록만 무사했다. 손홍록 안의 오희길 김홍무 수복  한춘 등이 실록을 내장산 용굴암으로 옮겨 지켰기 때문이었다. 이후 실록은 해주로 옮겨졌고 전쟁이 소강상태에 이르자 강화도로 옮겼다.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안주를 거쳐 묘향산 보현사 별전으로 옮겼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곳에 보관됐다. 전쟁이 끝나고 강화도로 옮겼다.

전주사고에는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 1322책이 60개의 궤에 담겨 보관되고 있었다.

또 경기전 한 쪽에 조선 예종대왕의 태를 항아리에 담아 넣어두었던 석실인 태실과 비석이 있다. 원래는 선조11년(1578년) 완주군 구이면 원덕리 태실마을 뒷산에 세웠다가 영조10년(1734년)에 다시 고쳐 세웠다. 1928년 일본 조선총독부가 태항아리를 가져가면서 파괴되어 구이초등학교 부근에 있던 것을 1970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비석은 태실과 함께 옮겨진 것으로 선조11년(1578년)에 건립됐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
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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